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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김동호의 시시각각] ‘100만원’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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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적 재난지원금 받을 수밖에

젊은층이 갚아준다는 점 기억해야

정책 폭주 막고 싶으면 표로 심판

중앙일보

김동호 논설위원


재난지원금 100만원이 나옵니다. 얼마나 단비 같은 소식입니까. 막상 위기가 닥치고 보니 우리는 많은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냥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일상의 소중함도 알게 됐습니다. 돈의 귀중함도 알게 됐지요. 경제활동이 갑자기 막히면서 무급휴직을 하고 아예 명예퇴직 바람도 불고 있습니다. 급여 삭감 우려도 있으니 돈 귀한 줄 알게 된 거죠. 사회적 거리두기로 모임이 줄면서 음식업 같은 자영업은 더 고통스럽습니다.

이렇게 절박할 때 긴급재난지원금이 나온다니 참 고마운 일입니다. 호주머니에 적어도 얼마 동안 쓸 돈은 생겼으니까요. 그런데 이 돈을 받을 때 꼭 기억해야 할 게 있습니다. 이 시대의 청년과 손주 같은 젊은 세대가 그 빚을 떠안고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고통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극심한 사회적 갈등부터 겪고 있으니까요.

당장 형평성 논란이 그렇습니다. 솔로몬의 지혜인들 공정한 지급 기준을 마련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당초 소득 하위 50% 가구를 지원 대상으로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총선 승리에 급급한 여당이 소득 하위 70%에 100만원 지원을 밀어붙였습니다. 코로나를 빙자한 돈 뿌리기는 여기서부터 꼬이게 됐습니다. 누가 70%에 포함되는지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월 소득 712만원 가구라고 했다가 건강보험 23만7000원으로 바꿨습니다. 그래도 논란이 이어졌습니다. 지금은 소득보다는 재산이 경제력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부모한테 아파트 물려받고 연봉 5000만원인 사람과 한 푼 물려받은 것 없이 전세살이에 연봉 1억원을 받는 사람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도움이 필요할까요. 참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신(神)도 알 수 없을 겁니다.

결국 총선을 앞둔 정부·여당의 돈 살포 정치는 여기서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이 곤경에서 제1 야당은 현금 살포에 당할 재간이 없으니 전 국민 50만원 지원이라는 초강수 견제구를 던졌습니다. ‘야당은 반대하는 당(Opposition Party)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스스로 내팽개치고 악성 포퓰리즘의 공범을 자처한 거죠. 결국 국민 모두 곧 현금을 받게 될 것 같습니다. 허경영 국민혁명배당금당 대표는 “나를 흉내 낸다”고 그저 웃지요.

정말 미안한 일은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 큰 빚을 지게 됐다는 점입니다. 연령으로는 40대 이하와 그 자녀·조카들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거침없이 복지 지출을 늘려 와 이들에게 막대한 국가 빚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아동·청년·노인에 걸쳐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정책을 펴면서 현금 수당을 받는 사람은 지금 1000만 명이 넘습니다. 그 결과 집권 3년 만에 국가채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올해 800조원을 훌쩍 넘겼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마지노선 40%를 돌파했습니다. 이 비율이 40%를 넘기면 재정적자 통제가 어려워집니다.

50대 이상 기성세대는 많이 미안합니다. 이 뒷감당은 지금의 40대 이하가 50·60세대가 되는 무렵이 될 것 같아서입니다. 지금부터 이르면 10년, 늦어도 20년 안에는 국가채무 비율이 100%를 넘게 됩니다. 저출산이 가속하면 더 빨라집니다. 그때부터 지금의 젊은 세대는 현 정부에서 본격화한 복지 포퓰리즘의 청구서를 받아야 합니다. 이런 사연이 있는 100만원이니 조만간 이 돈을 받게 되면 감사히 받고 잘 써야 합니다.

이렇게까지 해서 돈을 받아야 할까요. 하지만 일상에 쫓기는 평범한 국민이 선거를 앞두고 경쟁적으로 벌이는 역대급 무차별 매표 행위를 막을 힘이 없습니다. 어떤 정치세력이든 표심만 살 수 있다면 나라 재정을 거덜내서라도 돈을 뿌릴 테니까요. 그래도 정책 폭주에 제동을 거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일주일 후 선거에서 옳은 정책을 펴는 후보자를 찍으면 됩니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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