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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기고] 현실과 따로 노는 3%룰…감사대란 되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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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금 시대 최대 화두는 코로나19 극복이다.세계 인구 50%가 감염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국가들이 국경 봉쇄 등 이동제한조치를 내린 탓에 수출입이 제한받고 있다. 수출을 통해 먹고사는 우리로서는 먹먹할 뿐이다. 불안정한 환율과 유가, 수출 단골 국가들의 이동제한조치는 우리 경제를 어디까지 끌어내릴지 모른다. 특히 우리 기업들에는 말 그대로 시련의 시기이다.

국내 상장회사들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매년 3월은 12월 결산 상장회사들의 주주총회 시즌이다. 주총은 주주에게 지난해 실적을 보고하고, 새로운 사업계획을 약속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한 해 실적을 마무리하는 만큼 감사인이 현장 실사를 한 후 감사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런데 중국에 자회사를 둔 경우나 재고창고가 대구 지역에 있는 경우 감염 위험으로 현장 실사를 하지 못했다. 그에 따라 감사보고서 등을 제때 제출하지 못한 기업이 63곳에 이른다. 재무제표를 승인할 수 없어 아예 주총 일자를 뒤로 미루거나, 확진자가 본사나 공장으로 올지 모른다는 걱정에 주총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긴 상장회사들도 여럿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주총에 영향을 주자, 상장회사들의 관련 문의가 쇄도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상담과 설문을 통해 상장회사들의 애로사항을 종합해 정부당국에 전달하고 금융위원회와 법무부의 지원을 받아 '정기주총 안전 개최를 위한 대응요령'을 준비하는 등 원활한 주총을 위한 관련 조치를 신속하게 마련했다. 위임장, 전자투표 등 비대면 의결권 행사 수단을 적극 도입하고, 발열이 있는 주주는 별도 장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안내했다.

그러나 주총 안건 부결 사태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듬성듬성 주총장에 보이던 주주들도 코로나19 때문에 아예 발길을 끊었다. 2년 연속 주총이 부결된 어떤 기업 주총 장소에는 단 한 명의 주주도 오지 않았다. 기업들은 코로나19 탓에 예전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전자투표나 위임장을 부탁했지만 안건 부결을 막을 순 없었다. 주총에 참여해 달라고 호소할 수는 있지만, 강제로 끌고 올 수는 없다.

상장회사가 주총을 준비하면서 아쉬운 점은 주총에 적극적인 대주주 등의 의결권이 상법에 의해 3%로 제한돼 있어서 의안 통과에 필요한 25% 이상 찬성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법을 개정해 감사나 감사위원 선임 시 적용되는 '3%룰'을 없애든지, 현실에 맞게 주총 결의 요건을 출석 주주 수 기준으로 바꿔야 주총 대란을 원천 봉쇄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기업들은 어려워진 경제 여건에서 다시 뛰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최근 경영계는 우리 경제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 필요한 40대 입법 개선과제를 국회에 건의한 바 있다. 여기에는 상장회사협의회에서 지속적으로 건의했던 상법상 3%룰 폐지 등도 포함돼 있다.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말이 있다.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한다는 의미다. 기업은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과 국민연금을 가장 많이 내는 우리 공동체의 일원이다. 기업이 살아야 마실 물이 많아진다.

이제는 국회와 정부가 기업에 힘을 불어넣어줄 때이다. 다시 경제를 살려야 할 때, 때마침 국회가 새롭게 구성된다. 21대 국회가 쓰나미 같은 거대한 위기에 봉착한 기업들에 버텨낼 수 있는 교두보를 만들어주길 염원한다.

[이기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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