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8 (일)

[세계포럼] 정치 실종 시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드라마 속 썩은 정치, 현재와 닮아 / 막말·비방 난무하는 막장 드라마 / 편협한 이념은 정치의 ‘독버섯’ / 미래 위한 소중한 ‘한 표’ 절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이 인기다. 왕세자 이창(주지훈)이 역병의 근원을 쫓는 사이 조선의 중심에서 권력을 두고 벌어지는 추악한 음모를 그려낸 좀비 드라마다. 조선시대 한복과 갓 패션, 활과 검을 활용한 화려한 볼거리와 탄탄한 줄거리로 K팝, K푸드에 이어 ‘K좀비’라는 장르까지 개척하고 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미 대표 드라마 ‘워킹 데드’를 뛰어넘었다고 극찬했다. 싱가포르와 태국, 필리핀 등에서도 흥행몰이 중이다. 그렇다고 단순한 킬링타임용 드라마로 보기엔 뒷맛이 개운치 않다. 반칙이 난무하고, 백성을 천대하는 작금의 국내 정치 상황과 너무 닮아서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그 누구도 가질 수 없습니다.” 아버지인 영의정 조학주(류승룡)를 독살한 중전 조씨(김혜준)가 권좌에서 내려오라는 세자 이창에게 냉소적으로 말하는 이 장면은 압권이다. 왜군의 침략으로 경상도 땅을 빼앗길 처지에 놓이자, 벼슬아치들은 수망촌 백성들을 감염시켜 인간 병기로 만들자고 한다. “어차피 그들은 어딜 가도 쓸모없는 자들입니다”라는 무책임한 말과 함께. 권력을 내주기는 싫고, 구차하게 연명하려고 백성을 버리는 무책임 정치의 클라이맥스다.

세계일보

김기동 논설위원


4·15 총선이 엿새 남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지구적 위기 속에서도 국내 정치판은 여전히 진흙탕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정책 경쟁은 기대 난망이다. 막말과 비방, 헛구호만 메아리치는 막장 드라마 그 자체다. 지난해 선거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등을 힘으로 밀어붙인 건 지금의 집권당이다. 그랬던 그들이 염치없이 위성정당·꼼수정당을 앞세워 권력을 쥐겠다고 발버둥친다. 저질 선거법의 원인 제공자였던 그들이 야당 비판자에서 동조자로 돌아서더니, 이젠 선거가 끝나면 선거법을 손보겠다고도 한다. ‘국민의 뜻’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선거법 처리가 결국 사기극이었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일말의 죄책감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종합부동산세를 인하하겠다며 잉크도 마르지 않은 정책을 뒤집는 건 예사다.

의원 배지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겠다는 엄포까지 놓는다. 재판에 회부된 최강욱 전 청와대 비서관이나 부동산투기 의혹을 받는 김의겸 전 대변인이 연일 검찰총장과 보수언론을 손보겠단다. 비례선거 기호를 12척의 배로 나라를 구한 이순신으로 둔갑시킨 재주(?)는 놀라울 정도다. 그러면서 촛불 정신과 문재인정부의 성공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자체가 블랙 코미디다.

조국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소신 발언을 이어가던 금태섭 의원을 내친 그들이 아닌가. 당내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순혈주의를 앞세워 유승민계를 잘라낸 4년 전 새누리당과 뭐가 다른가. 팬덤정치라는 그럴듯한 탈을 쓴 채 ‘거지 같다’는 시장 상인에게 마녀사냥식 막말을 쏟아낸다. 심지어 ‘친문’ vs ‘친조국’ 프레임으로 걸핏하면 집안싸움만 벌인다. 국민보다는 편가르기가 우선이다. 위정자들이 가져야 할 기본과 수치심은 내동댕이친 지 오래다.

투명한 정책, 건전한 비판과 토론은 정치의 자양분이다. 그런 정치판에 대립과 광신적 이념이라는 숙주가 독버섯처럼 자라난다. 그릇된 이념 대립에 무심해지면 정치는 팬덤의 숙주로 변모하고, ‘너 죽고 나 살자’는 극단적 사고만 남는다. 명분은커녕 안면몰수하고 이기는 것만이 지상과제가 된다. 편협한 이념은 광기로 흐를 위험성이 크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 가장 무섭다. 신념을 가진 사람은 진실을 알 생각이 없다”고 했다. 무서운 말이다.

“꼭 살아남거라. 그래서 너는 저들과 다르다는 것을, 진정한 왕이 무엇인지를 반드시 보여주거라.” ‘킹덤’에서 종묘사직이 위태로워지자 임금이 왕세자에게 던진 마지막 당부다. 역병이 물러나고 7년이 지난 뒤 세자는 야인을 택했다.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고, 왕은 그 백성을 하늘로 삼는다”는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미련없이 권좌를 버렸다. ‘괴물이 언제 어디서라도 다시 습격해올 수 있다’며 검을 고쳐 잡는 그를 보면 백성만 바라보는 능동적 리더가 떠오른다. 국민이 존중받지 못하고 상식과 대의가 실종된 정치. 힘들어지는 건 국민뿐이다. 며칠 후 던질 한 표가 더욱 중요해졌다.

김기동 논설위원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