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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연합시론] 방역이 최우선이라 해도 '전자팔찌' 도입은 과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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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자가격리자의 격리지 무단이탈을 막기 위해 전자팔찌(손목 밴드) 도입을 검토 중이다. 보건당국은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2주일 더 시행하고 있는 와중에 자가격리 위반행위가 산발적이지만 지속해서 발생함에 따라 이 같은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최근 휴대전화를 집에 둔 채 다른 사람들과 접촉이 이뤄지는 공개된 장소를 버젓이 돌아다니는 사례가 연거푸 적발됐다. 자신은 외부활동을 하면서 휴대전화 앱상으로는 자가격리를 착실히 준수하는 것처럼 기만한 것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학교와 일터의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을 상당 부분 희생하면서 장기간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감내하고 있는 마당에 공개된 이런 반(反) 공동체적 행동은 커다란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자가격리는 자기 집이라는 공간적 개념뿐 아니라 자기절제라는 덕목까지 요구하는 힘든 과정임을 이해하지만, '나 하나쯤이야'라는 안일한 인식이 자리 잡으면 방역의 둑에는 미세하더라도 치명적인 균열이 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예상되는 인권침해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전자팔찌 도입 가능성을 들여다보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손목 밴드가 자가격리자의 일탈을 막기 위한 최선이자 최종 병기인지는 좀 더 면밀하고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우선 인권침해 논란을 말끔히 해소하기 어려운 선택지라는 점이다. 전자팔찌는 성범죄자에게 부착해 행동반경을 제약하며 신체 자유를 구속하는 장치다. 당연히 공권력이 범죄자에게 씌운 족쇄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손목밴드라고 순화해서 부른다고 해도 이 장치를 부착한 사람을 위치추적을 통해 감시하고 일정 거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제어의 본질은 불변한다. 감염된 것도 억울한데 잠재적 이탈행위자로 간주돼 '주홍글씨' 같은 팔찌까지 착용하도록 한다면 당사자들의 심리적 저항감이 아주 클 것이다. 또한 정부가 코로나 19 사태 발생 이후 개방성과 투명성을 기조로 유지해온 방역정책과 철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하게 입국 금지 조처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 시민, 의료진이 합심 전력해 감염병의 확산을 최대한 통제해 온 국가이다.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이상적인 형태의 이런 '열린' 방역정책이 지구촌의 관심과 호의적인 평가를 끌어낸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7일 신규 확진자가 이틀째 50명 이하로 내려온 것은 우리가 자긍심을 가질만한 성과다. 만약 우리가 자가격리자들에게 반강제적으로 전자팔찌를 채우는 결정을 한다면 여태껏 지켜온 방역기조와 철학은 빛이 바랠 것이다. 향후 유사한 비상 상황에서 개인의 집까지 국가 공권력이 치고 들어올 수 있다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홍콩이 유사한 장치를 이미 도입했고, 대만이 추진을 검토 중이라는 점이 우리의 전자팔찌 도입 근거로 활용되어서도 안 된다. 중화권에서 사회를 작동하는 원리와 우리의 그것이 같을 수는 없다. 방역의 효율만을 앞세운다면 가장 좋은 선택일 수는 있으나, 시민의식의 복원을 재차 촉구해 보지 않고 강제적 수단으로 직행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감염병예방법 등 법률에 근거하지 않고 시행령 혹은 시행규칙을 통한 우회적 방법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는 일도 자제해야 한다. 시행령 제ㆍ개정은 행정행위로 입법작업을 생략해 즉각적 대응에는 효율적일지는 몰라도 임의성과 편의주의의 위험을 내재하고 있어 남용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마침 자가격리 조치 위반자에 대해 처벌이 크게 강화된 상태여서 굳이 손목밴드 도입이 필요한지에 대한 회의론이 일고 있기도 하다. 기존 300만원 이하 벌금에서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이 대폭 강화된 만큼 자가격리자들도 스스로 행동을 조심하게 될 개연성이 크다. 감염병예방법 혹은 검역법 위반으로 처벌 절차가 진행 중인 사람이 75명이고, 이 중 6명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것도 자가격리 위반행위에 상당한 억지력으로 작용할 것임이 틀림없다. 어떤 일을 푸는 방식으로 가장 손쉽고 편한 방법은 '전면 폐지' '절대 금지' '일괄 적용' '의무화' 등 이성적인 다른 의견이 파고들 수 없는 형태의 강압적인 것들이다. 전자팔찌 채우기는 추가적인 지역내 감염을 우려하는 많은 시민에게 '사이다' 같은 정책적 파괴력과 호소력은 있을지 모르지만, 감염 확산방지를 위해 인권적 측면은 잠시 접어두자는 '극약처방' 일뿐이다. 정부는 시민의 힘을 한 번 더 믿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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