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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67>와인을 딸 시간…아버지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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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맛보는 와인⑥와인을 딸 시간(Uncoked)

메트로신문사

"힙합 좋아해요?"

와인을 잘 몰라 그저 좋은 와인을 찾는다는 타냐에게 엘라이자는 대뜸 힙합을 좋아하는지 묻는다. 타냐 또래가 한창 열광할 만한 힙합 가수에 비유해 원하는 와인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먼저 샤도네이다. 화이트 와인의 큰 형님 샤도네이는 여러 용도로 쓰이고, 부드러워서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와인계의 제이지다.

다음은 피노 그리지오다. 향이 비교적 센 화이트 와인이다. "화이트 와인이라고 우습게 봤지. 취하게 만들어줄게." 이런 투다. 카니예 웨스트다.

리슬링은 청량감이 있고 깔끔하며, 단맛이 특징이다. 힙합 스타로 꼽자면 드레이크다. 타냐의 선택은 드레이크 와인이었다.

'와인을 딸 시간(Uncoked)'은 세계 최고 수준의 소믈리에를 꿈꾸는 엘라이자와 가업인 바비큐 식당을 물려 받길 원하는 아버지 루이스의 대립과 화해를 담담하게 그려낸 영화다.

엘라이자의 와인에 대한 시선은 처음부터 가업의 주메뉴인 바비큐와는 동떨어진 화이트 와인을 향해 있다.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샤도네이로 만든 '알베르비쇼 샤블리'나 미국 오레곤주에서 생산된 '안티카 테라' 등에 마음을 뺏긴다. 밤새 땐 장작불에 오래 굽고, 걸쭉한 양념을 얹은 루이스의 립 바비큐에는 아무래도 진한 레드 와인 쪽이 맞다. 어긋난 마리아주는 딱 엘라이자와 루이스의 관계다.

루이스는 바비큐 식당을 이어가기 위한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주고 싶어하지만 정작 엘라이자의 눈은 다른 곳에서 빛난다. 와인 시음회에서 다른 빈티지들을 비교하고, 맛을 평가하면서다. 엘라이자의 최종 목표는 마스터 소믈리에. 전 세계에서 230명 밖에 없을 정도로 쉽지 않은 길이다.

먼저 손길을 내미는 쪽은 아버지다. 바비큐 식당 2호점을 준비하면서 엘라이자를 위한 와인바도 설계에 넣는다.

아버지의 꿈 대신 자신의 꿈인 마스터 소믈리에에 도전하기로 하지만 엘라이자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화해를 시도한다. 파리로 와인 공부를 하러 떠나기 전에 '라 브리꼴리나 바롤로 2012' 한 병을 건낸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팀을 이뤄 함께 양조할 수 있는 빈티지만 내놨다는 그 와인이다.

바비큐를 외면했던 아들과 와인은 안먹겠다던 아버지는 엄마이자 아내의 죽음을 겪어내며 달라진다. 아들은 립 바비큐와 어울릴 와인을, 아버지는 아들의 꿈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엘라이자는 잠시 쉬어가기 위한 스포츠바에서도 립 바비큐를 위한 와인을 고민한다. 아무리 좋은 와인이라도 마다하고 후추, 훈연의 향을 머금을 와인을 주문한다. 호주 펜폴즈의 '빈 389'다. 최고의 레드와인 중 하나로 꼽히는 '펜폴즈 그랜지'와 같은 오크통에서 숙성했다고 해서 '베이지 그랜지'라고 불린다. 쉬라즈의 풍성함과 까버네 소비뇽의 구조감이 훌륭한 조화를 이뤄 루이스의 훈제 바비큐와 딱 어울릴 만한 와인이다.

엘라이자는 마스터 소믈리에 시험에는 떨어졌지만 괜찮다. 수 십년간 와인을 마시지 않았던 아버지는 엘라이자가 건낸 바롤로 와인을 늘 마셔왔던 것처럼 마시기 시작했고, 시험이야 다시 도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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