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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박인휘의 한반도평화워치] 외교·안보정책 주도하는 의회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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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선 매케인·샘 넌 등 외교·안보통 의원 존중받으나

한국 의원들은 외교·안보를 대통령 영역이라며 소극적

대외 관계가 제도적 합의와 법치에 기반해 정립되려면

국회에서 정교하고 튼튼한 외교·안보 정책 만들어야



총선과 한반도평화



총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은 선거에 얼마나 영향을 줄까. 왜 우리는 미국이나 유럽처럼 의회 지도자 중 존경받는 외교전문가를 찾기 힘들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 유권자의 투표 성향에는 ‘3 대 4 대 3’의 법칙이 발견된다. 진보성향 유권자 30%, 보수성향 유권자 30%, 중도 성향이면서 무당파인 유권자가 40%에 이른다는 논리다. 17대 대선에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에게 표를 던진 26%와 민노당 권영길 후보에게 투표한 3%, 19대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와 유승민 후보가 함께 거둔 30%의 득표는 웬만해서는 이념 성향을 바꾸지 않는 진보세력과 보수세력 30%를 각각 상징한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등장이 예견되던 상황에서 이 두 세력은 사표(死票)를 각오로 투표권을 행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외교·안보 정책에서 진보·보수 기준은 무엇일까. 한반도는 분단 상태라서 그런지 외교·안보 이슈가 보수·진보의 기준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한반도 평화를 위해 무엇이 우선돼야 하는가. 북한의 핵 포기인가, 남·북한 평화로운 관계 정착인가. 한반도 평화·안보를 위해 민족 공조가 우선하는가, 아니면 한·미 공조가 우선하는가? 전문가들은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한 채 이분법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총선에서 영향 없는 외교·안보 이슈

중앙일보

샘 넌 전 상원의원(왼쪽)과 고(故)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 넌 전 의원은 리처드 루거 전 상원의원과 함께 1991년 구소련에 속했던 우크라이나 등의 핵무기·핵시설 폐기 지원 방안인 ‘넌-루거 법안’을 발의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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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는 총선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대선은 외교를 포함한 국가 비전을 평가하는 ‘전망적 투표’ 행태를 보이고, 총선은 주로 경제 상황을 평가하는 ‘회고적 투표’ 행태를 보인다. 더구나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사상 초유의 휴교, 예산 집행, 항공로 폐쇄,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이 거론된다. 외교·안보 이슈가 비집고 들 틈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필자는 외교·안보 이슈가 총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법한 사례로 14대 총선과 16대 총선을 꼽는다. 1992년 치러진 14대 총선은 냉전 종식의 흐름을 잘 탄 북방정책의 토대 위에서 중국과 러시아와의 수교가 낭보를 울리던 시점이었다. 당시 여당이던 민자당은 민주당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두지만, 전문가들은 외교가 선거에 반영된 효과라기보다는 13대 국회에서 이뤄진 3당 합당이라는 전대미문의 정치연합에서 비롯됐다고 평가한다.

16대 총선은 2000년 3월 9일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선언’ 직후 열린 선거였다. 한반도 외교·안보의 변곡점이 형성되던 중이었고, 6·15 남북 정상회담과 DJ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이어지는 평화 무드 속에서 치러졌다. 하지만 결과는 야당인 한나라당이 133석을 차지했다. 집권 민주당 115석, 자민련 17석을 합해도 보수적 성향을 보인 유권자들이 더 많았다.

한국에는 왜 미국 의회의 샘 넌이나 존 매케인 같은 외교·안보통 지도자가 없을까. 샘 넌은 68~97년 하원과 상원을 거치면서 미국 외교·안보 정책의 최고 전문가로 이름을 남겼다. 북핵 폐기 방안을 논할 때 자주 거론되는 ‘넌-루거 프로그램’의 주인공이다. 91년 구(舊)소련 붕괴 당시 러시아 이외 지역의 핵무기를 폐기하는 방식을 고안해 냈다. 2018년 작고한 매케인 상원의원은 같은 당 출신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 문제에 미숙하게 대처했을 때 당파를 떠난 비판과 전문적 식견으로 존경받았다.

우리 국회의 경우 외교·안보 분야 인재를 찾기 힘들다. 외교·안보 이슈를 대통령 고유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정 운영 과정에서 조세·과학기술·환경 등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외교·안보는 대통령이 직접 관리하는 핵심 정책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문제나 한·미동맹을 대통령 아닌 다른 사람이 책임진다는 게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외교·안보 인재 찾기 힘든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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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영웅인 매케인 전 의원은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등 동맹을 중시하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정책을 비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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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외교 전문가를 찾는다면 비례대표로만 4선 기록을 가진 고 이동원 외무장관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는 의정 활동에서 두드러진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오히려 6선 의원 경력의 고 김대중 대통령이 평화주의와 새로운 한·일 관계 정립 등 외교·안보 전문가 면모를 보였다. 94년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실린 싱가포르 리콴유 수상과의 ‘아시아적 가치’ 논쟁은 지금도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남북한 간 크고 작은 합의가 매번 깨지고, 미·중 두 강대국 사이에서 국가이익 확보가 요원해 보일 때마다 우리는 외교 관계가 다양한 제도적 합의와 법적 조치 안에서 튼튼하게 정립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치밀하고 정교한 입법 활동을 통해 구현돼야 한다는 얘기인데, 우리 국회에는 요원한 과제처럼 보인다.

진보와 보수는 갈등의 원천이지만 동시에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사회적 에너지이기도 하다.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정당 갈등이 21대 국회에서는 사라지기를 기원한다.

■ 선거와 외교의 결정적 순간들

중앙일보

베트남전쟁 기밀이 담긴 미국의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한 뉴욕타임스 1971년 6월 13일자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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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와 외교의 관계를 보여주는 역사적 장면들을 살펴보자. 2006년 미국 중간선거는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 방향을 바꿨다.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상대로 두 개의 대규모 전쟁을 치렀던 부시 행정부는 상원 6석과 하원 27석을 잃어 여소야대에 직면하게 됐다.

예상치 않았던 결과는 한반도에서 나타났다. 북한을 상대로 2007년 2·13 합의를 하고 이후 각종 대화를 이어가다 2008년 6월에는 영변 냉각탑을 폭파하는 극적 장면이 연출됐다. 당시 CNN은 이 장면을 전 세계에 중계했다. 2002년 1월 9일 미국 합동 연설에서 북한을 이라크·이란과 함께 ‘악의 축’이라고 비난하면서 정상 국가로 상대하지 않았던 부시 행정부가 갑자기 북한이 좋아졌거나 관대해진 것은 아니다. 중동정책 실패, 중간선거 패배, 아시아 지역과 북한 문제의 활용 등 세 변수가 복잡하게 연결된 결과로 봐야 한다.

뉴욕타임스가 1971년 6월 13일 폭로한 ‘펜타곤 페이퍼’ 사례를 보자. 미국이 45~67년 베트남에 개입하면서 벌였던 추악한 비밀들이 폭로됐다. 당시 닉슨 대통령 당선 이전의 일들이라고 해도 미국의 외교적 수치가 전 세계에 공개되며 현직 대통령이 위기를 맞았다. 72년 미국 대선은 펜타곤 페이퍼와 베트남 전쟁으로 덮였다. 하지만 닉슨은 민주당의 조지 맥거번 후보를 상대로 압도적 승리를 거두며 재선했다. 베트남 전쟁이라는 20세기 미국 최대의 상처가 다른 국내 변수들에 의해 고스란히 덮여버린 경우에 해당한다.

한국 사례로 지난 총선은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줬다. 2016년 1월 6일 북한은 새해 출발과 함께 4차 핵실험을 전격 실시했다. 강 대 강 대응을 이어오던 우리 정부는 2월 10일 개성공단 운영을 전면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후 개성공단 폐쇄와 사드(THAAD) 배치, 한·중 갈등 등을 겪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집권 새누리당은 24석을 잃었고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1석을 추가하게 된다. 야당으로서의 컬러를 견지하던 국민의당이 38석을 확보한 것을 고려하면 여당 입장에서는 참패한 선거였다. 북한을 한반도 위기의 책임자로 비난했던 정부가 위기 국면을 끌어올린 데 대해 유권자 불만이 표출된 선거로 평가된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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