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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동생 구해야” 뛰어든 형까지…화마에 참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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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부모 집 비운 새…“형제 우애 남달랐는데” 안타까움

울산 아파트 ‘불’, 2명 숨지고 8명 다쳐…100여명 한때 대피

8일 울산의 한 아파트에서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불이 나 집 안에 있던 초등생과 고교생 형제 2명이 숨졌다.

이날 오전 4시6분쯤 울산 동구 전하동 소재 15층짜리 아파트 13층에서 불이 났다. 이 불로 집 안에 있던 ㄱ군(9·초등 3년)이 거실 쪽에서 숨졌고, ㄱ군의 형(17·고교 2년)은 불을 피해 아파트 베란다 바깥쪽에 매달렸다가 아래로 떨어져 사망했다. 맞벌이하는 ㄱ군의 부모는 외부에 머물러 화재 당시 집에 없었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ㄱ군과 ㄱ군의 형·친구 등 3명은 개학이 미뤄지면서 전날 밤부터 집에서 함께 놀았다. 밤이 깊어지면서 ㄱ군이 먼저 안방으로 들어가 잠을 잤고, ㄱ군의 형과 친구는 새벽까지 놀다가 배가 고파 라면을 끓여 먹었다.

ㄱ군의 형과 친구는 집 안 환기를 위해 아파트 앞뒤쪽 베란다와 창문을 열었고, 음식냄새를 없애려고 식탁 위에 촛불을 켜놓았다. ㄱ군의 형이 친구와 음료수를 사러 잠시 편의점에 다녀오는 사이 집에서 불꽃과 연기가 치솟았다.

놀란 ㄱ군의 형은 “동생을 데리고 나와야 한다”며 급히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지만, 불길이 출입문 쪽으로 확산되면서 동생과 함께 집 밖으로 탈출하지 못했다. 결국 동생은 거실에서 쓰러졌고, 형은 거세지는 화염에 다급한 나머지 베란다 바깥쪽에 매달려 있다가 떨어졌다.

신고를 받은 소방대가 화재현장에 도착한 것은 이날 오전 4시12분. 울산동부소방서 관계자는 “아파트 진입로 양쪽에 주차된 차량 때문에 화재현장으로 소방차가 진입하는 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소방대가 현장에 도착해 구조와 진화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ㄱ군의 형은 이미 추락의 충격으로 목숨을 잃은 뒤였다”고 말했다.

아파트 주민 박모씨(48)는 “부모가 맞벌이를 하면서 집을 비웠을 때 형이 늘 동생을 챙겼고, 동생도 형을 잘 따르면서 형제간 우애가 남달랐다”면서 “갑작스러운 불길에 어린 목숨을 잃어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불이 난 76㎡(23평형)의 아파트 내부는 참혹했다. 거실의 TV 등 전자제품은 거의 녹아내리거나 깨졌고, 생활가구들과 벽체는 모두 불에 타고 그을린 채 나뒹군 상태였다.

경찰 관계자는 “아파트에 스프링클러가 있었더라면 목숨을 잃는 불상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해당 아파트는 1997년 준공된 15층짜리 건물이다. 준공 당시 공동주택 규정상 16층 이상일 경우에만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돼 ㄱ군 형제의 집에는 스프링클러가 없었다.

이날 화재로 다량의 연기와 불꽃이 주변으로 퍼지면서 같은 아파트 주민 8명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고, 또 다른 주민 100여명이 한때 긴급대피했다.

백승목 기자 smbae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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