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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성태윤의 이코노믹스] 가계·기업·정부 쓸 돈 없는 상황서 코로나 충격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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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 성장으로 기업 부담 가중

경제활동·국민소득 모두 마이너스

세금 올려 ‘거위의 배’ 갈라질 위기

시장경제 원칙으로 돌아가야 탈출



소득주도 성장으로 증폭된 경제 충격



중앙일보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우리나라에서 한 사람이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나타내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19년 3만1754달러로 2018년도의 3만3346달러에 비해 약 5% 감소했다. 국내총생산과 유사한 개념이지만 평균 생활 수준에 가까운 1인당 국민총소득(GNI) 역시 3만2047달러로 2018년 3만3434달러에 비해 4% 줄었다. 즉, 달러 표시 1인당 경제활동과 국민소득은 2019년 큰 폭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달러 표시 국민소득 자체가 준 것도 충격이지만 올해는 상황이 더 나쁘다. 특히 1분기에는 코로나19 사태로 마이너스 성장의 가능성을 보이고, 원화 가치도 불안정해 올해도 달러 표시 1인당 GDP나 GNI는 2년 연속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1990년대 이후 2년 연속 감소한 경우는 1997~98년 외환위기와 2008~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정도다. 또 우리 경제의 실질 GDP 성장률은 2017년 3.2%에서 2019년 2.0%로 크게 하락했는데, 1990년대 이후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제외하면 2.0% 수준까지 위협받은 때가 없었기에 국민이 느끼는 어려움은 절실하다.

암울한 현실은 ‘소득주도 성장’의 이름으로 노동비용 상승 충격이 가해질 때 충분히 예견됐던 상황이다. 최저임금을 2년 사이에 30%가량 증가시키고, 생산성 향상 없이 근로시간을 경직적으로 단축하면서 노동비용을 급격히 증가시켰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책은 고용이 유지되는 사람에게는 혜택이지만, 기업이 기존 고용인원을 줄이거나 신규채용을 억제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노동비용 충격이 가해지기 시작한 2018년도 취업자 증가는 10만 명 수준에 머물렀는데, 2010~17년까지 취업자 증가 폭이 연간 평균 38만명이었음을 고려하면 상당한 감소다. 2019년 30만1000명으로 회복됐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해 단시간(1~17시간) 근로자 증가 폭 30만1000명과 같은 수치이다. 더구나 취업자 증가 가운데 60세 이상이 37만7000명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민간의 안정적인 일자리 공급은 감소했고 정부의 단시간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메꿔졌을 가능성을 뜻한다. 이렇듯 제대로 된 일자리가 공급되지 않는데 가계소득이 증가했다고 느끼기 어렵다.

기업 영업이익 반 토막에 재정 펑크

중앙일보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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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어려움도 마찬가지다. 코스피 상장사(금융업 제외)의 2019년 실적(연결기준)에 따르면 2018년 대비 매출액은 0.47% 커져 거의 증가하지 못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크게 줄어 -37.04%와 -52.82%를 기록했다. 금리가 낮아 자본비용이 급증하지도 않았고, 생산자물가 상승률도 0.0%여서 중간재 가격 상승의 여파도 없다. 그러니 노동비용 문제가 기업이익을 훼손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 경제를 견인하던 수출도 큰 타격을 입었다. 코로나19 영향이 본격화하기 전에도 비용 증가에 따른 국제 경쟁력 약화와 반도체 등 주력산업 부진이 겹쳐 관세청 통관기준 수출은 2019년 10.4% 감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의 두 자리 감소다.

따라서 시장의 정보를 빠르게 반영하는 금융시장 지표들이 부진한 것은 놀랍지 않다. 뉴욕 주식시장이 2018~19년도 2년에 걸쳐 (다우존스 기준) 15% 상승하는 동안, 같은 기간 우리 코스피는 2018년도 첫날 2483.63에서 2020년도 첫날 2201.21로 12% 떨어졌다. 결국, 가계와 기업 모두 쓸 돈이 없고 생존을 걱정하는데 코로나19까지 닥쳤기에 그 충격이 클 수밖에 없고, 증시가 크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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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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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가계와 기업뿐 아니라 정부도 쓸 돈이 없다는 것이다. 2019년 정부가 거둬들인 세수는 정부가 목표로 정한 세입예산에 비해 부족해 2014년 이후 5년 만에 결손이 발생했다. 2018년부터 최고 법인세율을 22%에서 25%로 올렸지만, 기업 실적 악화로 세율인상에도 불구하고 계획된 법인세 세수를 확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특히, 양도소득세와 근로소득세, 상속증여세, 부가가치세를 세입예산보다 더 거둬들였음을 고려하면 국민이 체감하는 조세 부담은 증가했는데 정부가 거둔 돈은 오히려 부족해진 것이다.

따라서 세금 인상이 ‘거위의 배’를 가르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경제활동을 위축시키지 않으면서 세수를 확보할 수 있는 적절한 세금 책정과 지출예산 편성이 중요해지고 있다. 경기 악화와 소득 감소로 올해 정부가 걷을 수 있는 세수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실제 경제성장률 자체도 낮아졌을 뿐 아니라 그 수치 대부분이 정부 지출과 관련된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2019년도 경제성장률 2.0%포인트 가운데 민간은 4분의 1 정도인 0.5%포인트를 차지하고, 그 세 배인 1.5%포인트는 정부 부문에서 기여했다. 정부지출이 팽창하면서 재정적자가 커져 2020년 관리재정수지는 GDP 대비 4%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외환위기 직후 대규모 재정이 동원되던 1998년 4.7% 적자 이후 가장 큰 폭이다. 즉, 가계나 기업만 아니라 정부도 쓸 돈이 없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충격에 노출된 것이다.

정부 무리한 정책으로 모두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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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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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같은 주요 가격 변수에 정부가 무리해서 개입하는 과정에서 시장 메커니즘과 괴리된 정책을 수행한 결과, 가계와 기업 모두 곤란하게 됐고 이에 따른 경기 부진 압력을 완화하려 재정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정부 부담마저 상당히 커진 것이다. 결국, 가계나 기업, 정부 모두가 쓸 곳은 많은데 돈이 없는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경제 메커니즘의 원칙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특히 민간분야 위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경기를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다. 정부 역시 재정확대를 통해 경기 부양을 해야 하는 것은 큰 틀에서 맞지만, 이미 재정 부담이 너무 증가한 현 상황에서는 좀 더 초점이 있는 지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모든 사람을 골고루 지원하는 방식은 효과도 작고 지속도 어려우며 재정에 부담이 되어, 장기화 가능성이 있는 위기 상황에는 대응 실탄을 소진할 뿐이다. 정말 어려운 취약계층, 그리고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예기치 않게 직격탄을 맞은 부문·산업의 노동자 및 기업 지원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 반시장 정책 최대 피해자는 저소득층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과 근로시간 단축을 중심으로 한 정책은 2018년과 2019년 두 해에 걸쳐 국민의 가처분소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7년 4분기 전체 가구(2인 이상)의 월평균 소득은 445만 원인데 2019년 477만 원으로 2년에 7% 상승한다. 하지만 같은 기간 세금이나 연금사회보장 등 공적 부담을 의미하는 비소비지출은 87만 원에서 105만 원으로 19% 급증했다. 결과적으로 소득에서 비소비지출을 뺀 가처분소득은 358만 원에서 372만 원으로 2년간 4% 증가에 그쳤다.

그런데 저소득층에서는 명목소득 자체도 감소했다.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계층의 경우 2017년 4분기 가구 평균소득은 150만 원이었는데 2년 후 132만 원으로 13% 줄어든다. 특히 1분위의 근로소득 감소는 39%에 달한다. 1분위 계층의 가처분소득은 123만 원에서 같은 기간 104만 원으로 16% 줄었고, 소득 하위 20~40% 계층인 2분위의 가처분소득도 감소한다.

자영업자와 무직자를 포함하는 근로자 외(外) 가구의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근로자 외 가구의 전체 평균 가처분소득은 2017년 4분기 307만 원에서 2년 후 304만 원으로 감소했다. 특히 저소득층인 1분위 계층 근로자 외 가구의 가처분소득 감소는 같은 기간 38%였는데, 소득이 높은 4, 5분위를 제외한 1, 2, 3분위 모든 계층에서 근로자 외 가구의 가처분소득이 줄었다.

결국 2018~19년 노동비용 상승 시기에 오히려 저소득층과 자영업자에게 어려움이 집중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시장경제 원칙과 괴리된 정책이 그 의도와 관계없이 경제를 얼마나 취약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한계상황에 있는 계층을 어려움에 빠뜨릴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미 전개된 실물경제 위기에서 간신히 버텨오던 이들에게 닥친 코로나19 사태는 더욱 치명적인 결과를 만들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정책 궤도의 수정이 절실한 이유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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