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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차별금지법은 다름 인정하는 연대의 손잡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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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은 함께살기법] ④에필로그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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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기획을 준비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 10월입니다. 그때 가장 두려웠던 건 6개월을 앞둔 4·15 총선이었습니다. 다수의 마음을 얻고자 다투는 그 치열한 공간에서 소수자의 목소리는 항상 뒤로 밀려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걱정했던 것은 보수 개신교 세력이었습니다. 난민과 이주노동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조직적으로 퍼트려온 이들은 선거 때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표로 계산할 수 있는 ‘숫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대 양당은 늘 그 숫자에 동조하거나 무릎 꿇어 왔습니다.

“성소수자 문제, 이런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일으킬 수 있는 정당과의 연합은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한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은 지난달 17일 비례연합정당 추진 계획을 밝히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시 민주당이 비례연합을 타진하던 녹색당 비례대표 6번 김기홍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을 겨냥한 말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2017년 커밍아웃한 트랜스젠더입니다. 같은 날 오전 심재철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녹색당은 동성혼을 법제화하겠다고 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시기상조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비례연합정당은 동성혼을 찬성하는 것인가 반대하는 것인가”라고 발언했습니다.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가 상대 정당을 공격하는 빌미가 됐습니다. 국민이 거의 유일하게 주권을 행사하는 선거에서도 어떤 국민들은 존재가 지워져야 했습니다.

한겨레

그래서 누군가는 ‘내가 여기 있다’고 외쳐야 했습니다. <한겨레>를 통해 서로에게 편지를 주고받은 트랜스젠더 예비역 하사 변희수와 숙명여대 합격생 한주연(가명)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슬프고 힘든 일이지만 지금이 아니었다면 미래에 누군가 겪었을 일이고 또 똑같이 상처받았을 일입니다. 힘들지만 그래도 미래에 다른 분들이 저희의 평범한 일상을 돌려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계속 내주시기를 희망하면서 용기를 내서 앞으로 나아가야겠습니다.”(한주연) “우리를 향한 혐오가 부끄러운 행위가 되고 오명이 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변희수)

혐오와 차별 그리고 배제는 특정 대상에만 고여 있지 않습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드러난 혐오의 역동이 그 사례입니다. ‘우한 폐렴’으로 시작한 코로나19의 이름은 ‘대구 폐렴’으로, 그리고 ‘신천지 코로나’로 바뀌어갔습니다. 방역을 위한 적절한 통제는 분명 필요한 일입니다. 전염병 확산을 막는 데 협조하지 않은 개인을 비판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염병을 특정 지역이나 인종, 집단에 대한 혐오와 연결하는 일은 방역에도 불필요할뿐더러 고통받는 이들만 늘리는 행위입니다. 6년 전 한국에 온 중국 유학생 장린(가명·28)에게 ‘중국인 혐오’는 처음 경험하는 낯선 공포였습니다. “우한 폐렴이 걱정이다. 중국동포 도우미를 그만 오게 해야겠다” 등의 커뮤니티 글은 그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되레 유럽에서 코로나19가 번지자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크게 늘면서 장린의 상처는 우리 모두의 것이 됐습니다.

혐오는 약자의 삶은 물론 생명마저 위협합니다. ‘정신장애인은 위험하니 폐쇄병동에 가둬야 한다’는 편견 속에 경북 청도대남병원 정신병동 입원자 103명 중 101명은 코로나19에 감염됐고, 7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이 필요합니다. 차별금지법은 많은 ‘가짜뉴스’들처럼 종교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누군가를 처벌하기 위해 만드는 법이 아닙니다.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진다고 우리 사회의 혐오와 차별이 당장 사라질 리도 없습니다. 그저, 서로 다른 우리지만 그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를 상징하는 법일 뿐입니다. 인정과 연대, 손잡음의 선순환을 만들어내자는 호소입니다. 21대 국회가 그 호소를 받아들여주길 기대합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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