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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기자의 시각] 돈 낭비 '얼렁뚱땅 진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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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구본우 사회부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 해외 입국자 전용 선별진료소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하루 뒤인 3일 종합운동장에는 컨테이너와 천막으로 구성된 워크스루 진료소 열 채가 들어섰다. 하루에 1000명을 검사할 수 있는 규모였다. 서울시는 입국자들이 타고 이동할 수 있도록 버스 8대도 마련해 공항에 배치했다.

송파구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진료소 설치를 철회해달라'는 글을 올리고 설치 반대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입국자들이 송파구로 몰려들면서 또 다른 집단 감염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송파을 여당 후보인 최재성 의원도 "분석 없이 취해진 과잉 행정"이라며 박 시장 결정을 비판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반발이 잇따르자 서울시는 6일 '종합운동장 진료소는 송파구 주민들만 이용하도록 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10채 중 1~2채만 가동하겠다고 했다. 명확한 이유는 발표하지 않았다. 비난의 화살은 송파구민에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집값 떨어질까 안절부절못하는 주민들 때문에 기껏 설치한 컨테이너 텅텅 비워놓게 됐다" "코로나가 그렇게 싫으면 저세상으로 가라" "장애인 시설 반대하는 소시오패스와 다름없다" 등 송파구 주민들의 지역 이기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이 잇따라 올라왔다.

그러나 서울시가 진료소 운영을 축소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운영 첫날인 3일, 1000명 수용 가능한 진료소에서 검사받은 시민은 66명에 불과했다. 이후 이틀간 하루 평균 100여명이 이용했다. 애초에 수용 규모의 10분의 1만 가동된 것이다.

저조한 이용률은 처음부터 예상 가능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잠실종합운동장까지 차량을 이용한 최단거리는 70㎞나 된다. 길이 안 막혀도 편도 1시간 거리다. 아무리 대규모 시설이라 해도 서울 남동쪽 한편에 설치해둔 이상 시민들이 애써 찾아올 리 만무했다. 시 담당자는 본지 통화에서 "자치구의 검진 부담을 덜어주려 만들었는데, 만들고 보니 다들 거주지 근처 진료소로 가버렸다"고 설명했다.

구민들이 종합운동장 진료소 운영을 방해한 주범(主犯)으로 몰리는 사이, 예산과 행정력을 낭비한 서울시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진료 시설 10채 중 8채가 무용지물이 됐지만, 설치 담당 부서조차 "급하게 설치하느라 예산이 얼마나 투입됐는지 모른다"고 했다.

종합운동장 진료소 설치가 불러온 지역 갈등과 예산 낭비는 '과잉 대응'을 강조해온 박원순 시장식 해법의 한계점을 보여줬다. 한정된 인력과 예산을 적재적소에 투입하는 것이 절실한 재난 상황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구본우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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