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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사설] 선거가 나라 기울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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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로 위기에 몰린 국민을 구출하기 위한 '긴급재난지원금'의 변질 과정은 민주 국가에서 선거가 나라를 기울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획재정부 안은 국민 절반이 대상이었는데 여당은 총선을 겨냥해 '소득 하위 70%에 100만원씩'으로 확대했다. 이런 포퓰리즘을 막아야 할 보수 야당의 대표는 전 국민에게 1인당 50만원을 즉각 지급하자고 나왔다. 그러자 여당 대표는 정부와 협의도 없이 "전 국민 지원 찬성"이라고 맞받았다. 상대방 베팅에 밀리지 않으려고 "그 두 배"를 외치는 도박판 모습 그대로다. 5100만명에게 50만원씩이면 25조원이다. 대체 그 세금은 누가 내나. 벌써 세수엔 구멍이 나고 있는 상황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불가결한 제도이지만 포퓰리즘이란 독을 품고 있다. 의무는 줄이고 혜택을 더 주겠다는 데 싫어할 국민은 없다. 한때 유럽에서 재정이 건실한 나라로 꼽혔던 그리스는 선거를 거치며 만성 부실국가로 전락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주라"는 파판드레우의 포퓰리즘 정치에 야당도 "우리도 다 주겠다"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선거 때마다 새로운 연금이 만들어져 그리스에는 한때 150개가 넘는 연금공단이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이리저리 다른 길을 모색하다가도 결국 포퓰리즘 정권으로 되돌아간다. 모두 선거를 통해서였다. 이제는 페론주의에 반대하던 정당마저 포퓰리즘 정책을 내놓고 있다.

한국에선 2002년 대선에서 파격적인 '수도 이전' 공약 성공 이후 포퓰리즘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기초노령연금은 2012년 대선에서 두 배 인상, 2017년에 다시 25% 인상됐는데 이번에 민주당은 또 20% 인상을 공약했다. 기초연금 공약이 처음 등장했을 때 "선거마다 10만원씩 올라갈 것"이라던 예언이 거의 현실이 되고 있다.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무상보육, 아동수당 등 각종 무상 복지도 모두 선거의 산물이다. 군(軍) 복무 기간은 선거를 치를 때마다 줄어들었다. 2012년 대선 때 야당 후보가 18개월로 줄이겠다고 하자 여당 후보도 18개월이라며 따라갔다. 지난 대선 때는 "1년까지 줄일 수 있다" "10개월로 줄이자"는 복무 기간 단축 공약 경쟁도 벌어졌다. 선거 때마다 군 복무 기간은 줄어들 것이다. 이 악순환을 멈추려면 유권자들이 포퓰리즘을 거부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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