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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어린이집 원장 '페이백', 차명계좌까지 동원…"갑질?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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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일~6일 보육교사 1280명 설문 조사

교사 급여, 원장이 돌려받는 '페이백' 실태

일부 교사 "페이백 안 하면 무리한 노동"

걸리지 않으려고 여러 수법 동원된 정황

"현금 또는 다른 사람 계좌로 입금하기도"

변호사 "국가 보조금 유용했다면 처벌도"

"다만, 예산에 보조금 혼재…입증 어려워"

뉴시스

[서울=뉴시스] 이기상 기자 =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가 지난 8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어린이집 원장이 보육교사의 월급을 돌려 받는 '페이백'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2020.04.08wakeu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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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기상 기자 = "요즘 원장들은 대놓고 달라고 안 해요. 그 대신 무리한 노동을 시킵니다. 페인트칠, 벽지 도배하기, '텃밭 상추나 채소 뜯어서 김치 담그면 맛있겠다' 등으로 (압박합니다)."

경상남도의 한 민간 어린이집 보육교사는 받은 월급을 어린이집 원장에게 되돌려주는, 일명 '페이백'을 하지 않자 갑질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어린이집 10곳 중 4곳 꼴로 원장이 보육교사에게 급여를 되돌려 받는 페이백을 요구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와 논란이 예상된다.

어린이집 원장은 대체로 페이백을 위해 현금으로만 돈을 받고 차명계좌까지 동원한 것으로 풀이되는 정황까지 포착, 적발 시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고도 이같은 행위를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다.

9일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에 따르면 최근 설문조사에 응한 민간·가정어린이집 보육교사 중 131명(12.9%)은 올해 2~3월 기간 중 페이백 경험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258명(25.4%)은 이 기간 페이백을 하지는 않았지만 원장에게 페이백을 제안받거나 동료 교사가 권유받는 것을 목격했다고 답했다. 결국 389명(38.3%)의 보육교사가 직·간접적으로 페이백 강요나 실행을 경험한 것이다.

정부는 어린이집 휴원 기간에도 긴급보육 운영비를 통해 보육교사 인건비를 정상 지급하는데, 원장들이 이를 부당하게 갈취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설문조사 과정에서 코로나19 이전까지 포함해 한 번이라도 페이백을 경험했다고 답한 어린이집 보육교사 351명에게 '어떻게 원장에게 돈을 건넸느냐'고 물으니, 241명이 '현금을 인출해서 원장에게 직접 가져다줬다'고 답했다.

이종희 변호사는 9일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원장이 페이백을 증거가 안 남는 현금으로 받은 것은, 이 돈이 원장 개인의 목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이라면서 "만약 정부에서 교사에게 지급한 보조금을 원장이 받아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했다면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보조금을 교부받거나 유용한 경우'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영유아보육법 제54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실제로 설문조사에 응한 보육교사들이 경험했다고 주장하는 페이백 수법을 보면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한 여러 방법이 동원된 정황을 확인할 수 있다.

13명의 보육교사는 '현금을 인출해 동료교사 등 원장이 지정한 사람에게 가져다줬다'고 응답했다. 26명의 보육교사는 '원장이 지정한 다른 사람의 계좌로 송금했다'라고 응답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보육교사는 원장으로부터 보육교사 본인 명의의 통장 개설을 요구 받은 후, 원장이 현금인출카드와 통장비밀번호를 요구해 직접 관리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 보육교사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페이백을 요구받았다고 주장했다.

인천시 민간 어린이집의 한 보육교사는 주임교사가 나서 페이백을 강요했다고 전했다. 원장이 직접 얘기하지 않고 주임교사를 따로 시켜 고통을 분담하자고 해보라고 권유하는 식이다. 자발적 페이백인 것처럼 꾸미려고 시도했다는 얘기다.

대구시 민간 어린이집에 다니는 한 보육교사는 올해 4월부터 고통 분담 차원에서 급여 중 30%를 페이백하라고 권유 받았다고 전했다. 이 돈은 어린이집 원아들이 퇴원하지 못하게 선물을 사주는 용도로 쓰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보육교사들은 이렇게 페이백을 요구받더라도 거절할 수 없고, 고발하기도 힘들다고 전한다.

전라남도 사회복지법인의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는 "신고하면 누군지 다 안다고 협박한다"고 밝혔다. 경기도 민간 어린이집에 다니는 보육교사도 "(이런 문제에 대해) 저희가 목소리를 내면 목소리를 낸 선생님들은 노출이 돼 일자리가 아예 없어진다"고 주장했다.

페이백 자체를 처벌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이 변호사는 "어린이집 예산이 국가에서 나오는 보조금과 보조금이 아닌 부분이 있다"면서 "보육교사 개인 계좌로 지급되는 담임교사 지원비는 보조금이지만, 원장이 보육교사에게 지급하는 임금은 순수한 보조금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페이백한 금액이 보육교사가 국가에서 받은 보조금이라는 게 입증되면 처벌이 가능하겠지만, 이렇게 혼재된 상태라 복잡한 부분이 있다"면서 "보조금을 부정 사용했다고 입증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보육교사가 근로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페이백을 원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해 보육지부 측은 "그럴 경우 보육교사는 보육교사 자격증이 취소된다"면서 "대부분의 페이백은 원장의 강요로 시작된다"고 주장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wakeu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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