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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72년 전 채워진 족쇄 풀어주세요”… 제주4·3 생존수형인 재심 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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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생존 수형인 2명이 부당한 공권력에 의해 타지로 끌려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2일 제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제72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을 하루 앞둔 이 날 이뤄진 제주4·3 생존 수형인의 재심 청구는 이번이 세 번째다.

이번에 재심을 청구한 4·3 생존 수형인들은 고태삼(91)·이재훈(90) 할아버지다.

세계일보

제72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을 하루 앞둔 2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4·3 당시 불법 재판으로 억울하게 수형생활을 한 제주4·3 생존 수형인들과 가족이 재심 청구 기자회견을 하기 전 4·3 희생자 영령에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1947년 6월 6일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고태삼 할아버지는 제주 구좌면 종달리 동네청년들의 모임에 나갔다가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썼다.

당시 집회장소를 덮친 경찰관과 마을청년들이 충돌했고 그는 경찰관을 때린 혐의 등(내란죄·폭행 등)으로 징역 장기 2년에 단기 1년 형을 선고받았다.

경찰관을 때린 적이 없다는 고 할아버지는 오히려 경찰서에 끌려가 모진 매를 맞고 제대로 된 조사 한 번 받지 못한 채 징역 장기 2년에 단기 1년 형을 선고받아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했다.

이재훈 할아버지는 1947년 8월 13일 선동적인 반미 ‘삐라’(전단)를 봤다는 죄명(내란죄)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당시 경찰이 쏜 총에 북촌마을 주민 3명이 총상을 입은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다가 마을 사람들이 함덕으로 몰려갈 때 함께 따라갔다.

이 할아버지는 당시 ‘어디에 사냐’는 경찰의 질문에 짧게 ‘북촌’이라고 말했고, 바로 구금됐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삐라를 봤다고 말할 때까지 매를 맞았다‘며 ‘재판을 어떻게 받았는지 기억이 전혀 없다’고 했다.

결국 이 할아버지는 징역 장기 2년에 단기 1년 형을 선고받아 인천형무소에서 복역했다.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는 “할아버지들의 재판기록은 판결문과 형사사건부 등이 존재하지만, 판결문 어디에도 구체적인 범죄 사실이 적시돼 있지 않다”며 “1947년 미 군정하에서 무고한 제주의 어린 학생에게 가해진 국가 공권력은 명백한 ‘국가범죄’다”라고 말했다.

도민연대는 “이들은 70년 넘게 전과자 신세로 살아온 평생의 한을 풀기 위해 이 자리에 나섰다”며 “72년 전 어린 소년들에게 채운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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