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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하루 7만명 기내식 만들던 그곳···냉장고는 창고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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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중앙일보

항공업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pandemic)으로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2일 대한항공 인천 기내식 센터에 집기가 쌓여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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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식 하루 평균 7만1600→3700명분으로 뚝



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화물청사 인근에 있는 대한항공 기내식 센터. 2001년 문을 연 이 센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 이전만 해도 하루 평균 7만 1600식(食)을 쉼 없이 만들어내던 국내 최대 기내식 생산기지다. 대한항공을 비롯해 국내에 취항하는 30여개 항공사에 기내식을 공급하던 이 현장의 생산 라인은 대부분 멈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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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업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pandemic)으로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2일 대한항공 인천 기내식 센터에서 직원이 기내식을 생산하고 있다. 앞 모니터에 취소(CNXL)된 운항 스케줄이 나타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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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잃은 기내용 카트 5000개…냉장창고 등에 방치



평상시엔 대한항공과 협력업체 직원 1300여명이 24시간 3교대로 근무하던 공간에선 지난주 하루 평균 3700식만 생산됐다. 코로나 19 이전 평균의 5%에 그친다. 공급받은 음식을 그릇에 소분해 담는 디쉬업(Dish-up) 작업라인 20곳 가운데 2곳에서만 10여명의 직원이 작업하고 있었다.

현장을 안내한 하인숙 대한항공 기내식 운영팀 총괄 담당이 작업장 위에 있는 항공기 일정 모니터를 가리키면서 “대부분의 비행 일정이 취소됐다”며 “현재 24명의 승객을 태우고 인천에서 출발하는 가루다항공 비행기에 보낼 기내식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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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업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pandemic)으로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2일 대한항공 인천 기내식 센터에 텅 빈 밀카트가 쌓여 있다. 지난해 3월 하루 약 8만 식의 기내식을 만들던 이 센터는 현재 하루 2천900여 식만 생산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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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하루 이곳에서 기내식을 공급한 비행기는 총 14편(대한항공 12편, 진에어 1편,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 1편)뿐이었다. 코로나 19사태 이전 이 센터에선 매일 200편의 비행기에 담을 기내식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냉장고는 집기 쌓아두는 창고로 변해



항공기 내에서 사용하는 식기를 세팅하는 트레이 세팅장도 '개점휴업' 상태였다. 세팅장 한쪽에 있는 냉장 보관소는 음식 대신 각종 집기류를 쌓아두는 창고로 변해있었다. 기내식 센터 곳곳엔 평소 음식이나 물품을 싣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던 카트가 방치돼 있었다. 하 담당은 “8500개의 카트 중 5000개가 갈 곳을 잃고 센터에 남아 있는 상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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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업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pandemic)으로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2일 대한항공 인천 기내식 센터에서 직원들이 기내식을 만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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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있는 기내식 업체는 대한항공을 포함해 아시아나항공에 기내식을 공급하는 게이트고메코리아(GGK), 도에코, LSG 등 총 4곳이다. 이 4개 업체에서 지난해 하루 평균 14만식을 준비했는데 지난주 생산량은 6000식 미만을 기록했다.



기내식 생산 9주 연속 감소…"지난달 초 마지노선 붕괴"



김세용 대한항공 기내식 사업본부 수석은 “2월 3일부터 코로나 19의 영향을 받기 시작해 9주 연속 기내식 생산이 줄고 있다”며 “마지노선으로 여겼던 2만식이 지난달 2일 깨졌고, 지난달 9일엔 생산량이 1만식 미만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내식 공급 업체들은 이미 한계점에 와 있는 상태”라며 “이곳의 상황이 지금 항공업계 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현장이자 지표”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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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업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pandemic)으로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2일 인천 대한항공 기내식 센터가 한산한 모습이다. 지난해 3월 하루 약 8만 식의 기내식을 만들던 이 센터는 현재 하루 2천900여 식만 생산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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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업체중엔 500명중 400명 퇴사한 곳도



이렇듯 하늘길이 끊긴 항공사발 위기는 협력 업체로 빠르게 확산중이다. 대한항공 기내식 센터 인력 2100명 가운데 1300명가량이 협력업체 6개사 직원이다. 하지만 코로나 19사태가 장기화 하면서 현재 출근하고 있는 협력업체 근무자는 350명 수준이다. 이 가운데 권고 사직을 한 직원은 500~6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실제로 A 업체의 경우 전체 직원 500명 가운데 400명이 퇴사했다. B 업체의 경우 580명의 직원 가운데 30% 이상이 권고사직했으며, 일거리가 줄면서 나머지 직원을 대상으로 무급 휴직을 권고하고 있는 상태다.



장기 근속자, 울면서 라커룸 비운다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협력업체라도 공항 관련 업종의 경우 장기 근무자가 많다”며 “나이 순으로 권고사직을 하다 보니 장기근속자가 나가면서 라커룸을 비울 때 울면서 나가는 경우가 많다. 매일 이런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협력업체 관계자는 “항공산업과 직ㆍ간접적으로 연계된 종사자가 25만명이 넘는데 국내 항공 산업이 붕괴하면 당장 일자리 수십만개가 사라진다”며 “당장 항공기 기내 청소 업체도 비행 편수가 평소 대비 90% 이상 줄면서 인력도 10분의 1로 줄였다. 이게 항공 업계의 현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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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인천 대한항공 기내식 센터에 밀카트를 운반하는 푸드트럭이 멈춰 서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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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월 국적 항공사 매출 손실 6조 4500억원



항공업계에선 현재 상황이 2~3개월 더 이어진다면 줄도산도 시간 문제라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항공협회는 국적 항공사의 2월~6월까지의 매출 손실만 6조 4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한다.

국적 항공사는 급여 반납, 유ㆍ무급 휴직과 같은 자구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지만, 이 정도로는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란 게 업계의 전반적인 평가다. 국내 대표 항공사인 대한항공만 봐도 올해 내 갚아야 할 채무는 약 4조 3500억에 달한다. 지난달 30일 6228억원 규모의 매출채권 유동화 증권(ABS)을 발행하면서 불은 껐지만, 하반기에 돌아올 채무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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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인천국제공항 계류장에 국내 항공사 여객기들이 멈춰서 있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항공업계가 '셧다운' 위기에 처한 가운데 정부가 운수권·슬롯(시간당 비행기 운항 가능 횟수) 회수 전면 유예와 공항시설사용료 감면 확대 등의 추가 대책을 내놨다.이날 정부는 "항공업의 착륙료 20% 감면을 즉시 시행하고, 항공기 정류료도 3개월 동안 전액 면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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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생태계 붕괴하면 일자리 16만개 사라져"



항공업계는 항공사의 회사채 및 ABS 발행 시 정부나 국책은행의 지급 보증은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전 세계 항공업계가 유동성 위기로 항공사 자체 신용만으로 채권 발행을 통한 경영 자금 조달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가 기간산업인 동시에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항공산업이 무너지면 다시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천문학적인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해외 각국이 자국 항공산업을 살리기 위해 세금 완화나 재정ㆍ금융 등 파격 지원에 나서는 이유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국내 항공업계 생태계가 붕괴하면 일자리 16만개가 사라지고 GDP 11조원이 감소한다. 익명을 요구한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현재 지원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규모가 작은 협력 업체는 아예 지원 대상에서 빠져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인천=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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