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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기자의 시각] 배민이 자초한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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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최인준 산업2부 기자


"비용 부담이 갑자기 늘어나는 업소가 생겨난 데 대해 무척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음식 주문 앱 배달의 민족(이하 배민)이 6일 사과문을 발표했다. 신규 수수료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한 지 6일 만이다. 음식점 한 곳당 한 달 8만~16만원의 정액(定額) 수수료를 받아 왔던 배민은 지난 1일 주문 성사 때마다 음식 주문액의 5.8%를 떼는 정률제로 전환했다. 예컨대 한 달 배달 음식 매출이 3000만원이면 배민에 174만원을 줘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탓에 매출이 반의반 토막 난 한 음식점 사장은 "하필 이때 꼭 이래야만 했냐"고 하소연했다. 소상공인의 반발에 놀란 배민은 사과문에서 "4월 내는 수수료의 절반을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5·6월엔 다시 변경 요금제를 밀어붙일지 모른다.

10년 전만 해도 길거리 전단의 전화번호를 모아 놓은 서비스에 불과했던 배민은 지난해 점주들이 배민을 통해 올린 매출만 8조6000억원에 이른다. 기업 가치는 4조원 이상이다. 1인 가구의 급증이나 언택트(비대면) 소비와 같이 때를 잘 탄 덕도 있지만, 값싸고 맛난 음식을 정성껏 만든 음식점 사장님의 땀이 녹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배민의 배신'이란 여론에 배민은 억울할 수도 있다. 배민은 "미국, 유럽 등 해외 음식 주문 앱은 10%대 수수료를 받는다. 우린 세계 최저 수수료율이다"라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외국처럼 10%대 수수료였다면 이렇게 짧은 시간에 숱한 음식점들이 배민에 모였을까. '월 8만~16만원 정액 요금'을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때다 싶어 정치권은 숟가락을 얹었다. 선거를 코앞에 둔 정치인에게 국민적 공분만큼 좋은 먹잇감은 없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배민을 향해 '독과점 횡포'라며 공공 배달 앱 개발을 선언했다.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비상경제대책본부장은 아예 "전화로 직접 주문하자"고 했다. 듣기엔 '사이다'같이 시원한 발언이지만, 말처럼 쉬울까. 박원순 서울시장이 내놓은 제로페이의 처참한 실적이 공공 배달 앱의 미래일지 모른다.

자장면 하나 주문하기 위해 낯선 공공 앱을 설치하고 주문 버튼의 위치를 찾아 헤맬 이용자는 많지 않다. 경기도가 외주 업체에 제작 의뢰할 공공 배달 앱이 수백명의 엔지니어가 만든 배민 앱보다 편리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나. 반(反)기업 정서에 기댄, 소상공인 표 챙기기라면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소상공인단체조차 "수수료 없는 공공 앱을 만들어 주면 고맙긴 하겠지만 실효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한다.

모든 소란을 지켜보는 자영업자들은 씁쓸하다. 명동의 한 중국집 사장은 "최저임금 탓에 인건비 오르고, 식자재 값은 치솟고, 코로나로 손님은 끊겼는데 배민은 수수료 더 달라고 하고 정치인들은 우리를 표로만 본다"며 "우리 편은 대체 어디 있는가"라고 했다.

[최인준 산업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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