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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유레카] ‘셰일 혁명’과 동맹의 배신 / 박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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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국 ‘셰일 혁명’이 생사의 기로에 섰다.

셰일은 진흙이 퇴적돼 굳은 암석이다. 이 안에 매장된 가스와 원유를 파내려면 먼저 암석층 안으로 파이프를 2000~4000m 깊이까지 수직으로 박은 뒤 방향을 바꿔 수평으로 파고든다. 그다음 파이프에 난 수많은 구멍으로 물·모래·화학물질을 고압으로 분사해 암석층이 깨지면서 나오는 원유·가스를 채굴한다. 막대한 투자와 복잡한 기술이 필요해, 셰일 석유가 수익을 내려면 유가가 배럴당 40달러 이상으로 유지돼야 한다.

미국 셰일 기업들이 대규모 개발에 나서면서 2017년 무렵 미국은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최대 산유국이자 원유 수출국이 되었다. 트럼프는 셰일 혁명과 에너지 독립을 치적으로 자랑해왔다.

코로나19로 전세계 에너지 수요가 급감한 3월6일 러시아와 사우디가 돌연 ‘석유 증산 전쟁’을 시작했다. 국제 유가는 폭락했다. 두 나라가 감산을 둘러싼 이견으로 싸우는 형세지만, 결과적으로는 미국 셰일 에너지 산업을 저격하고 있다. 두 나라의 원유 생산 비용은 미국 셰일 석유의 3분의 1 정도다. 저유가가 계속되면 미국 셰일 산업은 무너지고 두 나라는 승리한다.

셰일 기업들은 천문학적 규모의 월가 자금을 끌어다 썼다. 빚더미의 셰일 산업과 미국 금융 산업은 공생관계다. 셰일 산업이 무너지면 월가도 무너진다. 셰일 산업은 트럼프의 지지 기반인 텍사스주에 집중돼 있다. 셰일 산업이 무너지면, 이미 코로나19 대응 실패로 위기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은 불가능해진다.

절박한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와 러시아에 감산을 압박하고 있다. 두 나라는 미국 셰일 기업들이 감산해야 자신들도 생산을 줄일 수 있다고 반발한다. 셰일 기업들은 사우디가 감산에 동의하지 않으면 미국은 사우디에 대한 군사 지원을 중단하고 미국 정유시설에 사우디 원유가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트럼프에게 강력한 로비를 하고 있다. 트럼프는 사우디산 석유에 관세 부과를 검토한다고 발표했다.

1970년대 1차 오일 쇼크 이후 고유가 시대에 미국과 사우디가 맺은 석유-무기-달러로 얽힌 강력한 동맹은 중동 질서와 달러 패권의 핵심 축이었다. 코로나19가 촉발한 저유가 시대, 동맹은 서로 배신하고 기존 질서의 균열은 깊어지고 있다.

박민희 논설위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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