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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막차리뷰]영국에서 날아온 현실적인 공포 ‘이어즈 & 이어즈’···우리는 이미 디스토피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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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가까운 미래를 그린 드라마 <이어즈 & 이어즈>는 보는 사람들에게 지극히 현실적인 공포를 선사한다. 주인공 4남매 중 맏이인 스티븐은 경제 위기에 따른 은행 도산으로 전 재산을 날리고(위 사진), 각국의 극우 정치인을 조합한 듯한 비비언 룩(아래)은 권력을 잡자마자 상상을 초월한 정책을 펼친다. 왓차플레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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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막내 기자와 차장 기자가 함께 보는) 리뷰’는 화제의 콘텐츠를 두 명의 기자가 보고 각자의 평과 함께 ‘마음대로 별점’을 매기는 코너입니다. 첫회는 40대의 남성 기자와 30대 여성 기자가 영국 드라마 <이어즈 & 이어즈(Years & Years)>를 보고 각각 리뷰를 했습니다. 세대가 다르고, 성도 다르니 같은 콘텐츠에서도 눈여겨보는 지점이 달랐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누구의 평에 더 동감하시나요.


■현실적 공포에 대한 절망…불평만 하지 말라는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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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즈 & 이어즈>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왓챠플레이가 지난달 13일 공개한 6부작 드라마다. 영국의 ‘평범한’ 가족들이 2019년부터 2034년까지 겪는 일들을 그렸다. 지난해 5월 영국 BBC가 방영해 화제를 모았고, 한국에서도 공개 이후 매일 집계되는 왓챠플레이 시청수 1위를 놓치지 않고 있을 정도로 호응이 좋다.

<이어즈 & 이어즈>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꿈도 희망도 없는 드라마’다. 배경은 먼 미래도 아닌 이미 현실에서 시작된 ‘2020년대’다. 보는 내내 고통스럽다. 그런데도 6시간씩이나 들여 단숨에 ‘정주행’했다. 흔한 비유를 쓰자면 <이어즈 & 이어즈>를 안 본 사람은 있어도, 1회만 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한 회가 끝나면 다음 회가 궁금해 기다리기 힘들다. 지난해 영국에서는 일주일에 한 편씩 방송됐다는데. OTT 플랫폼에서는 6회까지 한번에 몰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싶다. ‘암울한 근미래’가 주 배경이었던 영국 SF 드라마 시리즈 <블랙 미러>를 재밌게 본 사람이라면 <이어즈 & 이어즈> 역시 흥미로울 것이다.

<이어즈 & 이어즈>를 보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은 ‘공포’였다. 막연한 무서움이 아니라, 지금 당장 문을 열고 들이닥칠 것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공포 말이다. 주인공 4남매 중 맏이인 스티븐이 경제위기에 따른 은행 도산으로 전 재산을 날리는 장면은 그중에서도 압권이다. 당장 한국인들이 20여년 전 겪은 일과 겹칠 수밖에 없어 공포가 배가된다. 허겁지겁 은행문을 향해 달리는 스티븐과 아내 셀레스티의 절망이 화면 밖으로 배어나오는 것 같다.

<이어즈 & 이어즈>의 주인공들은 정치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드라마 시작과 함께 등장한 기업인 출신 정치인 비비언 룩은 각국 극우정치인들을 조합해 놓은 듯하다. 그가 인기를 얻을수록 세상이 망해가는 것인지, 세상이 망해가고 있어 그가 인기를 얻는 것인지…. 어쨌든 비비언 룩은 혼세 속에서 권력을 잡고, 상상을 초월한 정책을 시행한다. 그 기괴한 정책은 주인공들 삶을 송두리째 흔든다.

등장인물들이 하나둘 절망에 빠져가는 가운데 4남매의 외할머니 뮤리엘이 중심을 잡고 가족을 일으켜 세운다. 아흔을 넘은 나이에도 가장 ‘깨인’ 인물이다. 뮤리엘의 ‘일장연설’ 뒤 갑자기 각성한 주인공들이 행동에 나서는 전개는 좀 억지스럽지만,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는 명확해 보인다. “불평만 하고 있으면 거지꼴을 못 면할 것이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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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올바름’이란 뭘까…그래도 투표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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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귀가해 혼자 먹는 저녁, 반찬보다 중요한 건 ‘뭘 볼까’다. BBC 드라마 <이어즈 & 이어즈>가 재밌다길래, 별 생각 없이 1화를 재생했고 그대로 6시간이 사라졌다. 새벽 2시가 넘어 얼빠진 채로 먹다 남긴 그릇을 치우며 든 생각은 이랬다. 하나, 돈 벌어서 금 사야겠다. 둘, 영국인들의 ‘정치적 올바름’은 원래 저렇게 저들 편한 데서 멈추나?

금을 사야겠다는 황당한 결심은, 여태 누려온 안전한 일상이 일순간 훅 꺼질 수 있다는 불안에서 왔다. <이어즈 & 이어즈>가 2019년 현재를 데이터 삼아 도출한 이후 16년간의 미래는, 우리가 이미 디스토피아에 진입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생한 공포를 선사한다.

직업을 갖고 돈을 벌어 사랑하는 사람들과 안전한 공간에서 살아간다. 극은 이 평범한 발상이 고도의 행운과 괜찮은 정치, 안전한 체제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행성이 떨어지지 않아도 소박한 꿈은 쉽게 불가능에 처박히고, 세상은 망해가면서도 지속된다. 인물들은 이제 11개의 직업을 동시에 굴리거나, 애인을 만나기 위해 목숨을 걸거나, 인공지능에 직업을 계속 빼앗기는 새로운 ‘뉴노멀’을 견뎌야 한다. 그리고 <이어즈 & 이어즈>의 진짜 공포는, 이 뉴노멀이 현실에 이미 도래하고 있다는 데서 온다.

또 다른 장점은 정치적 올바름이 섬세하게 고려됐다는 점이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난민까지 다양한 소수자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그런데 치명적 결함이 있다. 그 세심한 고려 속에 아시아인은 없다.

주인공 4남매 중 막내 로지가 중국인 남자와 낳은 아이 링컨은, 로지 말대로 “완전 중국인 같다”. 링컨을 연기한 배우들은 하나같이 전형적인 아시아인 외모를 한 채로, 엄마 모습은 눈곱만큼도 찾기 힘든 ‘기적 같은’ 중국인다움을 보여준다. 링컨은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며, 소수자 정체성을 시쳇말로 ‘몰빵’받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뿐이다. 링컨은 말도 서사도 없이 그냥 앉아 있을 뿐이다. 그저 구색을 맞추려 중국 인형을 데려온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대상화돼 있다.

메시지가 강한 탓에 후반부가 뻣뻣해졌다. 일장 연설을 이어가는 뮤리엘 모습 뒤로 ‘여러분, 정신 차리세요!’ 호통치는 작가 러셀 T 데이비스의 얼굴이 보일 정도다. 그럼에도 흡입력 하나는 대단하다. 설거지를 하며 불안하다고 금을 살 게 아니라(사실 돈도 없다), 투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가가 원하는 대로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지만 뭐, 별수 있나.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홍진수·김지혜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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