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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서소문 포럼] 문재인 정부의 ‘세금 파티’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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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위기 충격은 역대급

통합적 리더십 더 절실해져

세금 낭비 포퓰리즘 지양해야

중앙일보

이상렬 콘텐트제작 Chief 에디터


잔인한 봄이다. 수많은 경제적 약자들이 “코로나로 죽나, 굶어 죽나 매한가지”라고 절규한다. 지구촌 누구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위기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자국민들에게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IMF 역사상 세계경제가 이처럼 멈춰 선 것을 목격한 적이 없다”고 말한 것도 처음이다. 우리 경제가 단기간에 받을 타격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넘어설 것으로 봐야 한다. 미국인 1000만명이 2주 만에 일자리를 잃었다. 금융위기 때 6개월 실직자에 맞먹는다. 실업률 30%대, 미국인 셋에 하나가 실업자가 된다는 예측이 현실화하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중소기업의 휴직·권고사직이 대기업으로 번지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3월 골목상권의 옷가게 매출은 -85%, 음식점은 -65%에 달할 것으로 조사됐다. 당분간 경제의 수직 추락은 불가피해 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세계 각국을 극한 경쟁으로 몰아넣고 있다. 식량과 의료물자를 조달해야 하고, 취약계층이 쓰러지지 않게 붙잡아줘야 한다. 이번 경제 위기는 지구촌의 시장 기능이 회복돼야 끝난다. 최대 소비 시장인 미국과 유럽이 살아나지 않고서 위기 해소는 난망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경제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서 있다.

글로벌 위기 때는 각 나라 집권 세력의 실력이 드러난다. 마스크 사태에 이어 전 국민 관심사로 떠오른 긴급재난지원금은 문재인 정권의 역량 가늠자가 될 수 있다. 재난지원금은 약 9조원을 국민들에게 나눠주는 대형 프로젝트다. 잘만 되면 국민들의 생계를 지원하고, 경제를 일으키는 마중물 기능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요소가 이 지원금의 애초 효과를 가로막을지 모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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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재난지원금 결정 과정에서 드러난 분열적 리더십이다. 문 대통령은 “4월 총선 직후 국회에서 추경안이 통과되면 5월 중순 전 지급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야당은 정부의 ‘소득 하위 70% 가구에 최대 100만원 지급’에 반대한다. 그렇다면 총선 후 야당의 반대로 지원금 지급에 차질이 생기면 어떻게 되나. 약속했던 돈을 주지 못하는 것을 야당 탓이라고 할 건가. 왜 여권은 사상 초유의 위기 대책을 결정하면서 야당과의 협력을 도모하지 않은 것일까. ‘지원금 100만원’은 결국 총선용인가.

미국이 비교 사례가 된다. 야당인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밀어붙일 정도로 극단적 대립 상태지만, 위기가 오자 머리를 맞대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현금 지급안을 결정하자마자 여당인 공화당과 함께 야당과의 협상에 나섰다. 버니 샌더스 민주당 상원의원의 반대로 막판 진통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미 의회는 결국 여야 합의로 성인 1인당 1200달러(약 150만원) 지급 계획을 통과시켰다. 코로나 위기는 여야가 함께 지혜를 짜내고 마음을 모으지 않으면 극복 불가능한 초대형 재난이다. 초당적 협력을 끌어내지 못하는 리더십은 위기 돌파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둘째,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득세다. 위기 극복을 위해 돈을 나눠준다면서 구체적으로 누가 돈을 받게 되는지 기준조차 정하지 않았다. 국민들의 불만과 비판이 터져 나오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필두로 갑자기 ‘전 국민 지급’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수조 원이 더 필요한 일을 순식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바꾼다. 그 재원 마련을 위해 정부 지출을 어떻게 구조조정할 지는 관심 밖인 듯 하다. 지금 나라 재정은 악화일로다. 역사상 정치적 승리를 위해 동원된 포퓰리즘은 결국 나라 경제를 골병들게 했다.

셋째, 대책의 근시안적 특성이다. 가구당 최대 100만원의 지원금은 결코 적지 않은 돈이지만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친다. 정부는 이 위기가 한두 달 사이에 끝나고 경제가 정상화된다고 보는 것인가. 바이러스는 부자와 빈자를 가리지 않지만, 취약계층이 겪는 고통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실업은 당분간 일찍이 경험 못한 속도로 늘어날 것이다. 지금 재정은 취약계층을 더 지원하고, 고용보험기금 등 사회 안전망을 더욱 확충하는 데 집중돼야 한다.

재난지원금 논의가 이렇게 산으로 가는 것은 국민들이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내는 세금에 대한 존중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집권세력의 주머닛돈이 아니다. 사람들은 공짜를 좋아하지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재난지원금은 공짜가 아니다. 현재와 미래의 납세자들이 내야 할 세금이다.

이상렬 콘텐트제작 Chief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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