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1 (토)

[발언대] 생명 존중·자살 예방, 언론이 앞장서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양두석 가천대 교수·안실련자살예방센터장


지난달 7개월 된 딸을 굶겨 숨지게 한 부부가 술 취해 자느라 장례식도 가지 않았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경악했다. 젊은 부부가 어린 아기를 6일간 홀로 방치해 사망하게 된 경위를 담은 기사를 차마 읽기 두려웠다. 이런 참혹한 사건을 자세히 보도한 기사가 행여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또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가장(家長)이 어린아이들과 배우자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가 종종 나오는데, 이런 기사도 생명 존중 문화를 해칠 수 있다.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이런 보도를 한다고 주장한다. 교통사고 등 안전 관련 보도는 사고 원인·문제점을 자세하게 지적하고 개선 대책을 제시해 사고 예방에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부모가 어린 생명을 보살펴야 하는 의무를 저버리고 비정하게 방치해 숨을 거두게 한 사건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등을 자세히 보도하는 일은 자제해야 생명 존중, 자살 예방 풍조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유명인의 자살은 '베르테르 효과'로 추종·모방 자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보도에 더 신중해야 한다. 지난 2008년 유명 연예인 A씨가 자살했을 때 언론이 자살 방법, 장소, 동기 등을 무차별적으로 보도하는 바람에 이를 추종하는 모방 자살이 이어진 적이 있다. 1990년대 자살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던 핀란드와 오스트리아에선 자살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자살 보도를 하지 않거나 간단히 보도하는 데 그치자 자살이 대폭 줄어들었다. 국민은 생명을 경솔히 다루는 비정한 사연 대신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보도를 원한다. 생명 존중과 자살 예방을 위해 언론이 앞장서야 한다.

[양두석 가천대 교수·안실련자살예방센터장]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