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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기고] 누가 빚을 져야 하는가 / 전용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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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전용복 ㅣ 경성대학교 경제학 교수

정부는 3차 비상경제회의를 열고 ‘소득 하위 70% 가구에 가구당 100만원(4인 가구 기준)의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일단 환영할 일이지만,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규모와 지원 방법에 다소 실망스럽기도 하다. 필자는 전 국민 직접 ‘현금’ 지원이 금융시장을 포함한 경제 전반을 안정시키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한다. 개인에게 지급된 현금은 경제 전체에 순환되면서 경제를 살릴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 전 국민을 대상으로 현금을 지급하면 국민 모두의 경제적 어려움을 완화할 수 있다. 특히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할 때, 지원 대상 선정 기준의 문제, 수혜 ‘사각지대’ 등의 문제를 피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근 증가한 신용대출 등의 현상으로 짐작건대, 중산층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용대출은 대개 중산층 이상에게만 부여되기 때문이다.

둘째, 내수가 활성화될 것이다. 지난 2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중점 지원 대상으로 선정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대부분은 수출보다는 내수에 의존한다. 이들이 느끼는 수요 부족이 꼭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만은 아니다. 따라서 전 국민 현금 지급은 내수시장을 활성화하고, 이들의 경영 안정화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셋째, 무엇보다 전 국민 현금 지원은 금융시장 안정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41.8조원 규모의 채권시장과 주식시장 안정화 기금을 조성한다지만, 이것은 금융시장 ‘내부’의 자금으로 돌려 막는 방식이다. 하지만 정부가 국민 모두에게 현금을 지급하면 그 돈은 금융시장으로 흘러들어 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시장 ‘외부’에서 추가로 공급되는 자금이므로, 금융시장의 자금경색을 크게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2차 비상경제회의를 통해 결정된 100조원 규모의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의 세부 항목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려움에 빠진 민간 주체들에게 새로운 ‘대출’을 해주거나, 기존 대출의 상환 유예, 이자 경감, 대출 보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금융시장이 얼어붙고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에 대한 대출을 꺼리는 상황에서 저리로 운영자금을 융통해주는 일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위기를 빚으로 견디라는 주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일까?

정부가 전 국민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일은 민간(가계와 기업) 대신 정부가 빚을 지는 일이다. 위기가 지나간다 하더라도 민간의 빚은 그대로 남아 재도약을 더디게 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빚은 성격이 민간의 그것과는 다르다. 정부가 진 빚은 그렇게 다급하게 상환 독촉을 받지도 않고, 경제가 성장해가면서 그 부담이 점점 작아진다. 또 정부는 민간이 아니라 한국은행이라는 공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려도 된다. ‘국가부채위기’와 같은 극단적인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채무 수준은 그러한 극단적 상황을 낳을 만큼 높은 수준이 아니고, 유능한 경제관료들이 충분히 관리 가능할 것이다. 민간 레포(환매 조건부 채권 매매) 시장의 성장이 보여주듯, 어쩌면 시장에서 정부의 빚(국채)을 절실히 요구하기도 한다.

지금은 명백히 위기의 상황이다. 빚이 아니고는 극복하기 어렵다는 점에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내놓고 있는 정책 패키지는 누가 빚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생략된 채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인가 민간인가? 나는 정부가 지는 빚이 좀 더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더 ‘바람직’하다고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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