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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김혜진, 노동 더불어 숲] 코로나19 이후 불안정 노동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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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혜진 ㅣ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코로나19가 가라앉으면 희생을 감내했던 이들의 삶은 회복될까? 콜센터 노동자들의 일터는 쾌적해질까? 간병인들은 병원에서 유령 취급을 받지 않게 될까? 대리기사는 생존의 위협에서 자유로워질까? 택배노동자는 과로노동을 하지 않아도 될까?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게 될까? 코로나19는 어떤 이들이 권리에서 배제되어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일상에서 권리가 없던 노동자들이 위기 상황에 더 취약했다. 경제위기의 후폭풍이 몰려온다고 한다. 그러니 더더욱 이들의 삶에 대해 말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경총은 코로나19가 초대형 복합위기로 가고 있다면서, 40개 입법과제를 제출했다. 법인세와 상속세 인하, 화학물질 규제 완화, 자유로운 해고, 노동시간 유연화, 최저임금 개악, 노조활동 제한 등이었다. 위기의 시기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축소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하자고 한 것이다. 염치가 없는 제안이기는 하지만 지금이 근본적 변화를 필요로 하는 위기상황이라는 인식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다만 그 방향은 불안정한 노동자의 권리 보장이어야 하지 않을까.

먼저, 권리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데 힘쓰자. 콜센터 노동자들이 감염병에 취약한 환경에서 일했던 이유는 대부분 용역이었기 때문이다. 정규직이 아니라서 노동환경을 바꿀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간병인이 마스크를 지급받지 못한 이유는 병원의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서 안전을 요구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안정 노동자들이 안전을 위해 제안도 하고 요구도 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불안정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불안정 노동자에게 노동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일하는 모든 이들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사회보험 구조를 바꾸자. 노동자가 아니라 자영업자라고 규정된 학습지 교사, 건설 노동자는 ‘해고' 때문이 아니라 ‘일이 없어' 생계에 곤란을 겪었다. 문화예술인들은 고용보험 적용 대상도 아니었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아서 휴업수당을 받지 못했다. ‘고용'을 전제로 만들어진 고용보험제도는 불안정 노동자들을 위기에서 보호하지 못했다. 고용보험을 비롯한 사회보험 전체가 ‘고용'을 전제하지 않고 일하는 사람 모두의 보편적 권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

정부 지원을 받는 기업들은 해고를 하지 못하게 하자. 정부는 기업의 도산을 막기 위해 100조원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대한항공은 정부의 특별지원을 받으면서도 자회사 하청 노동자들을 해고한다. 이런 기업에 왜 세금을 투여해야 하나? 정부가 기업에 지원을 하려면 전제를 두어야 한다. 해고 금지 외에도 기업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제도를 마련하자.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는지를 감시하는 구조를 만들자. 이 위기 이후 기업의 경영은 더 민주적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산업정책을 다시 세우자. 코로나19는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돌봄서비스를 민간기업에 위탁하는 것이 얼마나 문제인지도 보여주었다. 공공 영역을 확충하고 사회서비스를 제대로 된 공공 영역으로 포괄해가자. 중소 하청업체들이 타격을 입은 것은 원청의 불공정 거래로 한계상황에까지 내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디지털화로 인한 플랫폼 노동은 책임을 아래로 떠넘기는 구조였음이 드러났다. 원청 대기업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대기업 중심의 수직적 구조, 이윤 중심의 산업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1997년 경제위기가 몰아칠 때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에 순응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미래를 박탈당한 불안정 노동의 증가였다. 이제 그런 구조조정은 안 된다. 불안정 노동자들의 삶과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를 만들고,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묻고자 한다면, 불안정 노동자들이 직접 나서서 먼저 목소리를 내야 한다. 불안정 노동자들은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여야 한다. 그래야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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