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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세상읽기] 재난지원금, 전향적 개선이 필요한 이유 / 우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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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우석진 ㅣ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지난주 긴급재난지원금의 대상과 규모가 발표되었다. 규모는 4인가구 기준 100만원이고, 대상은 하위 70%까지로 정해졌다. 이번 제도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좋은 결정이라고 보기 어렵다.

먼저, 정부는 지급 대상에 있어 선별 지원을 선택했다. 납세자의 세금을 지출할 때에는 효과가 담보될 수 있도록 대상을 잘 조준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선별 지원은 정부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선별 지원의 기준이 왜 70%가 되어야 하는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선별 지원을 한다면 좀 더 어려운 50% 정도에 집중하는 것이 적절하다. 전 국민의 경제활동이 코로나19 사태로 영향을 받긴 했지만, 50% 이하가 충격에 대응하는 데 더 어렵다는 점은 쉽게 수긍이 간다. 하지만 지원이 70%까지 확대되면 왜 90%, 100%까지 늘릴 수는 없는지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70%에 소요되는 재원이 9조원 정도라고 한다. 4조원 정도를 추가 동원하면 동일한 수준으로 100% 지원이 가능해진다. 4조원이 적지 않지만 우리 재정이 감내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는 아니다. 다른 나라들이 지디피(GDP) 대비 2~4%의 재정 지원을 하는 것과 선별에 따른 사회적, 행정적 비용을 고려해보면 70% 선택은 아쉬운 지점이다.

정부는 지원 단위를 ‘가구’로 정했다. 우리나라 대부분 복지정책의 기본 단위는 가구이다. 가족들끼리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와가면서 사는 것을 기본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원 단위를 가구로 정하는 순간에 온갖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가구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부터 가구원 수 차이를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지까지 단시간에 확정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 세전 월 700만원 받는 홑벌이 부장님은 재난지원금을 받는데, 400만원 받는 맞벌이 대리 부부는 지원금을 받을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지원 단위를 개인 단위로 바꾸면 비교적 문제가 쉬워진다. 속도전이 중요한 시기에 문제를 괜히 어렵게 만들 필요가 없다.

건강보험료 기준으로 수급 여부를 정한 것은 비교적 좋은 선택이다. 소득과 재산 정보는 모으기도 어렵고 모으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린다. 우리나라는 복지정책에서 신청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직접 신청하지 않은 가구의 경우 소득과 재산 정보가 종합적으로 파악되어 있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소득과 재산 정보가 반영되어 있는 건강보험료 기준을 이용하는 것은 비교적 합리적이다.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를 구분하여 기준을 정한 것도 좋은 결정이다. 근로소득자의 소득과 자영업자의 소득은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단점은 근로소득자는 올해와 지난해 소득이 섞여 있고, 지역가입자는 재작년 소득으로 계산되어 있어, 하위 70% 경계선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경계선이 부정확하면 정책의 신뢰도에 손상이 간다.

이번 재난지원금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재난지원금 절벽이 생겼다는 것이다. 우리의 복지정책은 수혜금액 절벽이 생기지 않도록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어떠한 실무자도 하위 70%는 재난지원금을 받고 71%는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하도록 설계를 하지는 않는다. 이번 재난지원금은 건강보험료 1만원 차이로 재난지원금 수혜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 경계선상의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설계다. 소득 하위 70% 선별을 고집하더라도 지원금 절벽은 시정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재난지원금의 목적이 불분명해졌다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소득이 낮아진 가구에 대한 지원이 목적인지, 저소득층 지원이 목적인지를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소득 감소에 대한 보상이라면 재산에 상관없이 소득이 낮아진 사람에게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재산을 고려하더라도 유동성이 낮은 부동산보다는 유동성이 높은 금융자산을 포함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지금 같은 지원금은 재난에 대한 지원금이라기보다는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정책밖에는 되지 않는다.

많은 전문가가 이러한 문제 때문에 재난지원금을 선별 지원해야 한다면 ‘선 지원 후 정산’ 하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여당에서도 전 국민 대상 지급을 추진하고 있고, 야당도 유사한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고 한다. 전향적인 정부의 선택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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