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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언니들의 플랫한 생활](6)‘몸의 안부’를 묻는 연대…그들의 ‘돌봄 품앗이’가 나를 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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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관계는 병마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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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입원에 항암치료 넉 달

동네 사람이자 같은 ‘페미’들이

가족 대신 ‘릴레이 간병’ 자청

이런 연대, 내 역할 생각하게 해


방골성 골육종. 희귀암 진단을 받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병으로 수술을 하게 됐다. 3주를 넘긴 긴 입원 기간과 퇴원 후에도 이어진 넉 달간의 항암치료는 더욱 예기치 못했던 투병의 일상이었다.

혜영(39)이 인생에서 가장 깜깜했던 터널을 지나던 그때 힘이 되어주었던 사람들이 있다. 곁에 있어주었던 이들은 아팠던 그 시간들을 인생의 자원으로 바꿔놨다고 했다. 지난달 3일 만난 혜영은 몸의 안부를 묻고 돌봐주었던 여성들, 병마보다 강했던 정의로운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 투병 생활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2017년 11월 말 암 진단을 받고 12월 초에 바로 수술을 했어요. 퇴원하고도 4개월 정도 항암치료를 받았죠. 2018년은 전부 회복하는 데 보냈어요. 지금은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무리가 없지만 수술을 받은 다리에는 장애가 남았어요. 쪼그려 앉거나 뛰거나 하지는 못하는 상태입니다.”

사진을 찍는 프리랜서인 그는 서울 은평구에서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사는 1인 가구다.

- 혼자 아플 때 가장 서럽다고 하잖아요. 암을 이겨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돌봄이 필요한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투병 생활이라는 것이 대부분 가족의 돌봄에 기대잖아요. 특히 어머니가 맡는 경우가 많고요. 그런데 저희 어머니가 70대 중반이에요. 나이가 많으시죠. 그래서 당시 같이 살던 친구와 동네 친구들이 저의 돌봄을 맡아줬어요. 몸과 마음의 돌봄 모두. 그래서 회복할 수 있었어요. 아프기 전에도 서로 일상의 안부를 물어왔던 친구들이에요. 같은 페미니스트였기 때문에 이런 방식의 돌봄을 상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친구들은 그를 위해 ‘릴레이 돌봄’을 해줬다. 요일별로, 시간대별로 7명이 맡을 수 있는 시간을 적은 타임테이블이 있었다. 누가 몇 시에 오고 가는지 확인하고, 돌봄이 필요한 항목도 적어 인수인계를 했다. 하루 20분, 재활 운동하는 시간에 필요한 기계는 복도에서 받아 오면 되고 씻길 때 필요한 수건의 종류가 무엇인지, 침대 시트를 교체할 때 간호사실 앞에 비치돼 있는 것을 쓰면 된다는 주의까지 꼼꼼하게 매뉴얼로 적어 공유했다. 이 돌봄 매뉴얼에는 마사지는 어깨와 등을 해줘야 하며, 다인실 냉장고 안에 혜영의 물건이 놓인 냉장실 번호와 ‘딸기와 배를 선호한다’는 것도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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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영이 동네 친구들과 타로 스터디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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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병인 경험이 있는 프로가 돌봐준 것 같아요(웃음).

“다 동네에서 자주 연락하던 친구들이에요. 한 친구가 소통방에 ‘혜영이 지금 이런 상태이니 돌봄이 가능한 사람들이 모여보자’고 해줬고 모두가 저의 재활과 회복을 위한 움직임을 시간별로 짜줬죠. 하루 종일 누워 있기만 한 것은 아니고 재활운동도 해야 했고, 산책할 수 있는 시간도 있어서 휠체어를 타고 다녔거든요. 대소변도 친구들이 받아줬어요.”

친구들은 1층 코스와 암병동 코스를 만들어 하루 한두 번, 그를 휠체어에 태워 같이 산책을 나갔다. 소변을 볼 때는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대변일 때는 어떤 것을 준비해 어디서 처리를 해야 하는지 서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병실 한쪽에 써 붙였다. 큰 수술을 받은 그가 24일, 거의 한 달 가까이 병원에서 일흔이 넘은 엄마와, 그래도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꽤 능숙한 간병인이 돼준 친구들 덕이다.

- 어떻게 그런 돌봄이 가능했을까요. 가족도 해주기 힘들잖아요. 사실 남인데 일부러 시간을 내고, 계획을 세워서 병원에 오는 건 ‘이 사람을 낫게 하겠다’는 강한 마음이 있어야만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연대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쉽게 상상할 수 없어요.

“제가 인복은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저는 관계의 폭이 넓지는 않아요. 페미니스트 친구들 말고는 친구가 없어요(웃음). 그런데 이 친구들의 특징이 정의로움이 있다는 것이에요. 제가 아픈 몸이 되니까 저희 관계에서도 정의로움이 발동한 것 같아요. 서로를 동료로 생각하기 때문일 거예요. 동료가 아플 때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힘이 있어요. 내 역할을 찾아 나서게 만드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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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항암치료를 마친 혜영은 자신의 아픈 몸을 기록하려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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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영은 은평구에서 나고 자랐다. 서울의 주변부, 상대적으로 주거비가 저렴한 동네였기 때문에 비혼인 1인 가구가 많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가 현재 살고 있는 집 근처에는 여성주의자들이 만든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과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이라는 공간이 있다. 이곳들을 중심으로 페미니스트들이 모여 있고 그 역시 이런 환경에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지역적인 조건이 좋았어요. 서로 몸의 안부를 묻거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돌봄의 역할을 상상하는 일들이 평소에도 이뤄져요. 이게 제가 살 고 있는 곳의 특성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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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짠 돌봄 타임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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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의 안부를 묻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요즘 몸은 어떠냐, 더 아픈 데는 없냐, 지난번에 좋지 않았다고 한 건 어떠냐고 묻는 거죠. 주변에 사는 친구들이 일상적으로 그런 질문을 해준다면 서로 (상대의 상태를) 목격할 수 있잖아요. ‘이 친구가 요즘 어떤 상태구나’ ‘아, 나아졌구나’, 아니면 ‘좋지 않은 상황이구나. 다음에는 어떤 질문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가볍게 형식적으로 묻고 답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성스럽게 물어주면 자세히 얘기하기도 해요.”

혜영은 지방으로 출장을 갈 일이 생기면 친구들에게 ‘오늘 수업이 있어서 언제 내려갔다가 언제 올라온다’고 ‘보고’를 한다. 보고를 받은 친구들은 “알겠다”며 올라올 때도 이야기하라고 답해준다. 어딘가에서 혼자 아플지도 모를 일이니까.

- 그런데 이런 돌봄이 꼭 여성들만의 역할은 아니잖아요.

“교육의 영향이 있겠죠. ‘옥희살롱’ 교육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여성이 아프면 그 여성은 누가 돌볼까요? 본인, 스스로가 스스로를 돌본대요. 반대로 남성은 아내가 돌보죠.”

고향인 은평을 떠나 1년2개월, 제주도에서 생활했던 혜영 역시 엄마를 돌보기 위해 다시 은평으로 돌아왔다.

“제주도에 살 때 어머니가 관절이 너무 안 좋아져서 걷기도 어려운 상태가 되셨어요. 엄마 옆에는 아버지도, 남동생도 있었지만 돌봄의 역할을 하지 못했죠. 제가 서울로 와서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갔고, 재활치료까지 거의 반년 가까이 혼자 간병을 했어요. 집안일도 제가 했고요. 그때 돌봄을 하는 사람의 육체적·심리적 고통이 너무 크다는 걸 알았죠. 그 고통은 사실 다 환자, 아픈 가족에게 갈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도 옆에 있는 남자들은 왜 돌보지 못할까. 사실 해야 하는 게 맞잖아요. 남성들을 돌봄 영역에 억지로라도 들어오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특히 가족 안에서 여성에게 부여되는 돌봄의 부담은 ‘독박’ 수준이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의 ‘한국의 노인 및 아동 돌봄 가족조사’ 연구를 보면 돌봄 전담자의 85%가 여성이었다. 특히 노인 돌봄의 경우 처음에는 배우자(64.8%)가 시작했어도 딸과 며느리에게 그 역할이 넘어오는 경우(71.7%)가 많았다. 혜영이 다른 남성 가족의 도움 없이 어머니를 돌봤듯이 아픈 혜영의 돌봄도 어머니가 ‘독박’ 부담하게 됐다. 원래부터 돌보던 손주와 함께.

“수술하고 열흘 뒤 항암치료가 결정되면서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첫 항암치료 후 호흡곤란으로 이틀 만에 응급실을 갔습니다. 이때 응급실에서 나와서는 부모님 집으로 가지 않고 친구랑 살던 집으로 다시 들어갔어요. 가족들과 지냈던 일주일이 너무 불편했거든요. 아픈 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가족에게 저는 너무 불쌍하거나 혹은 가까이하면 안되는 사람이 된 거예요. 엄마는 짐을 나눠서 들어주는 가족 구성원 없이 저와 손주를 돌봐야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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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영이 암 수술 직후 남긴 병상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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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항암치료 전 집에서 보낸 일주일간 가족들에게 ‘아픈 상황에서도 저렇게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사람이 됐고, 그때 집을 나온 이후 더 이상 엄마를 제외한 가족들을 만나지 않는다.

“1인 가구는 ‘혼자서 아프게 되는 상황’을 생각하는 것이 공포라고 하지만, 가족들과 (아픈 상황에서) 함께 생활하다 받는 상처가 더 크기도 해요. 가족이 있으면 다 해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잖아요. 돌봄을 ‘정상 가족’ 안에서 모두 해결해야 할까요. 그래서 정부의 역할이 느슨해진 것은 아닐까요. 요즘은 1인 가구도 많고, 혼자 살다 죽는 케이스도 너무 많아요. 이제 국가가 해줘야 해요. 1인 가구가 혼자 아픈 것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봤으면 해요.”

혜영은 암 선고를 받고 느꼈던 공포감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돌봄을 받을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상상하면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스스로 몸을 건사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 혼자 사는 1인 가구에게는 공포의 순간이다.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의지할 가족이 없거나 상대적으로 수입이 적은 1인 여성 가구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친구들의 돌봄으로 암을 이겨내면서 곁에 있는 누군가가 아프면 돌봐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사하는 친구가 처음에는 ‘아팠던 언니가 어떻게 일을 하겠냐’고 했지만, 전 무엇이든 역할이 있을 것이니 도우러 가겠다고 했어요. 근데 그 친구가 이사 전날 아파서 갑자기 입원을 하게 된 거예요.” 이사 당일, 정작 집주인이 없는 이사가 진행됐다. 혜영과 친구 9명이 이삿짐을 싸고 날랐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정해져 있지 않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돌봄의 순간, 실전을 위해서는 돌보고 돌봄을 받는 연습이 필요하다. 혜영도 투병하며 깨달은 사실이다.

“돌봄을 받은 경험을 누군가에게 돌려줄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기억이에요. 아픈 사람에게 무엇이 좋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시나리오를 쓸 수 있게 된다면, 구체화할 수 있다면 공포는 줄어들어요. 어떤 돌봄을 누구와 해낼 수 있을지 그려볼 수 있는 자원이 (아프고 난 뒤) 저에게 생겼다고 생각해요.”





※시리즈 순서

1 비혼 여성들, 노년의 삶을 고민하다

2 느슨한 연대, 약한 유대의 거리감을 만드는 법

3 제도는 우리를 미완성이라고 하지만

4 언니는 왜 ‘프리’를 선언당했는가

5 정치력을 가져야만 풀리는 서사가 있다

6 우리의 관계는 병마보다 강하다

7 엄마는 딸과 동거하며 이름을 찾았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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