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0 (월)

미 육군 일반명령 제102호(1861년 11월 25일자)에 등장하는 모자, 샤포(Chapeau)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남보람의 전쟁 그리고 패션-139] 샤포(Chapeau)_상

1. 미 육군 일반명령에 뜬금없는 프랑스 모자

1861년 미 육군(남군)은 일반명령 제102호를 발령했는데 그 중에는 다음과 같은 복제 관련 부분 개정령이 포함되어 있었다.

- 현역 장교의 경우 기병, 포병, 보병은 밝은 청색 오버코트를 착용한다.

- 군종 병과는 흑색 프록코트를 입으며 단추는 흑색, 한 줄, 아홉 개로 한다. 사제복을 안에 입을 수 있으며 바지는 흑색 판탈롱으로 하고 흑색 펠트 햇 혹은 포리지 캡(forage cap)을 쓴다. 전체적으로는 장식이 없어야 한다.

- 행사에 참석할 경우 샤포 드 브라(chapeau de bras)를 쓸 수 있다.


위의 개정령에서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맨 마지막 줄이다. 프랑스어인 것은 짐작이 가는데 저 '샤포 드 브라'란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왜 일반명령에 '쓰라 / 말라' 명료하게 기술하지 않고 '행사에 참석할 경우, 쓸 수 있다'고 애매하게 적어놓았을까.

매일경제

포리지 캡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모자이다. 위 사진은 남북전쟁기 북군이 썼던 M1858 포리지 캡 /출처= ⓒima-usa.com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 비싼, 너무나도 비싼

일반적으로 군대 복제 규정을 보면 제복은 예복, 만찬복, 정복, 전투복, 특수복, 외투, 우의, 보조의로 나뉜다. 이 중 예복은 격식을 갖춘 화려한 복식으로 주로 장군들에게만 지급되며 국가를 대표해서 해외에 나가는 무관, 사절단은 임시로 예복을 착용할 수 있다.

1800년대 중반 당시 '샤포 드 브라(줄여서 샤포)'는 예복의 일부였다. 장군이 아니어도 입을 수는 있었지만 그러려면 개별적으로 주문제작해 사서 입어야 했다. 예복을 갖춰 입을 만한 행사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비싼 돈을 주고 예복을 맞춰 입는 장교는 많지 않았다. 격식 있는 행사, 파티 등이 있으면 예복을 빌려 입고 나갔다.

매일경제

남북전쟁기 뉴욕주 민병대 장교가 썼던 샤포. /출처= ⓒ뉴욕주방위군홈페이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매일경제

1940년대 미군 장군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샤포. /출처= ⓒ이베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매일경제

샤포는 평소 관리와 보관에도 매우 신경을 써야 하는 사치품이었다. 사진은 샤포 보관용 가죽 케이스. /출처= ⓒhistorical.ha.com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3. 샤포는 왜 인기 있었을까

비싸고 흔치 않았지만 장교들은 다들 샤포를 구해 쓰고 행사, 파티, 만찬 등에 참석했다. 샤포가 인기 높았던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쓸 것으로서의 기능보다 한쪽 손에 들고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장식적 의미가 강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예식 등에 샤포를 가지고 나가면 폼이 났다.

둘째,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으면 덜 어색했기 때문이다. 전장에 익숙한 군인은 아무래도 격식 갖춘 파티나 만찬이 낯설다. 이런 상황에서 신경 쓰이는 것 중 하나는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팔짱도 뒷짐도 이상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을 수도 없다(예복 바지에는 아예 주머니가 없다). 이럴 때 손에 샤포를 들고 있으면 자리가 덜 어색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여성의 파티 클러치 백과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셋째, 샤포를 들고 ‘관심과 존경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어 ‘샤포 (드 브라)’를 그대로 쓴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군은 프랑스군에 큰 영향을 받았다(다른 국가 군대도 마찬가지였다). 당대 프랑스에서 군인은 존경과 애정의 대상이었다.

아래 삽화는 매우 흥미로운 장면을 담고 있다. 중앙의 남성은 손에 초기 형태의 샤포를 들고 있다. 군인(또는 시민 혁명군)이란 뜻이다. 그는 여성들에 둘러싸여 관심을 받고 있다. 군복을 입지 않았지만 손에 든 샤포를 보고 알아봤을 것이다. 외면 받아 혼자 서있는 왼편 남성과 대조된다.

매일경제

18세기 프랑스의 파티를 그린 삽화. 가운데 있는 남성은 한 손에 초기 형태 샤포를 들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당시 미군 장교들은 관심과 존경의 대상이 아니었다. 어느 쪽에 가까운가 하면 오히려 그 반대였다. 우리 상식과 달리 20세기 초까지 미국은 군사력 사용과 해외 원정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반 군사적 전통을 유지했다.

따라서 분명 어떤 미군 장교는 화려한 샤포를 한쪽 겨드랑이에 우아하게 끼고 파티나 만찬의 영웅으로 대접받는 프랑스군 장교의 모습을 자신의 롤 모델로 삼았을 것이다. 프랑스군 장교들이 예식 등에 쓰고 들고 다니던 샤포가 미군에 들어온 연유가 이러하다.

[남보람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