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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세계타워] 코로나19가 부른 ‘인간 불신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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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에 하나’ 감염될까 걱정에… 사람이 두려운 ‘후유증’

“아기가 있어서 집을 못 보여주겠다는데요”.

지난 주말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연락이 왔다. 드디어 이사 가고 싶은 아파트의 매물이 나왔단다. 저층이지만 거실 코앞에 녹음이 우거진 작은 언덕이 있어 새소리가 들리는 이른바 ‘숲세권’이다. 단지가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이고 지은 지 3년 된 새 아파트라 경기도라도 향후 집값이 떨어지지는 않고 조금씩이라도 오를 것 같다. 얼른 가서 내부와 전망을 보고 싶은 마음에 방문 시간을 잡아달라고 했다. 1시간 뒤에 돌아온 대답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다. “집 안을 보기 어려우니 그냥 계약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한다. 세살배기 어린아기를 키우는 세입자가 코로나19 감염 우려 때문에 외부인들을 극도로 꺼린다 것이 이유다. 아직 만기가 3개월 남아있으니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그때 가서 문을 열어주겠단다. 중개업소에서는 입주 전 사전점검 때 찍은 사진을 참고하라고 보내줬다. 하지만 집을 내 눈으로 직접 보지도 않고 살 수는 없는 일.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세계일보

최현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답답했지만 코로나19에 감염될까 두려워하는 그 마음 충분히 이해된다. 나도 마찬가지여서다. 내가 사는 전셋집을 보러 오는 이들이 초인종을 누를 때마다 인터폰을 통해 마스크를 썼는지 확인하고 안 썼다면 마스크를 써달라고 정중히 요청한다. 마스크를 착용했더라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문객이 머무는 동안 나도 마스크를 쓰게 된다. 그들이 나간 뒤 바로 창문을 모두 열어 환기를 해야 안심된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요란을 떠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만에 하나’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위안한다.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을 모르고 회사에 갔다가 나중에 코로나19 확진 판정이라도 받게 된다면…. 어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직장은 나 때문에 폐쇄조치 될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동료는 줄줄이 자가격리에 들어 갈 것이고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한다. 회사 동료들에게 갖은 비난을 받으며 ‘공공의 적’‘으로 몰린다면 매우 끔찍한 일이다.

외출할 때도 마찬가지다. 좁고 밀폐된 엘리베이터를 타는 일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문이 열리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주민이 있으면 선뜻 안으로 들어서기 꺼려지니 그냥 보낸다. 동네 공원을 산책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중앙방역대책본부가 환기 효과를 거두는 공기 흐름이 있고 2m 이상의 거리 두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공원 나들이 등은 큰 위험이 없다고 밝혔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이들이 내 앞쪽으로 다가오면 기겁하고 피해간다. 벚꽃은 흐드러지게 피었으나 사람을 피하는 데 신경 쓰다보니 ‘핑크빛 봄날’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다. 대중교통 이용은 당분간 접었다. 운전하는 것을 싫어해 늘 ‘뚜벅이족’으로 다녔지만 이제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대중교통은 겁난다. 밀폐된 공간이라 감염 우려가 높으니 택시, 버스, 지하철 어느 하나 안전한 것은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초등학교 교사인 지인은 개학이 다가오니 걱정이 태산이다. 평소에도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이 과연 등교해서 하교할 때까지 마스크를 제대로 쓸까. 점심 급식시간에는 마스크를 벗어야하는데 방역이 제대로 될는지. 전에는 늘 아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줬는데 감염 걱정에 이제는 그렇게 못할 것 같단다. 교사, 학생 누가 감염됐는지 알 수 없으니 최대한 거리를 두는 것이 상책이다.

코로나19는 ‘인간 불신 사회’를 만들었다. 사람이 가장 두려운 세상이 되고 만 것이다. 이런 후유증은 아주 오래갈 것 같다. 코로나19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독감처럼 남을 것이라는 진단도 나오니 말이다. 참 잔인한 4월이다.

최현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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