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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착하지 않아도 돼” 땅끝에서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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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박홍규의 이단아 읽기

(17) 메리 올리버(1935~2019)

다른 세상을 꿈꾼 반항의 시인

퀴어 커뮤니티, 프로빈스타운에서

동성 파트너와 살면서 시 써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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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애송하는 메리 올리버의 시 ‘기러기’의 번역은 하나같이 “착하지 않아도 돼”로 시작된다. 여기서 ‘착하다’는 말은 ‘굿’(good)을 번역한 것인데 거기에는 ‘착하다’는 뜻 외에도 ‘순하다’ ‘말을 잘 듣다’ ‘얌전하다’라거나 ‘튼튼하다’ ‘강인하다’ ‘확실하다’거나 ‘유능하다’ ‘똑똑하다’ 등등, 여러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다.

“사막 너머 백 마일

후회하며 무릎으로 기지 않아도 돼

몸속 나약한 동물이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두면 돼

네 상처를 말해 봐, 그럼 내 상처를 말할게”

‘기러기’는 그 첫 행에 이어 이렇게 이어지는데 이는 도덕적으로 말하는 착한 사람이거나 세상에서 말하는 잘난 사람이 아니어도 좋고, 종교적인 고행 같은 것을 굳이 할 필요가 없으며, 허약한 의지로 살아도 좋고, 서로 상처를 드러내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뜻으로 나는 읽는다.

“그러는 동안 세계는 굴러가고

그러는 동안 태양과 맑은 빗방울은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여,

대초원과 깊은 숲,

산과 강 너머까지

그러는 동안 기러기는 맑고 푸른 하늘 드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가”

라며 아름다운 자연 속을 날아가는 기러기에게 향한다.

그러고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

기러기처럼 소리쳐봐, 격하고 뜨겁게-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한가운데라고”

라는 격려로 끝난다.

이 마지막 셋째 부분으로부터 나는 첫 행을 “순응하지 않아도 돼”로 읽고, 네가 있어야 할 세상을 ‘상상해봐’라는 당부가 이 시의 메시지라고 이해한다. 그래서 나에게 이 시는 존 레넌의 ‘이매진’과 연결된다. 우리를 가로막고 괴롭히는 국경도, 돈도, 종교도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자는 노래로 들린다.

반항과 반체제의 퀴어타운

나의 이런 이해는 문학인들이나 영문학 교수들의 이해와는 사뭇 다른 것 같다. 연애소설의 제목으로 위 시에 나오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가져오거나, 교수들이 위 시에 대해 서양의 물질문명에 반하는 동양의 무위자연 사상을 노래했다고 하거나, 심오한 자연시니 생태시라고 하며, 기러기처럼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깨달아야 한다거나 ‘관계적 자아’라는 철학적 개념의 시라고도 하는 식의 심각한 해설에 나는 쉽게 동의하지 못한다. 도리어 이 시를 사랑이나 자연 자체에 대한 추상적인 의미 부여가 아니라, 비현실적인 종교적 차원의 전체론적 자연관이나 구체성이 없는 관계관의 형이상학을 벗어나, 형이하학적인 차원의 나약한 본능의 존재인 인간 본연의 반항적 의지를 긍정적으로 노래하는 것으로 읽는다.

따라서 이 시의 자연은 자연 자체나 생태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본능과 같은 현실의 자연이고, 그 본능을 억압하는 국가나 도시나 자본이나 문명이나 기술은 물론이고 가족이나 도덕과 같은 비자연적인 ‘관계적 자아’까지 거부하는 것이 이 시의 메시지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는 헨리 소로와 월트 휘트먼의 시와 통하는 대단히 아나키적이고 반순응적이며 반체제적인 시다. 그래서 나는 이 시를 좋아한다. 미국의 청춘들이 이 시를 반항의 힙합처럼 노래하는 것도 그래서라고 이해한다.

무엇보다도 나는 메리 올리버가 휘트먼이나 에밀리 디킨슨처럼 동성애자로 살았던 점에도 위 시를 통해 공감한다. 시인이 평생 “내 삶은 나의 것”이라고 했던 외침을 듣는다. “내 삶을 사는 것, 그리고 언젠가 비통한 마음 없이 그걸 야생의 잡초가 우거진 모래언덕에 돌려주는 것.” 그의 산문집 <긴 호흡>의 그 언덕은 메리 올리버가 평생을 사랑하는 파트너와 살았던 프로빈스타운에 있다. 그곳은 사하라와 같은 완전한 불모지다. 그래서 동성애자인 마이클 커닝햄은 <땅끝>이라고 부른 그곳의 삶을 기록했다. <땅끝>이 우리말 번역서에서는 <아웃사이더 예찬―문학적이고 섹슈얼한 프로빈스타운 여행기>라는 너무나 상업주의적인 제목으로 바뀌었지만, 그 내용은 섹슈얼한 여행기 따위가 아니라 15년간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의 삶이다.

나도 그 반순응의 땅끝을 사랑했다. 미국 보스턴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땅끝 마을인 그곳에 가면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작품이 절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마천루 숲과 달리 아무도 없는 해변의 외로운 집들을 그린 에드워드 호퍼의 풍경이 바로 그곳이고, 마크 로스코의 정적도 그곳의 사색적 분위기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존 리드나 노먼 메일러의 반항도 그곳 사람들의 기질이고 유진 오닐의 인물들도 그곳 주민들의 얼굴이다. 아니 그 누구보다도 나는 그곳에서 소로를 만났다. 월든의 외로운 소로보다 더 친숙한, 사람들 속의 소로, 불복종의 소로를 만났다.

퀴어타운이라고도 불린 그 마을은 주민 수가 3천명도 안 되는 시골 어촌이다. 1620년에 망명 청교도가 최초의 닻을 내린 그 마을은 이제 망명 동성애 예술가들의 자유 마을이다. 지리상으로는 미국의 일부지만 미국에서 해방된 이단의 땅이어서 많은 사람이 독립의 땅인 그곳에 살았다. 동네의 자그마한 개성적인 집들이나 갤러리나 좁은 거리만 봐도 그곳은 미국이 아니다. 소로를 비롯하여 수많은 이단들은 격하고 뜨겁게 소리친 기러기들이다. 프로빈스타운의 기러기들이다. 메리 올리버는 그 주민의 한 사람에 불과하다. 84년 인생의 반 이상을 그곳에서 산 그녀(1935~2019)에게 그곳은 미국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웠던 보금자리였다.

“가볍고 재미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곳 대부분의 주민들처럼 프로빈스타운은 메리 올리버의 고향은 아니지만 그녀가 시골 출신으로 자연 속에서 자란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 시골은 성적 학대라는 악몽의 지옥이기도 했다. “내가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 어둠으로 가득 찬 상자를 주었다. 이 또한 선물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래서 오두막을 짓고 열네살 때부터 시를 쓰고 음악을 사랑했다. 대학 두곳을 다녔어도 학위를 받지 못한 그녀는 평생 시를 쓴 것 외에 그 삶에 특별한 것은 없었다. 아니 특별했다. 그녀는 우리의 세상과 다른 세상을 꿈꾸었던 시인다운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독되어 있는 권력과 자본 등의 온갖 독을 풀어주는 해독제의 시인으로 살았다. 중독된 인간들에게 시는 해독제로 필수라는 것을 그녀만큼 잘 보여준 시인은 없다.

자연의 야생을 잃은 우리에게 그것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 그는 글에서 그냥 자연에 순응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너는 절대로 엉뚱한 짓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네 삶에 대한 책임을 물어서도 안 된다.” “나는 위험하고 고귀한 것을 다시 생각해보고 싶다. 나는 가볍고 재미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치 내가 날개를 가진 것처럼 아름다워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싶다.” “창조적인 일에 대한 요구를 느끼면서도, 또 자신의 창조적인 힘이 반항적이고 봉기하는 것임을 느끼면서도, 그것에 힘도 시간도 주지 않는 사람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다.”

이단의 보금자리인 프로빈스타운 같은 마을은 덴마크에도 있고 인도에도 있다. 20세기 초에 헤르만 헤세가 살았던 몬테베리타와 같은 마을도 역사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이단의 마을이 있으면 좋으련만 있을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메리 올리버가 “가끔은 세상의 모든 부와 권력보다 더 나은 일이 생긴다.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그것을 알아챌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한 말을 나는 언제나 마음에 새기고 있다.





▶ 박홍규 : 영남대 명예교수(법학). 노동법 전공자지만, 철학에서부터 정치학, 문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관심의 폭이 넓다. 민주주의, 생태주의,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150여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주류와 다른 길을 걷고, 기성 질서를 거부했던 이단아들에 대한 얘기를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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