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8 (화)

조아라 공감N 연구소장 “성폭력은 함께 풀어야 할 사회문제로 인식해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나는 성을 가르칩니다’ 펴낸 조아라 공감N소통성교육연구소장

경향신문

조아라 소장은 “요즘 청소년들은 진짜든 가짜든 성에 대한 지식이 대단히 많은데, 어른들은 아직 ‘일단 막자’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면서 “아이들이 습득한 성에 대한 정보를 잘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성교육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예방 중심 교육 탈피, 목격자·감시자로 ‘무엇을 할 것인가’ 알려야

성교육 현장의 보수성도 문제…감수성과 변별력 키워주는 것 중요


“성폭력 사건을 타자화하는 시각이 가장 큰 문제예요. ‘나쁜 가해자와 불쌍한 피해자’를 보는 시선이 아니라, 성폭력은 같이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라는 사실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가 하는 성교육의 중요한 목적이죠. 잠재적 가해자, 잠재적 피해자가 아니라 목격자이자 감시자의 자리에서 예민한 성인지 감수성을 키우는 교육이 절실합니다.”

최근 디지털 성착취 범죄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성폭력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성교육의 중요성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성 관련 지식 및 영상을 접하는 경로는 날로 다양해지는 반면, 아이가 부모나 교사와 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기는 여전히 쉽지 않은 게 한국의 현실이다. 최근 <나는 성을 가르칩니다>(마티)를 펴낸 조아라 공감N소통 성교육연구소 소장(36)을 지난 8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그는 ‘n번방 사건’을 접하면서 “우리 사회가 성폭력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참 변함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처음엔 가해자를 엄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노가 강했어요. 하지만 피해자들에게 학비와 생활비 등을 지원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나오자 여론이 빠르게 바뀌었죠. ‘일탈계’(자신의 신체 일부분을 촬영해 게시하거나 공유하는 SNS 계정)를 스스로 만들었다가 피해자가 된 아이들을 왜 세금으로 도와주냐는 거예요. 하지만 이런 반응은 성폭력을 사회문제로 여전히 인식하지 않는다는 방증이에요.”

조 소장은 학교와 상담실, 교도소 등의 현장에서 10년째 성교육을 해오고 있다. 그는 “과거에는 성폭력 예방 중심의 성교육이었다면 최근에는 청소년들이 어떤 것이 성폭력 행위인지를 분명히 알게 하고, 목격자 또는 감시자로서 성폭력 저지 및 발생 감소를 위해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것을 교육 목표로 삼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어 “현장에서 교육을 해보면, 머리로는 이해를 해도 막상 현실로 닥치면 ‘이게 성폭력이구나’ 하고 인지하고 반응하기 어려워한다”고 했다.

그는 디지털 성폭력의 경우 “피해와 가해가 꼬리를 물고 이어져 명확한 구분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일례로 한 남자 중학생이 같은 반 여학생에게 자신의 알몸사진을 보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남학생 역시 몸캠피싱의 피해자였다는 것이다. 가해자가 피해 남학생에게 돈을 뜯어내기 위한 협박을 하려 남학생의 휴대폰을 해킹해 여학생에게 사진을 보냈던 것이다. 조 소장은 “성폭력 대처 방식에서도 한국은 여전히 피해 신고 수준에 머물러 있는 점이 문제”라면서 “가해자가 됐을 때 어떻게 수습하고 사죄할지에 대한 교육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보수적인 학교의 문턱을 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는 “한 중학교에서 뽀뽀할 때 동의를 구하는 방법, 거절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수업이 끝나자마자 선생님이 달려와 ‘아이들을 더 자극할 수 있으니, 스킨십은 손잡기 이상의 사례를 들지 말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학교라는 공간에선 청소년들의 스킨십 자체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여전히 강하다”고 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개학도 온라인으로 하는 마당에, 인터넷이나 모바일기기로부터 아이들을 떼어놓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봐요. 결국 음란물에 대한 아이들의 감수성과 변별력을 키워주는 수밖에 없죠. 성에 대한 어떤 감정이라도 아이와 나눌 수 있는 어른이 옆에 있는 게 가장 바람직합니다. 부모면 더 좋고요.”

조 소장은 “성교육 멘토의 자리를 성범죄 영상에 넘겨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절실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윤주 기자 runyj@kyunghyang.com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 유튜브 구독▶ 경향 페이스북 구독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