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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야구중계 합성에 AI 음성 강의까지' 난장판 된 대학 온라인 강의…환불 요구엔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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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대 크로마키·한양대 AI 목소리·고려대 재탕 강의…
대학가 온라인 강의 3주 차, 다양한 황당 사례 ‘속출’해
장기화하면서 ‘부분 환불’ 목소리도…"10~25% 적정"
대학들, 논의 아예 없거나 "추가 비용 들어 환불 어렵다"

지난달 30일 한국외국어대의 ‘대학 영어’ 온라인 강의 시간. 강의 창을 연 학생들은 담당 교수의 기이한 모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배경을 지우는 크로마키(영상 합성) 기능이 파란색 옷을 입은 교수의 몸에 잘못 적용된 것이다. 1시간여의 강의 시간 내내 교수의 일부 얼굴과 몸에는 때아닌 야구 경기가 생중계되는 기괴한 장면이 연출됐다.

한국외대 학생들의 커뮤니티에는 "영상을 한 번이라도 확인하고 강의를 게시한 건지 모르겠다" "강의 준비에 성의가 없다" 등 비판이 줄을 이었다. 이 학교에서는 교수가 온라인 강의 도중, ‘음란물 동영상’을 카카오톡 메신저로 전달받는 모습이 그대로 노출되는 사고도 있었다. 이 교수는 수업에 배제됐고, 학교 측은 사과문을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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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을 빚고 있는 한국외대 모 교수의 강의 첫 화면 캡처. 교수 몸에 크로마키가 씌워져 야구장 모습이 중계되고 있다. /한국외대 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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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대 관계자는 "전(全) 재학생을 대상으로 온라인 강의 피드백을 2일까지 취합은 한 상태"라며 "문제 있는 과목에 대해서는 학과에 전달해 분명히 조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지난달부터 시작한 대학 온라인 강의에 대한 불만 사례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수주 째 이어지고 있는 온라인 강의의 품질이 학생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면서다. 대학가에선 등록금 부분 환불에 대한 학생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지만, 대부분 대학은 등록금 환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AI 목소리·강의 재탕…"교수님 정말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황당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28일 한양대에서는 공과대학 전공 교수가 기초 과목인 ‘공업수학’ 과목에서 문자를 음성으로 변환한 ‘전자 음성’ 강의를 제공해 논란이 됐다. 교수의 육성 대신 어눌한 말투의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이 교수는 더욱이 온라인 강의 첫 2주간의 수업을 모두 과제로 대체했던 터라 학생들의 불만은 더 커졌다.

1일 고려대에서는 전공과목으로 개설된 ‘불교 철학 특강’ 과목이 논란이었다. 외부 사이트에서 16년 전 제작돼 판매되고 있던 강의를 대학 온라인 강의로 내보낸 것이다. 이 강의는 한 외부 강의 사이트에서 2004년 ‘불교 철학 입문’이라는 이름으로 개설됐고, 3만9000원을 결제하면 누구나 수강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등록금이 얼마인데 3만9000원짜리로 둔갑했느냐"면서 "학교의 해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외에도 중앙대에서는 공과대학의 한 교수가 온라인 강의 3주 차까지 자신의 강의 대신 다큐멘터리 영상을 올리고 감상문을 쓰라고 요구해 논란이 일었다. 서강대에선 인문학부 교수가 강의 영상조차 올리지 않은 채 "수업 교재 몇몇 페이지를 읽어보라"고 지시해 문제가 됐다. 학생들이 동시 접속할 때 생기는 서버 불안정도 여전히 고질적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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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을 빚고 있는 고려대학교 모 교수의 강의. 같은 내용의 강의가 외부 일반 교양 사이트에서 3만 90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아트앤스터디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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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낮은 강의, 부분 환불이라도" VS "등록금에 수업료만 포함되는 것 아냐 어려워"
올해 1학기 전체로 온라인 강의를 확대하는 대학이 점차 늘면서,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UNIST(울산과학기술원)와 이화여대는 2020학년도 1학기 전체를 온라인 강의로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외에도 KAIST(한국과학기술원)와 성균관대는 온라인 강의를 무기한 연장했다. 고려대·연세대·중앙대 등은 5월 중순까지로 온라인 강의 기간을 늘렸다.

학생들은 오프라인에 비해 온라인 강의의 질이 떨어지고, 학교 시설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등록금 중 일부를 환불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대학생 최모(21)씨는 "학원보다도 질이 떨어지는 강의를 몇 배나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들어야 하는 상황을 납득할 수 없다"며 "도서관이나 동아리방 등 학교 시설도 전혀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양심이 있다면 대학이 부분 환불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연세대 재학생으로 구성된 연세교육권네트워크가 연대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1학기 등록금 부분 환불’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94%가 찬성 의견을 내놨다.

학생들의 불만은 점차 단체 행동으로 이어졌다. 지난달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게재된 "대학교 개강 연기에 따른 등록금 인하 건의"라는 제목의 청원은 13만8000여 명의 동의를 얻고 종료됐다. 지난 1일 대학생 단체 ‘코로나 대학생 119’는 서울 영등포구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사무실 앞에서 전국 47개 대학과 550명의 학습권 피해 사례를 모아서 입학금과 등록금을 돌려달라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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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앞에서 ‘코로나 대학생 119’ 소속 학생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 사태에 대한 대학의 실질적인 대책 수립과 입학금·등록금 환불을 요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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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의 얼마 정도가 환불돼야 하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10~25% 정도가 현실적으로 적정하다"는 의견이 교육계의 중론이다. 안진걸 반값등록금 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학생들의 등록금에는 단순 수업료 외에 교수와 질의응답, 타 수강생과 논의 기회 등도 포함돼, 등록금의 25% 정도는 환불이 돼야 한다"고 했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상무이사는 "학생들이 침해 받은 부분도 있으나 학교도 코로나로 피해를 입었고, 교수들 급여를 주는 데도 차질이 있을 것"이라며 "현실적인 입장을 따져봤을 때 10% 내외가 적정하다"고 했다.

대학 측은 등록금에 관한 학생 사회의 요구를 인식하고는 있으나, 온라인 강의 준비로 인한 비용이 추가로 발생했기 때문에 등록금 부분 환불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의 한 대학 관계자는 "대학 등록금에는 수업료, 시설운영비 등 다양한 부분이 복합적으로 책정돼 있고 이번 온라인 강의 전환에도 상당한 비용이 투입되면서 반환이 쉽지 않다"며 "학생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 실험과 대면이 반드시 필요한 강의는 보강 수업을 통해서라도 제공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총학생회로부터 등록금 부분 환불 요구를 접수한 뒤, 논의를 진행했던 성균관대는 "학생들의 불만을 고려해 학생들이 한 학기에 들을 수 있는 수강 학점을 3학점 늘리고, 강의 당 수강 인원을 20% 증원하기로 했다"면서도 "등록금 환불은 없을 것"이라고 공지했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한국외대 등 대부분의 주요 대학들은 "관련 논의를 진행한 바 없다"고 답했다.

박소정 기자(soj@chosunbiz.com);민서연 기자(mins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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