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9 (일)

"돈만 뿌리면 안된다" 이재갑 면전에 쓴소리 쏟은 전문가 6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재갑 고용장관, 노동경제학자 6인 간담회

노동시장 위기 대응 방안 관련 논의

"코로나 위기 뒤 경제회복을 생각한다면 무턱대고 돈만 뿌리지 말고 정책을 버무려라."

노동시장을 다루는 학자들의 지적이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9일 전문가 6인을 초청해 '코로나 위기 노동시장 대응 간담회'를 가졌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 김용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안상훈 서울대 교수, 엄상민 명지대 교수,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전병유 한신대 교수 등 6명이 참석했다.



"위기에 전략적으로 접근하라"



이날 참석자들은 "지금의 위기에 전략적으로 접근하라"고 조언했다. 돈만 뿌리는 것보다 정책이 어우러진 지원을 해야 향후 노동시장의 회복력을 높일 수 있다는 취지다.

참석자 가운데 권순원 교수의 발제문이 눈길을 끌었다. 그동안 누적된 한국 노동시장의 상황과 문제점, 통계와 산업현장의 동향, 대응 방식의 문제점, 향후 대응방안 등을 외국의 사례와 외국 언론의 보도까지 첨부해 종합적으로 제시했다.



"고용유지 위해서라면 임·단협 효력 일시 정지"



권 교수는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용 유지에 영향을 미치는 기존 임금·단체협약상의 근로조건을 재조정해야 한다"며 "일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 임·단협의 적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기 상황, 특히 생산력이 뚝 떨어진 상황에서 예전의 고임금과 과도한 근로조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는 얘기다. 대체로 임·단협이 적용되는 사업장은 대기업 또는 공기업이다. 현재 중소기업과 영세기업을 중심으로 실직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기업이 가세하면 노동시장은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칠 수 있다. 권 교수는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선제적이고 한시적인 대응책을 주문한 셈이다.

중앙일보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독일 금속노조(IG Metall) 본부에 금속노조 깃발이 걸려있다. REUTERS=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권 교수는 또 "총노동력의 안정을 위한 위기협약 체결이 필요하다"며 "위기 협약은 협력업체 근로자의 고용보호와 연계해 재설계하는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금속노조(IG Metall)는 지난달 말로 만료된 임금협약을 올해 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사실상 임금 동결이다. 그러면서 사업장별로 연대기금을 조성해 생계에 타격을 입는 근로자에게 지원한다. 협력업체 근로자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조치다.



"재택근무 등 확산 위해 노조 동의없이 취업규칙 변경할 수 있어야"



노동시장 혁신도 주문했다. 권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 원격근무, 재량근무 같은 다양한 근무형태가 확산했다"며 "이런 근무형태가 사업 특성과 시장 환경에 맞게 신속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취업규칙 변경 절차를 한시적으로 자유화해 노조 동의 없이도 변경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별 근로자의 동의만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근로형태의 유연화가 시급하다는 뜻이다. 현재는 집단적(노조) 동의가 없으면 취업규칙을 바꿀 수 없다. 사실상 한시적이나마 노동법의 효력을 정지하라는 얘기다. 덴마크는 강제휴가권을 사업주에 부여하는 등 일부 유럽국가는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자 이런 방식으로 정책적 고용유지 지원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재택근무 시 노조와의 사전 합의 요건을 6개월간 효력 정지했다.

중앙일보

코로나19사태로 이탈리아 밀라노의 차이나 타운인 비아 파올로 사르피(Via Paolo Sarpi)의 상점이 모두 문을 닫았다. 이탈리아는 재택근무 때 노조와의 동의를 받도록 명시한 노동법의 효력을 6개월 동안 정지시켰다. EPA=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단계별 위기 대응 전략을 짜고, 위기관리 특별위원회 필요"



권 교수는 노동시장의 단계별 경보체계 도입을 촉구했다. 1단계는 근로시간 단축이다. 2단계는 휴직과 휴업을 하는 단계다. 3단계는 희망퇴직과 정리해고 같은 구조조정에 돌입하는 때다. 권 교수는 "2단계에 진입한 산업이나 업종의 경우 위기관리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노사 간 고통 분담의 방법을 탐색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등 단계별 핀셋 대응방안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든 특별협의체든 미국의 전시노동위원회에 준하는 위기관리 위원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가 제안한 노동시장 위기 단계별 대응전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현금 위주의 지원책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게 권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돈(고용안정지원금)을 줘도 비정규직 근로자 해고 방지를 조건으로 지급하는 등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등 유럽 국가는 부분 실업을 확산시키면서 해고를 제한하는 조치를 병행하고 있다. 부분 실업은 근로시간을 단축할 경우 이로 인한 임금 감소분을 실업으로 인정해 실업급여를 지급함으로써 임금을 보전하는 제도다.

중앙일보

스키장으로 유명한 스위스 베르비에의 텅 빈 거리에 스위스 경찰차만 순찰 근무 중이다. 스위스에선 자영업자가 생계자금 대출을 신청하면 30분만에 입금된다. 생계자금 대출신청서는 한 페이지에 불과하다. EPA=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원금, 원스톱 관리 하라"…자영업자 지원금 받는데 스위스는 30분, 한국은 5일에 그나마 복불복



권 교수는 "지원금의 지원 속도도 확 끌려 올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를 위해 스위스형 모델을 제시했다. 스위스는 유럽 내 방역 모범국이면서 동시에 경제 위기 극복 및 회복 정책을 동시에 구사하는 위기 대응 모범국으로 주목받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즈(4월 5일자)에 따르면 스위스에선 자영업자가 지원금 신청서류 작성과 통장 입금까지 30분밖에 안 걸린다. 우리는 빨라야 5일이고 그나마 대출 자체가 복불복이다. 권 교수는 "고용부가 관리하는 지역고용대응특별지원사업, 국민취업지원제도, 근로복지기본법상 생활안정지원사업 등을 원스톱으로 관리하는 통합 시스템을 구축하라"고 권고했다.

또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대리운전기사,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등)에게도 골고루 정부의 지원 혜택이 돌아가고, 향후 노동시장의 활력을 위해서는 한국형 실업부조제(국민취업지원제도)를 조기에 실행할 것도 요청했다. 지급수준(6개월 동안 50만원)을 한시적으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