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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윤평중 칼럼] 조국(曺國)이냐, 조국(祖國)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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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 여당 대승하면 文 정권 황태자 조국 전 장관 부활의 동아줄 잡게 돼

장기 집권 노리는 현 정권 軟性 파시즘 지옥문 열려 해

국가의 삶과 죽음 엇갈리는 암흑의 갈림길 눈앞에 있다

조선일보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총선이 닷새 앞이다. 코로나 사태가 모든 걸 삼켰지만 4·15 총선이 나라의 앞날을 규정할 중대 선거라는 사실까지 바꾸진 못한다. 지금 당장은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코로나19가 두렵고, 흔들리는 경제가 걱정이다. 궁극적으로 이 모든 난제(難題)를 푸는 건 정치와 국가의 힘이다. 총선은 정치 구도와 국가권력 재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한 표 한 표는 결코 무력하지 않다.

4·15 총선의 화두는 '조국(曺國)이냐, 조국(祖國)이냐'로 압축된다. '조국 사태'가 한창일 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정치적으로 사망한 듯 보였다. 정의로운 나라로 표상된 조국(祖國·patria)을 그가 배신했기 때문이다. '조국 대통령 만들기'로 장기 집권을 노린 문재인 정권의 기획도 물거품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는 중대 오판이다. '조 전 장관에게 마음의 빚을 크게 졌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속내가 여당이 우세한 4·15 총선 판세로 구현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처럼 여당이 대승(大勝)을 거둔다면 조 전 장관은 부활의 동아줄을 잡게 된다. 검찰과 법원을 장악하게 될 공수처는 그의 재생(再生)을 위한 핵심 장치다.

조국 사태는 문 정권의 헤게모니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지만 한국 정치는 반전(反轉)을 거듭하는 생물(生物)이다. '코로나19의 정치학'이 문 정권의 총체적 실정(失政)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 그러나 진영 논리를 넘어 객관적으로 보면 조국 사태는 나라를 지탱하는 상식과 원칙을 파괴했다. 옳고 그름과 정의·불의를 나누는 기준을 무너트린 게 가장 치명적이다. 그 결과 한국 사회는 아노미(anomie·무규범 상태)의 무간지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위성 정당이라는 이름의 여야 괴뢰 정당들이 총선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는 게 단적인 증거다.

세계사가 증명하듯 국가의 본질은 '폭력을 사용하고, 폭력의 사용을 위협하며, 폭력의 사용을 암묵적으로 의미하는 정치 질서'다. 특히 근현대 국가에서 이런 특징이 선명하다. 전시(戰時)엔 물론이거니와 코로나 사태에 대한 세계 각국의 대응이 국가의 본질을 생생하게 입증한다. 코로나19 방역에서 각국은 지역 봉쇄나 출입국 금지, 검역 위반자 처벌 등 물리력을 동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독점적 폭력 위에 세워진 국가는 법치와 물리력으로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정치 공동체다.

하지만 국가의 폭력은 폭력 그 자체에 머무르지 않는다. 국가가 마피아 집단과 근원적으로 다른 이유다. 시민적 동의에 입각해 창출된 국가의 폭력은 정의를 지향함으로써 궁극적 정당성을 얻는다. 정의는 국가의 존재 근거이므로 정의를 결여한 국가는 나라라고 할 수조차 없다. 이런 맥락에서 조국은 우리가 태어난 장소가 아니라 정의로운 나라를 가리킨다. 불의와 반칙이 가득한 조 전 장관의 행적은 정의와 공정의 조국(祖國)과 정면에서 충돌한다. 문 정권 황태자인 그의 부활 시도는 4·15 총선을 '조국(曺國)이냐, 조국(祖國)이냐' 하는 이항 대립으로 몰아간다.

국가 철학의 지평에서 조국(patria)의 반대말은 타국이 아니라 폭정이다. 패권적 진영 논리를 극대화해 장기 집권을 노리는 문 정권은 연성(軟性) 파시즘의 헬 게이트를 열고 있다. '문빠'라고 하는 '문재인·조국 정치 팬덤'은 반(反)이성주의, 국수주의적 민족주의, 지도자 숭배라는 파시즘의 특징을 공유한다. 끊임없이 가상의 적을 만들어 민심을 격발시키고 다중의 위력 시위로 공론장과 법치주의를 왜곡한다. 파시스트들에게 정치는 적과 동지의 투쟁이므로 기만과 조작이야말로 핵심적 정치 수단이다. 그리하여 연성 파시즘에선 '어용 지식인'의 추악한 딱지가 찬란한 훈장이 된다. 극단적 가치 전도 현상이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대중의 지지에 편승해 연성 파시즘이 흥기(興起)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참혹한 현실이다.

파시즘의 위협이 조국(祖國)을 강타하고 있다. 민주 절차의 꺼풀로 민주주의를 해체하는 선출된 독재자가 출현하기 직전이다. 대중 독재가 포퓰리즘의 집단 망상을 업고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무한 증식해 나라를 중태에 빠트린다. 국가의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암흑의 순간이다. 4·15 총선이 우리에게 ‘당신은 나라의 진짜 주인이냐?’고 묻는다. 국민주권의 한 표 한 표는 곧 역사에 대한 응답이다. ‘조국(曺國)이냐, 조국(祖國)이냐’의 태풍 앞에 대한민국이 홀로 서 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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