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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오늘의시선] 코로나 이후 문명적 패러다임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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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구적 시민사회 의식 태동 가능성 / ‘생명의 상품화’·개인주의 확산할 것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인류 문명을 전대미문의 위기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현재 세계 213개 국가에서 135만여명이 감염되었으며, 그중 약 7만5000명이 사망해 평균 5.5%의 치사율을 보인다. 매일 5만여명의 새로운 환자가 추가되고 있다. 하지만 심각한 것은 아직도 이 바이러스 확산이 어느 정도로 언제까지 지속될지를 예측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 기원이 자연적이었든 인위적이었든 간에 이 변종 바이러스의 지구적 확산은 현대 인류 문명이 자부해 왔던 ‘위험에 대한 미분법적 분석과 대응 및 예측’의 논리와 기제의 한계 및 취약성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인류가 20세기로 들어선 이후 현재까지 의생명과학기술의 한계가 이처럼 극명하게 다가왔던 적이 없었다. 현생 호모사피엔스 문명의 쇠락 혹은 전환의 불가피성에 대한 위기의식이 크게 다가온다.

세계일보

송재룡 경희대 교수 사회학


만일 코로나19 사태가 가파른 확산 추세를 장기간 지속해 더욱더 두터운 코로나19 지평의 확산으로 이어지거나, 비교적 안정기에 접어들되 낮은 수준으로 지속되면서 얇은 코로나19의 지평과 인류와의 불편한 공생관계가 일상화된다면 문명적 수준의 패러다임의 전환은 불가피할 것이다.

우선 거시적으로 전 지구적 수준의 시민사회의식 태동 가능성이다. 이는 이미 오래전 울리히 벡이 자신의 위험사회 테제와 더불어 제안한 것이다. 곧 글로벌한 위기상황은 필연적으로 국민국가체계의 경계와 대립을 초월해 글로벌 시민의 책임문화가 등장할 수 있는 도덕적·정치적 공간을 형성하게 한다는 논리다. 최근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글로벌 위기상황에서 공조적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세계 분쟁지역의 휴전을 촉구할 수 있었던 배경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여러 나라들이 국경을 봉쇄하고 타 국민을 차별하는 등 국민국가체계의 논리에 집착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배타적 조치들에도 세계가 직면한 작금의 위기상황은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시민사회의 필요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추구하게 한다.

비관적 전망도 있다. 인간 생명에 대한 자연주의적 개입이 더욱 정교하게 가속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오늘날 인간 생명현상은 ‘DNA에 담겨 있는 유전자의 발현’이라는 자연주의적 해석틀에 따라 일종의 정보(데이터) 단위로 환원된다. 이미 오래전부터 ‘지혜로운 사람’으로서의 호모사피엔스 종은 여타의 종들에 비해 차별적으로 두드러진 지위를 갖지 못한 존재로 규정되어 왔다. 이에 따라 이른바 생명현상의 신비함과 존귀함에 관한 목적론적 가정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코로나 이후(Post Corona)에 ‘생명의 자연주의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이미 국내외 AI 및 DB마이닝 전문가들은 현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을 주도적으로 예측 탐지하여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회복(치료)하기 위해 개인들의 인구학적 및 의생명과학적 정보 데이터뿐만 아니라 이동에 대한 데이터들을 적극적으로 취합하고 활용해야 할 필요성을 설득력 있게 제안하고 있다. 이들의 제안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전대미문의 위기를 체험하고 있는 각국의 정부 관계자들에게 적극 수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른 생명의 상품화와 정치화가 보편화될 공산이 크다.

다음은 인간관계 양식의 변화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취해지고 있는 이른바 ‘사회적 거리두기’의 실천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때 사회·문화적으로 개인주의적 성향이 심화될 것이다. 그동안 혼밥, 혼술, 혼커피 등과 같은 새로운 관계 양식들이 그다지 환영받지 못함으로써 불가피하게 고립이나 소외의 정서를 수반하는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그와 같은 개인(중심)주의적 행태들도 나름의 정상적(?) 삶의 양식으로 인정되는 방향으로 변화해 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종교다. 코로나19는 궁극적으로 ‘인간(문명)의 한계’에 대한 성찰을 자극할 것이며, 이는 결국 그 한계를 넘어서는 더 높은 초월적 지평(존재)에 대한 모색과 추구로 이어질 것이다.

송재룡 경희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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