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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총선 앞두고 여론 조작 '밭갈기' 논란... "대박글 터지면 30표는 넘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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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뒤집자" 총선 D-13, 온라인서 ‘밭갈기’ 움직임
"대박글 하나 터지면, 20~30개 표 넘어온다"

"일주일만 노력(여론 유도 작업)하면 동토(凍土·얼어붙은 땅)가 서서히 옥토(沃土·기름진 땅)로 바뀌는걸, 댓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 29일 진보 성향의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회원 10만명에 육박하는 부동산 카페를 공략해, 여론을 뒤집어야 한다는 이른바 ‘지령(指令)’이 올라왔다. 상대적으로 중도층이 많은 부동산 카페에 정부나 여당을 옹호하는 글을 올리고, 야당에 유리한 게시글에는 반대 댓글을 달아, 여론의 흐름을 바꾸자는 것이다. 글쓴이는 "보수층이 많은 카페일수록 좋다. 대박글 하나가 터지면, 20~30개의 표는 넘어온다"고 주장했다.

총선이 보름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여론전이 가열되고 있다. 친여(親與) 성향 커뮤니티 등에서는 보수·중도 성향 네티즌들 여론을 뒤엎는 이른바 ‘밭갈기’를 해야 한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밭갈기는 이들이 자신의 정치 사상이나 의견을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확산시키는 행위를 가리키는 은어다. 땅을 뒤집어서 밭을 갈듯 여론을 뒤집어서 표(票)밭을 갈겠다는 뜻이다.

일러스트=정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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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밭갈기 유의사항부터 후기까지…"賞 줘야 한다" 호응도
댓글작업단의 활동은 주로 친여 성향 커뮤니티와 트위터를 통해 진행됐다. 조선비즈는 31일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밭갈기 지령을 살펴봤다. 한 네티즌은 ‘네이버 카페 밭 갈때 유의사항과 꿀팁’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어 글쓴이는 "이미 우리 진영 사람들 대상으로 밭을 갈 필요가 없다"며 "숙달되면 30초면 가능하다(글을 올릴 수 있다)"며 하루 10분만 투자하면 지역구도 우리가 승리한다"고 했다.

또 △제목은 짧고 간결하게 이미지 콘텐츠라면 .jpg 붙이기 △글을 올릴때 우클릭, 다운로드 할 수 있게 설정 등 게시물이 빠르게 확산될 수 있는 방법도 적혔다.

실제 이 네티즌이 부동산카페에서 작업한 밭갈기 활동을 살펴보면, 정부나 여당이 유리한 게시물을 올리거나 야당에 불리한 내용을 담은 글을 주로 올렸다. ‘며칠 사이에 확 바뀐 네이버 여론.jpg’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지난달 28일 페이스북에 올린 "교회 내 집단감염 거의 없다"는 발언을 담은 기사가 캡처돼있었다. 글에는 "야당이 견제를 잘해야 되는데 이런 생각을 대중에게 알리다니 공감 능력이 제로 같다" "표가 모자른가봐요. 에휴" 등 부정적 댓글이 주로 달렸다.

밭갈기 작업을 옹호하는 글들도 이어졌다. 한 네티즌은 "네이버 카페서 밭가는 분들은 상줘야 함’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글쓴이는 "아이디, 블로그랑 다 노출되는데, 거기서 한땀한땀 글을 올리고 댓글 다는데, 대단하다"고 적었다. 빠른 확산을 위해 밭갈기용 콘텐츠가 공유되는 경우도 있다. 단순한 문구부터 각종 기사, 동영상 링크 등이 포함된다.

유튜브에서는 ‘밭갈기용’ 영상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채널까지 생겨났다. ‘경기가 파탄이고 우리가 망할 거라는 분들에게’ ‘나경원, 홍혜걸 자녀들이 어디에 있는지가 특히 궁금하다’ ‘대구 시민들이 권영진에게 보내는 시’ 등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조선비즈

지난 27일 유튜브에 '밭갈기용'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영상.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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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루킹과 같은 맥락… 인터넷 이미 공론장 기능 상실했다"
전문가들은 밭갈기와 같은 여론 조작은 사라져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이는 여론을 왜곡하는 행위인 동시에, 윤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드루킹 사태 때 실시간 검색어 조작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며 "결국에는 여론을 왜곡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구 교수는 "표현의 자유가 무한하게 확대가 된 만큼 그에 따른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며 "온라인 행동강령처럼 네티즌이 지켜야 할 책무를 논의하는 시민사회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밭갈기와 같은 온라인상 여론전은 사실 생산적인 토론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인터넷은 이미 우리 사회 공론장으로서 기능을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하지만 법적 처벌은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댓글을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것은 잘못된 행위. 커뮤니티 운영을 방해하는 업무방해죄 등을 적용할 수 있다"면서도 "다만 밭갈기 행위를 모두 선거운동으로 보고 법을 적용해 처벌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 따르면 인터넷을 통한 선거운동의 경우, 공직선거법 내 후보자 비방이나 허위사실 공표 여부를 판단하는 조항이 적용될 수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인터넷을 이용한 선거운동은 상시 허용되고 있는 상태"라며 "다만 밭갈기 행위가 정확히 어떤 시기에 어떤 형태로 진행되는지 특정할 수 없다. 현재로선 선거법 위반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이상빈 기자(seetheunseen@chosunbiz.com);권유정 기자(yo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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