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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비닐백 석유 저장 서비스...세계는 '석유 저장고 확보'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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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석유 소비가 감소한 반면 주요 산유국의 증산(增産) 경쟁으로 석유가 남아돌면서 세계적으로 ‘석유 저장고’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8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뉴욕의 물류 업체 OEC그룹은 최근 특별한 ‘석유 저장’ 서비스를 시작했다. 기존에 와인이나 식용유 등을 보관했던 초대형 폴리에틸렌(비닐) 백에 석유 제품을 담아 20피트 컨테이너에 넣어두는 서비스다. 완전 액체 상태인 휘발유는 어렵지만, 점성이 큰 공업용 기름이나 윤활유 등은 이런 방식으로 보관이 가능하다. 업체 관계자는 “석유 제품은 거래가 이뤄질 때까지 ‘비닐 백’에 보관되는데, 서비스 수요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남는 석유를 보관하기 위해 문 닫은 정유 공장이나 폐기 직전의 유조선까지 빌리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IHS마킷의 다니엘 예르긴 부회장은 7일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과거 저장고는 물류 수단이었지만 이젠 소중한 상품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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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물류업체 OEC그룹이 최근 시작한 '비닐 백 석유 저장 서비스'. 일부 석유 제품을 폴리에틸렌(비닐) 백에 담아 컨테이너에 보관하는 방식이다./OEC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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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석유 수급 ‘불균형’
최근 두 달 새 국제 유가는 반 토막 났다. 지난 2월 7일 배럴당 50.3달러였던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7일(현지 시각) 배럴당 23.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같은 날 6월물 브렌트유도 전 거래일보다 1.2달러(3.6%) 떨어진 배럴당 31.9달러로 장을 마쳤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WTI와 브렌트유 모두 몇 주 안에 배럴당 10달러대로 내려앉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 유가 폭락은 세계 석유 시장의 수요·공급 불균형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달 러시아와 원유 추가 감산(減産) 합의에 실패하자 아예 증산을 선언했다. 하루 970만 배럴이었던 사우디의 원유 생산량은 이달 들어 1230만 배럴로 늘었다. 9일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회원 산유국들의 모임인 OPEC+(오펙플러스), 미국 등이 긴급회의를 열 예정이지만 감산 합의에 이를지 불투명하다.

반면, 수요는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글로벌 원자재 거래 업체인 트라피구라의 사드 라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세계적으로 30억명이 이동 금지 등의 조치로 발이 묶였다”며 “4월 중 일일 석유 수요가 3000만 배럴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하루 세계 석유 수요(약 1억 배럴)의 30%에 달하는 물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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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주 셰일 오일 생산지인 '퍼미안 분지'의 원유 저장 탱크/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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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석유 비축’ 전쟁 중
미국의 석유 저장 중개 업체 ‘탱크 타이거’는 하루 평균 2건의 거래를 중개했지만, 최근 2주 동안엔 120건의 계약을 성사했다. 잉여 생산 원유와 석유 제품을 보관하려는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수십 년 이상 관련 업계에서 일했다는 이 업체 대표 어니 바사미안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석유 저장고가 부족한 현상은 나도 처음 본다”고 말했다.

원유 저장 수요가 폭증하면서 육상은 물론 상대적으로 보관 비용이 비싼 수상 저장고로도 물량이 몰리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지난달 초 하루 3만달러 수준이었던 대형 운반선(VLCC) 용선료가 최근 21만달러로 7배 치솟았다.

WSJ는 지난 7일 다양한 석유 비축 사례를 소개했다. 최근 유럽 석유 트레이딩 업체들은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한 폐(閉) 정유공장을 임차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문을 닫은 지 5년이 넘어 공장으로의 가치는 없지만 석유 1000만 배럴을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제재를 받는 베네수엘라 원유 탱크도 인기다. 에너지 컨설팅 업체 케이로스가 위성 영상을 분석한 결과, 이 원유 탱크 재고량은 520만 배럴로 1년 전보다 두 배 늘었다.

국내 정유사들의 저장 공간도 부족한 상황이다. SK에너지는 최근 한국석유공사의 충남 서산 저장 탱크 2개(총 180만 배럴 규모)를 3개월간 빌렸다. 공장 가동률을 줄이면서 남는 원유를 보관할 곳을 찾다가 결국 정부에 손을 내민 것이다. GS칼텍스·현대오일뱅크도 정부와 석유 저장 방안을 논의 중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비축 용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론 석유 제품 생산량을 줄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순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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