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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편집국에서] 고용 통계 너머의 사람들 / 황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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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황보연

사회정책부장

그를 처음 만난 건 늦은 저녁을 먹으러 들른 한 식당에서다. 요즘 경기가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마치 물어봐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최근 자신이 겪은 일들을 쏟아냈다. <한겨레>가 지난달 27일치로 보도한 무급휴직 40대 가장의 이야기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몰고 온 ‘소리 없는 비명’이었다. 코로나19 전파를 차단하려는 기업들의 재택근무는 예기치 않게 누군가의 ‘밥줄’을 끊어놓고 있었다.

그는 대형병원에 도시락을 납품하는 작은 회사의 직원이다. 병원에서 신약 홍보를 하는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이 주 고객이었지만 이들이 재택근무에 들어가자, 주문이 뚝 끊겼다. 매출이 급감하자 사장은 2월 말 직원들에게 기약 없는 무급휴직을 통보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이다 보니 사장은 휴업수당 지급 의무도 없었고, 고용보험 가입을 하지 않아 정부가 지원하는 고용유지지원금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가 식당 등에서 ‘알바’를 뛰고 있는 이유였다. 코로나 여파로 당장은 새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거리두기’를 방역당국이 공식화한 지도 40일 정도 지났다. 한시적으로 더 고삐를 죈다는 고강도 거리두기도 벌써 3주째다. 거리두기의 영향만은 아니겠지만, 신규 확진자는 50명 안팎(6~8일)으로 눈에 띄게 줄었다. 하지만 방역 효과가 큰 만큼, 그 대가도 혹독하다. 경제활동을 포함해 우리 사회가 ‘잠시 멈춤’ 하고 있는 여파를 일하는 사람들, 특히 불안정 일자리에 있던 이들이 고스란히 맞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 바깥의 경고음들은 엄중하다. 미국에선 3월 넷째 주 신규 실업수당 신청이 역대 최대인 665만 건에 달했다. 그 전주 330만 건가량을 합해서 보면 2주 사이 1천만명이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7일(현지시각) 올해 2분기에 전세계 노동자의 노동시간 중 6.7%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정규직 1억9500만명의 일자리와 맞먹는 수준이라고 내다봤다. 불과 3주 전 올해 전세계 노동자 중 250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전망했던 국제노동기구는 올해 1분기에만 3000만명 이상의 실업을 예상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위기”라는 진단이 덧붙었다.

어떤 사람은 더 엄격한 봉쇄정책을 단행한 나라들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 아니냐고 할 수 있다. 당장 기업들의 대량해고가 포착되는 것도 아니고, 고용지표로도 충격을 체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코로나19 여파를 볼 수 있는 통계청의 3월 고용동향은 다음주(4월17일)에 나오는데, 취업자 수가 충격적 수준으로 떨어지진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조만간 발표될 3월 신규 실업급여 신청 건수도 ‘급증’으로 보기 어려운 수준일 것이란 예상이 흘러나온다.

문제는 통계에 잘 안 잡히는 ‘숨겨진’ 노동자들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연간 실업자 수는 예상과 달리 100만명을 넘기지 않았다. 정부는 100만명이 넘는 대량실업에 대비해 구직급여 기간을 늘리는 특별연장급여 지급까지 검토했지만, 2009년 실업자는 89만4천명에 그쳤다.

이는 고용안전망 울타리 바깥의 노동자들이 너무 많다는 현실과 직결되는 문제다. 특수고용직이나 일용직 등은 일상적으로 취업과 실업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일감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종종 실업에 가까운 취업자 신분을 유지하기도 한다는 의미다. 또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는 처지에 있다면, 실업자로 잡히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구직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비경제활동인구로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체 실업자 가운데 실업급여를 받는 이들의 비중은 40%대 수준에 그친다.(2017년 기준 42.2%·한국노동연구원)

학습지 교사나 요양보호사 등과 같은 특수고용직의 일감·소득 감소는 이미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거리두기’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이들이기도 하다. 정부가 이들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참에 고용안전망 사각지대에 대한 실태 파악부터 정교하게 했으면 싶다. 그래야 비교적 호평받고 있는 방역대책처럼, 고용대책도 촘촘하게 나올 수 있다.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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