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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사이언스프리즘] 뉴런처럼 물리적 거리두기 실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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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속 뉴런은 혼자서 살지 못해 / 다른 뉴런과 물리적 거리 두고 / 특별한 구조 시냅스 통해 소통 / 인간도 뉴런의 지혜 차용해야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화가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란 작품을 통해 신과 신이 창조한 최초의 인간 아담과의 첫 만남을 웅장하게 묘사한다. 그런데 이 그림은 본인처럼 뇌를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특별하게 다가온다. 왜냐하면 이 그림의 전체 구도가 뇌과학자가 그린 인간 뇌 해부도와 아주 흡사하기 때문이다. 특히 뇌연구자에게 이 그림의 백미는 바로 신과 아담의 손가락이다. 그림에서 신과 아담의 손가락 끝부분은 닿을 듯 말 듯 떨어진 채 조용하지만 서로 뭔가를 전달하려는 매우 동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이는 마치 신경계의 가장 특징적인 구조인 ‘시냅스(연접)’를 연상케 한다.

뉴런(신경세포)은 혼자서는 살지 못한다. 반드시 다른 뉴런과 서로 소통할 때만 생존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뉴런은 이런 활발한 소통을 위해 시냅스라는 특별한 구조를 가진다. 시냅스 존재를 최초로 보고한 과학자는 스페인 신경해부학자인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 교수이다. 카할 교수는 20세기 초 수많은 뇌조직 사진 관찰을 통해 시냅스 존재를 발견하였고,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06년 뇌과학자로는 최초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다. 이때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가 한 사람 더 있었는데, 바로 이탈리아 조직병리학자인 ‘카밀리오 골지’ 교수이다.

세계일보

문제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뇌·인지과학


보통 노벨상을 공동 수상하는 경우 서로 동료이거나 같은 이론을 공유하는 과학자가 일반적인데, 이들 두 과학자는 특이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당대 최고의 신경과학 분야 두 석학은 신경계 구조에 대한 이론이 서로 완전히 달랐다. 골지 교수는 두 뉴런이 물리적 거리 없이 서로 직접 이어져 그물망처럼 연결된 구조라고 주장했다. 반면 카할 교수는 뉴런 하나하나가 독립된 형태와 기능을 가지며 서로 물리적 거리를 두고 소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주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고, 심지어 골지 교수는 노벨상 수상기념 강연에서 카할 교수의 이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후 많은 연구를 통해 골지 교수의 주장은 결국 오류로 밝혀지고 카할 교수의 ‘독립된 뉴런’ 이론이 정설이 되었다. 카할 교수의 독립된 뉴런 이론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뉴런이 물리적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음에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특별한 구조가 반드시 필요한데, 바로 이 구조가 시냅스인 것이다.

뉴런은 시냅스에서 전기적 신호를 화학적 신호로 바꿔 다음 뉴런으로 신호를 전달해 소통한다. 즉 시냅스 덕분에 두 뉴런이 소통하는 데 물리적 거리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작품으로 돌아가 신과 아담의 손가락을 주목해보자. 이제 천지창조 속의 신과 아담의 두 손가락은 비록 직접 물리적 접촉은 없지만 서로 활발히 소통하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지난 2월부터 우리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목표는 감염된 사람이 감염되지 않은 사람과 물리적으로 접촉할 가능성을 줄여 질병 전파를 늦추고 감염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을 최소화해 사회를 지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우리 뇌 속의 뉴런들은 이미 시냅스를 통해 적당한 물리적 거리두기를 실행하고 있으며, 이처럼 서로 직접적인 접촉이 없는 덕분에 한 뉴런의 문제가 다른 뉴런으로 전달되지 않고 전체 뇌의 건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즉 뉴런에게 시냅스라는 물리적 거리두기는 뇌라는 커다란 조직을 지키기 위한 일상적인 사회적 거리두기 전략이기도 하다.

우리 국민들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뇌를 지키려는 뉴런들처럼 이 사회를 지키기 위해 힘들지만 한마음으로 실천하고 있는 생존 노력이다. 그런데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람 간 물리적 만남을 피하게 하다 보니 그간 일상 만남 속에서 이뤄지던 자연스러운 소통의 기회마저 줄어들고 이로 인한 사회적 격리로 안타깝게도 ‘코로나 블루’라는 우울증까지 불러오고 있다.

뉴런은 혼자 살지 못한다. 감각기관을 통해 부지런히 주변의 새로운 정보를 흡수하고 이 정보를 다른 뉴런들과 공유해야 생존한다. 혼자서는 살지 못하는 것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강제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동안 우리 뇌 속 뉴런의 지혜를 차용해 물리적 거리두기를 철저히 지키면서도 다양한 수단을 통해 서로 간 소통도 유지해야 한다.

문제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뇌·인지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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