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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세상 읽기] 코로나 이후, 연결의 빛깔 / 조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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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조문영 ㅣ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코로나19 사태의 공론장을 기웃거린 사람이라면 독일의 한 시사주간지를 기억할 것이다. <슈피겔>이라는 이 잡지는 2월 초 붉은색 우비를 입고 방독면을 쓴 채 아이폰에 열중하는 인물사진을 표지에 싣고 ‘코로나 바이러스: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제목을 달았다. 중국 정부가 인종차별을 멈추라며 항의했고, 독일에서도 정치 풍자치고 과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지금, 독일의 확진자 수는 중국을 추월했고, 대한민국에서 정책 공방이 오갈 때마다 ‘좋은 삶’의 척도 역할을 해온 유럽은 아수라장이다.

<슈피겔>의 오만을 풍자할 때가 온 것일까? 표지사진에 분노했던 사람들이 실제로 기사를 읽었는지는 의문이다. “세계화가 치명적 위협이 될 때”란 부제가 달린 당시의 글은 글로벌 경제위기를 신중히 예견하고 있다. ‘메이드 인 차이나’를 명시한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원이 중국 우한의 수산시장임을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글로벌 경제성장의 3분의 1을 책임지고 연 수출액이 2조3천억달러가 넘는” 중국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때 벌어질 디스토피아를 조감하기 위해서였다. 세계의 공장이자 미국의 최대 교역 파트너인 중국이 국경을 막는다면? 중국인들이 여행, 무역, 생산을 멈춘다면? 유가가 폭락하고, 금융에서 의약품까지 촘촘히 연결된 글로벌 네트워크가 무너진다면? <슈피겔>은 바이러스의 치사율이 낮고 중국 바깥의 확진자가 적다며 통제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한 달 뒤 세계보건기구(WHO)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고, ‘거리두기’가 세계화의 역설적 슬로건으로 등장했다.

그래서, 다시 연결해낼 수만 있다면 다행인가? <슈피겔>의 기사에서 인종주의 혐의를 다소간 걷어내니 다른 문제가 드러난다. 그는 기업가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메이드 인 차이나’ 표지사진 속 인물은 아이폰을 응시하는데, <슈피겔>이 친절히 다뤘듯 아이폰의 설계자 애플과 제조자 폭스콘은 코로나 사태로 노동자의 발이 묶이면서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기업가에게 단절은 위기이고 연결은 정상성의 복원이다. 하지만 폭스콘 노동자들에겐 연결도, 단절도 속도와 방향을 알 수가 없다는 점에서 불투명하긴 매한가지다. 중국 선전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아이폰에 관한 모든 게 비밀이기 때문에 언제 초과근무를 할지, 언제 일감이 줄어들지 알 수 없어 답답해했다. 비밀주의는 스마트폰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지만 노동자들의 자기결정권을 박탈한다. 관리자는 결함 없는 폰을 완성하기 위해 혹독한 노동 규율을 강요하고, 고향이 다른 노동자들을 기숙사 한방에 배정해 잡담과 쟁의의 여지를 줄인다. 적시 생산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모든 시설을 배치해서 한 연구자가 썼듯 “수돗물처럼 제 맘대로 노동자를 틀고 잠근다.” 전 세계 아이폰 마니아들이 새로운 기능과 디자인, 애플의 깜짝쇼를 기대하며 들떠 있는 동안, ‘무균실’에 격리된 인간-로봇들은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환경에서 신원 미상의 부품 조립을 반복한다. 마니아를 흥분시키는 불확실성이 이들에겐 고통이다.

<슈피겔>에 따르면, “역설적이지만 이 시점에서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을 구해내는 길은 고립과 침착함, 인내심이다.” 하지만 이 단절을 견뎌내고 세계가 재연결되면 어둠이 걷힐까? 가난한 사람들에게 견디는 삶은 코로나 이후에도 이전에도 매한가지다. 지난 2월 경북 청도대남병원에서 사망한 정신장애인은 기초생활수급자로 20년 가까이 폐쇄병동에 유폐되어 있었다. 미국에서 속출하고 있는 홈리스 사망자들도 오랜 거리의 삶으로 면역체계가 고장 난 상태였다. 코로나 ‘위기’, 경제 ‘위기’가 연일 거론되지만 지구상엔 삶의 매 순간이 위기였던 인간과 동물이 태반이다. 반면 십년 전 금융위기 때도 글로벌기업의 시이오(CEO)들은 거액의 주식과 연금을 챙겼고, 부실 기업 아시아나가 코로나로 휘청거리는 상황에서도 총수는 퇴직금으로 65억원을 받았다. 코로나19는 견디는 시간이 아니라 새롭게 질문하는 시간, 연결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어떤 연결이 지구를 좀 더 공생에 적합한 환경으로 만들지 궁구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애플이 올해 신형 아이폰을 무사히 출시할지 걱정하기보다 폭스콘 노동자들이 글로벌 연결을 미덕으로 느끼려면 어떤 이행이 필요할지 모색하는 시간이 더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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