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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5 (수)

[김언호가 만난 시대정신의 현인들](8)국토에 깃든 희망의 언어를 찾아…두 발로 ‘민중의 역사’ 톺아 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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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인문주의자 박태순

경향신문

1985년 8월 전라북도 정읍 황토현 갑오동학혁명기념관 앞에 선 박태순. 그가 발로 써낸 국토기행은 국토인문학의 이정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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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의 이른 봄날 오후, 나는 작가 박태순(朴泰洵·1942~2019) 선생과 함께 북한산을 올랐다. 그와 나는 막 출간된 <박태순기행: 국토와 민중>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 험난한 세월, 1980년대에 펴낸 수많은 책들 가운데 언제나 나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한 권의 책 <국토와 민중>. 대지의 삼라만상이 일어서는 봄날의 북한산 산록에서 나는 박태순과 새 책의 향을 즐겼다.

“박 선생님, <국토와 민중>을 들고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친구들과 우리 국토 우리 산하를 걸읍시다.”

<국토와 민중>은 출간되자마자 이 땅의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면서, 국토를 새롭게 인식하는 ‘한 권의 책’이 되었다. 박태순이 발로 써낸 국토기행은 국토인문학의 한 이정표가 되었다.

■ 이 국토의 참주인 노릇하기

유신시대서 어떻게 풀려나야 할지

국토를 걸으며 현장에서 기록한

‘한길 역사기행’의 강사이자 길꾼

우리 국토 전역이 ‘기행의 주제’


“차를 타기보다는 걸으면서, 우리 국토가 들려주는 음악에 넋을 잃고, 민박을 하는 사랑방에서 국토와 민중의 역사를 들으면서 감동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국토는 자연으로서 금수강산이었고 인문지리로서는 민중의 역사였다.”

작가가 찾아나선 한반도는 유신시대가 무너진 지 얼마 안되던 무렵이었다. 우리 국토가 유신시대를 어떻게 견디어왔고, 어떻게 유신시대로부터 풀려나야 하고 해방되어가고 있는지를 그는 국토의 현장에서 기록했다.

“우리 국토는 심각한 사정을 알리는 상황판이다. 제대로 똑똑히 바라보자고 광인처럼 외치고 외쳐, 모든 이가 자기가 처한 그 자리에서 이 국토의 참주인 노릇하지 않는다면 분단된 국토의 또 다른 분열, 분열된 민중의 분단으로 어찌 될까 싶다.”

한길사가 마포경찰서 뒤쪽의 한 인쇄소 공간을 빌려 사무실로 쓰다가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정경대 맞은편으로 이사 간 것이 1982년 가을이었다. 나는 1층을 개조해 작은 교실 하나를 만들었다. 한 출판인으로서 나의 꿈은 ‘학교’였다. 한 권의 책과 한 출판사는 열려 있는 학교일 것이다. 나는 그 교실에서 독자와 저자의 대화, 책을 토론하는 마당을 열었다. 역사강좌·사회과학강좌를 개설했다. 우리 시대를 이끄는 지식인·학자·사상가들이 자신들의 학문과 이론을 이야기했다. 큰 사상가 함석헌 선생도 씨알들을 만났다.

한길역사기행! 1985년 한길역사강좌와 나란히 기획되는 한길역사기행은 역사와 삶의 현장, 민족사가 구현되는 국토와 산하를 온몸으로 함께 체험하는 운동이었다. 나는 역사와 역사정신은, 책으로 책상머리에서 제대로 공부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역사의 현장에 섬으로써, 삶의 현장에서 살아 있는 역사, 약동하는 역사정신을 만날 수 있다! <국토와 민중>의 문제의식과 주제는 한길역사기행의 이론과 방법이 되었고 작가 박태순은 한길역사기행에 늘 동반하는 강사이자 길꾼이었다.

■ 호남평야 동학농민군의 함성

원효에서 현대인 모습 살피는 등

역사를 올바로 ‘깨치기’ 위한

역사인물의 ‘활현’ 작업에 몰두


1985년 8월23일과 24일, 동학농민전쟁의 현장을 찾아가는 제1회 한길역사기행이 시작되었다. 23일 오후 버스로 일행 45명이 서울을 떠났다. 동학농민전쟁을 연구하는 향토사학자 최현식 선생과 대하소설 <녹두장군>을 쓰고 있던 송기숙 교수가 현장에서 우리 일행을 맞았다. 고부들판, 삼례, 만석보 흔적, 전봉준 장군 생가, 익산 미륵사지, 금산사, 선운사를 돌면서 갑오농민군의 함성을 듣고 그 역사정신을 체험하는 일정이었다.

일행은 동학농민군의 집결지 백산 성지에 올랐다. 태양이 호남평야 지평선에 내려앉고 있었다. 해발 57m밖에 안되는 야트막한 언덕이었지만, 광활한 호남평야를 지키는 백산은 멀리서 보면 우뚝했다. 이 백산에서 우리는 1894년 봄날의 흰옷 입은 농민혁명군을 만나는 것이었다.

작가 박태순은 그날의 기행을 ‘호남평야 동학농민군의 함성’에 기록했다.

“고부의 들판, 황토재의 옛 싸움터에서 우리가 진실로 바라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막힌 갱도’라도 뚫어나가는 마음일까. 갑오농민군의 전적지는 역사의 기록 속에 새겨져 있지만,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국토에 그 현장을 살아 남겨 놓고 있다. 우리는 또다시 갑오농민군을 찾아가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시대의 어둠을 몰아내는 빛의 줄기를 찾아나서는 일이다. 그 길의 저쪽에 갑오농민들이 행군해오는 모습이 보인다.”

역사기행의 주제는 우리 역사, 우리 국토 전역에 걸쳤다. 동학농민군의 역사공간 말고도 의병이 일어선 정신의 현장을 찾는다. 강진에 가서 정약용의 유배지 사상을 만난다. 해남 보길도에서 윤선도를 만난다. 진도에 가서 진도사람들과 진도아리랑을 함께 부른다. 지리산에 올라 그 정신사·저항사를 학습한다. 다도해의 사회사를 답사한다. 제주도에 가서 4·3의 비극을 가슴으로 인식한다. 울릉도를 걷는다. 남원에서 판소리를, 익산에서 농악을 듣고 춤춘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또 다른 한국전쟁을 만난다. 강화도에서 국토간척사를 알게 된다. 경주 남산의 불교예술을 만난다. 신비의 절 운주사에 간다. 부여 백마강에서 백제를 역사여행한다. 가야산에 오르고 해인사 새벽예불에 참례한다. 안동에 가서 탈춤을 함께 추고 도산서원에서 퇴계를 만난다. 정선에서 정선아라리를 부른다. 덕천서원에서 조남명의 재야사상을 발견한다. 문경새재를 넘으면서 우리의 길을 알게 된다. 군인들이 지키는 금강산 건봉사 터를 답사한다. <반계수록>의 저자 유형원을 만난다.

한길역사기행은 50여회가 기획되고 연 3000여명의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했다. 1박2일, 2박3일, 3박4일, 6박7일의 일정이었다. 작가 박태순을 비롯해 박석무·이이화·송기숙·최영준·박현채·강만길·리영희 선생, 시인 고은·신경림 선생, 유초하·전경수·김홍식·이상해·김시엽·문명대·정진상 교수, 한옥 전문가 신영훈, 향토사학자 최현식·윤경렬·이석호, 소설가 이문구·현기영·한림화·현길언·이호철 선생, 민속학자 주강현 선생이 동행했다.

일반 참가자들과 연구자·지식인들이 하나가 되어 밤을 새우면서 강의하고 토론한다. 답사를 끝내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강의와 토론이 이어진다. 모든 참가자들이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아름다운 우리 국토 우리 산하, 그 장엄한 역사의 현장, 삶의 현장이 우리를 순수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승화시킨다.

■ 그의 국토의식·역사정신이 빛나는 ‘역사와 인간’

생활이 없는 인문학 믿지 않아

‘새로운 국토’ 만나기 위해

박태순은 평생을 걸었다


1985년부터 계간 ‘오늘의 책’에 박태순은 ‘역사와 인간’을 연재한다. 원효로 시작해서 최치원·이규보·정도전·이이·박지원·최제우를 기행하는데, 각 원고가 300장 안팎이나 되는 큰 글들이었다. <국토와 민중>에서 천착하는 그의 역사정신과 국토의식이 빛을 뿜었다. ‘원효: 해방을 향한 국토 편력’에서 그의 ‘역사문학’이 다시 확인된다.

“7세기의 인간 원효의 발자취를 찾아나서면서 필자는 20세기 말 우리 시대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헤아려 보게 된다. 민족의 분단, 민중에 대한 억압구조, 끊임없이 계속되는 전쟁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우리 상황이라 한다면, 바로 이 위기의 시대에 원효와 같은 인물이 재세(在世)하고 있다면, 그는 어떠한 것을 말하게 될 것인가. 문학인이 찾아나서는 역사인물 기행은 ‘진실의 공동체성’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역사와 인간’의 첫 번째로 원효의 뜻을 찾으려는 뜻은 오늘 우리 역사 현실에 대처하는 우리 자신이 해야 할 바가 어찌 되는지, 그를 통해 깨우치자는 것이다. 올바른 역사를 위한 역사인물의 오늘에의 활현(活現)작업이 중요하다.”

경향신문

박태순이 1986년 5월 지리산 역사기행 중 다랑논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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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태순은 당대의 역사적 현실을 다룬 작품을 썼다. <정든 땅 언덕 위>는 ‘외촌동 사람들’ 연작소설인데, 서울의 무허가 판자촌 주민들, 변두리의 소외되고 뿌리 뽑힌 사람들을 다룬다. <어느 사학도의 젊은 시절> <무너진 극장> <밤길의 사람들>은 한국전쟁과 4월혁명과 6월항쟁을 주제로 삼는다. 박태순은 1980년대 초 한길사가 펴내는 ‘한길세계문학’ 기획에 참여하면서 제3세계문학을 선도해서 소개하는데, 인도작가 쿠스완트 싱의 <파키스탄행 열차>와 치누아 아체베의 <민중의 지도자>를 번역했다. 랭스턴 휴즈의 <팔레스티나 민족시집>과 하워드 패스트의 <자유의 길>을 번역한다.

박태순은 1970년에 <분신-전태일>을, 71년에 <광주단지 3박4일>을, 73년엔 <작가기행>을 씀으로써 이 땅에 실록문학·기행문학의 영역을 선구적으로 열었다. 다시 1988, 89년엔 월간중앙에 연재하는 ‘사상의 고향’과 ‘기층문화를 찾아서’를 통해 국토와 산하를 순례한다. 1991년엔 ‘신열하일기’를 서울신문에 연재한다.

내 발로 찾아다니고

내 눈으로 알아내야만

내 국토가 된다

찾지 않는 한

국토는 없으며

깨닫지 않는 한

현실은 보이지 않는다


■ 국토의 언어는 희망의 언어다

2008년 작가 박태순은 드디어 <나의 국토 나의 산하> 전 3권을 펴낸다. 제1권 ‘나의 국토인문지리지’는 국토가 들려주는 거대담론이다. 제2권 ‘시인의 마음으로’는 국토 상상력을 분출시키는 미시담론이고, 제3권 ‘인간의 길 시대의 풍경’은 ‘부드러운 국토’를 이야기한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남아메리카의 오지 탐험에서 ‘슬픈 열대’를 보았다면, 박태순은 ‘부드러운 국토’를 발견한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신새벽에 길을 나선 나는 하늘의 대기와 인간의 대지가 온 세상을 또다시 새롭게 펼쳐 보이고 있음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우주와 삼라만상의 큰 숨결이 나의 몸속으로 들어온다. 국토언어는 희망의 언어다.”

경향신문

2000년대 ‘나의 국토 나의 산하’를 취재할 당시 지리산에 선 박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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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문학가와 사상가는 위대한 여행가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위대한 저술들은 위대한 각성자의 진리탐구와 그 전파를 위한 여정의 담론들이다. 국토인문주의자 박태순의 국토탐험·여행담론은 사회학·지리학·지질학·기상학·생물학·지역학·문예학 등등의 사회과학·인문과학·자연과학·예술과학의 지식과 지혜와 정보가 총합된다. 박태순의 국토탐험·여행담론은 우리 현대문학의 한 고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의 국토 나의 산하>는 단재상과 한국일보출판문화상을 받는다. ‘신동국여지승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국토는 내 발로 찾아다니고 내 눈으로 알아내야만 내 국토가 된다. 국토와 인간이라는 거대담론은 그리하여 국토와 나의 사랑 담론이 된다.”

박태순은 <나의 국토 나의 산하>를 내고는 동시대인들과 함께 다시 국토를 순례한다. 2009년 프레시안의 이근성 대표가 주관하는 ‘박태순의 국토학교’ 교장으로 30회에 걸쳐, 달라지고 있는 가운데 변함없는 우리 국토의 탐사여정에 앞장선다. 그의 몸과 마음은 언제나 우리 역사 우리 삶의 현장 국토를 걸었다.

<작가기행>에서 박태순은 “찾지 않는 한 국토는 없으며 깨닫지 않는 한 현실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맨입으로 ‘인문학 위기’를 내세우는 담론들을 그는 믿지 않는다. “국토의 구체성과 생활의 직접성에 닿지 않는 인문학”을 그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걷는다. 어제도 걸었고 내일도 걸으리라. 우리의 국토는 언제나 새로운 국토, 오늘도 내일도.”

■필자 김언호

1968년부터 1975년까지 일간지 기자로 일했다. 1976년 출판사 한길사를 설립해 현재 한길사와 한길책박물관 대표를 맡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와 동아시아출판인회의 회장을 지냈으며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책의 공화국에서> <김언호의 세계서점기행> 등을 썼다.


김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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