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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김진세 박사의 K상담실]총선 앞두고 갑자기 거짓말 못하게 된 국회의원 후보, 어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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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은 아닙니다만, 이참에 ‘가장 솔직한 정치인’ 변신 어때요”

경향신문

라미란 주연의 코미디 영화 <정직한 후보>가 총선을 앞두고 IPTV VOD 시장에 풀리며 안방극장에서 흥행 레이스를 이어가고 있다. 영화는 지난 2월 개봉 당시 코로나19 직격탄을 맞는 악재 속에서도 153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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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내담자 19 영화 ‘정직한 후보’의 주상숙

“정직하게 살라”는 할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약속을 지키는 서민의 일꾼’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21대 총선에 나선 대한당 현탄갑 기호 1번 주상숙 후보. “사람만 안 죽이면 당선될 언니” 소리를 들으며 4선 성공은 무난하겠다 싶었는데, 입만 열면 술술 나오던 출중한 거짓말 능력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렸다. 선거일을 코앞에 두고 정치 인생 최대 위기를 맞은 주상숙이 상담실을 찾았다.


박 보좌관 = 김 박사님께서 이 지역 최고의 명의라는 소문을 듣고 저희 후보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주상숙 = 아니 박보! 가장 가까운 병원이라 오는 거라며(자기 입을 막으며). 아우 이놈의 진실의 입. 박사님, 말이 뇌에서 나와야 하는데 장에서 막 튀어나가는 기분이에요. 괄약근 조절이 안 돼요.

김 박사 =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주상숙 =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제가 갑자기 거짓말을 못해요. 병원도 가보고 침도 맞아보고 심지어 굿까지 해봤는데 답이 없네요. 이게 큰 병일까요? 제가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 상황이 아니거든요. 선거가 바로 다음주 수요일인데….

김 박사 = 한창 바쁘실 시기겠지만, 조금만 여유를 갖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해요. 상담을 서두른다고 해서 문제가 더 빨리 해결되지는 않으니까요. 그럼 내담자께서는 원래는 거짓말을 - 이렇게 말씀드리니 좀 이상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 자주 하셨나요?

거짓말 할 수 있는 약 없나요

“병적 경우라면 당연히 치료 필요 아주 불편하지만 평범한 일 아냐”

주상숙 = 네, 아니(입을 막으며), 이렇다니까요. 세상에 자기가 거짓말쟁이라고 실토할 정치인이 어디 있겠어요. 정치라는 게, 그렇잖습니까. 상황에 따라 필요한 거짓말도 있잖아요. 그런데 도통 입이 통제가 안 되니 거리 유세도 못하고 유권자들 앞에 나설 수가 없어요. 제발 거짓말 좀 하게 해주세요. 이번 선거만 잘 치를 수 있게 도와주시면, 내가 앞으로 박사님 병원 홍보는 책임져 드릴게.

김 박사 =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후보님. 많은 사람들이 경우에 따라 거짓말로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려 듭니다. 그래서인지 거짓말에 대한 연구나 책이 적지 않습니다. 오래된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보통 사람들은 하루 평균 3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하고요. 또 어떤 책에서는 하루 평균 200번을 한다고도 합니다. 최근 뉴스를 보니 미국 대통령은 하루 10여 차례 거짓말을 한다고도 하고요.

주상숙 =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세계 어느 나라 정치인이라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아주 빈번하게 팩트는 놓치고 이미지만 기억한다지 않습니까. 그게 정치심리학적으로…라고 말하고 싶은데, 실은 오며가며 주워들은 이야기라…(다시 입을 막는다).

경향신문

김 박사 = 뭐 어떻습니까. 편안하게 말씀하세요. 상담이야말로 거짓말이 결코 도움이 안 되거든요. 누가 얼마나 거짓말을 하는지 정확히 알긴 힘들겠지만, 적어도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는 명제는 반박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만약 거짓말을 진화의 산물로 본다면, 다시 말해 거짓말이 생존에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가정하자면, 거짓말을 못하는 것이 병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더라도 결코 평범한 일은 아닌 거 같습니다. 아주 불편하시겠어요.

주상숙 = 박사님이 이해해주시니 마음이 좀 놓이네요. 그런데 병이 아니라면, 약도 없겠네요? 다른 병원에 갔더니 못 고친다는 얘기를 아주 느리고 길게 하더니 약부터 먹어 보라더라고요.

김 박사 = 치료가 가능한 ‘거짓말 못하는 병’이 몇 가지 존재합니다. 우선, 강박적인 사람들 중에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러운 경우가 많지요. 빈틈이 없고 곧이곧대로 되지 않으면 불편한 성품이라, 만약 거짓말을 하게 되면 양심에 찔려서 불안해집니다. 분석적으로 볼 때 강박의 원인은 ‘과대초자아’에 있거든요.

주상숙 = 초자아는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과대초자아는 뭔가요?

김 박사 = 초자아는 프로이트의 성격이론에 나오는 인간 성격의 구성요소 중 하나예요. 이드(id)라 불리는 구조가 성욕이나 공격성 같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말한다면, 반대 극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초자아는 도덕성과 통제를 담당한다고 할 수 있죠. 자아는 현실에 근거해서 이드와 초자아가 충돌하는 것을 막고요. 그런데 아이가 성장하면서 과대초자아가 되면, 다시 말해 초자아가 자아나 이드보다 과도하게 지배적이 되면, 강박적인 성격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강박적인 사람들은 거짓말을 할라치면, 초자아가 양심과 도덕관을 발동시켜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죄책감을 느끼거나 불안해질 수 있는 거죠.

주상숙 = 저는 강박적인 성격은 아닌 거 같으니, 상관이 없을 것 같고요. 거짓말 못하는 다른 병이 또 있나요?

김 박사 = 충동 조절이 안 되는 경우에도 마음속 진심이 필터링 없이 튀어나올 수 있지요. 예를 들어, ADHD라는 병은 ‘주의집중력결여 과잉행동증’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주의집중이 안 되고 행동이 부산한 병입니다. 기저의 원인으로는 충동 조절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하면 바로 말로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성인 ADHD를 포함해 최근 많이 증가하는 병입니다. 그런데 꼭 거짓말을 못한다고는 할 수 없어요. 만약 무엇인가 목적이 생기면, 충동 조절이 안 되니 거짓말을 술술 쏟아내기도 하니까요.

솔직한 게 죄는 아니잖아요

“반복되는 거짓말은 인성도 바꿔 인격이 바뀐다면 치료 쉽지 않아”

주상숙 = 박사님, 술 취해서 하는 말이 진심이라고들 하잖아요. 맞는 얘긴가요?

김 박사 =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술을 마시면 뇌를 둘러싸고 있는 바깥쪽 조직인 대뇌피질이 마비됩니다. 대뇌피질은 하등동물에는 없거나 덜 발달해있는 부위죠. 이 부위가 이성과 억제의 역할을 하는데, 그것이 마비되니까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가 다 쏟아져 나오죠. 술 안 취했을 때는 듣도보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죠. 그래서 ‘아, 이게 진심인가보다’ 착각할 수 있어요. 진심은 본능만으로 구성될 수 없으니까요. 이성적인 면이 마비되기 전에 보았던 모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하지만, 결코 술에 취해 떠벌리는 이야기나 행동이 진심의 전부는 아닙니다.

주상숙 =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거짓말 못하는 병은 치료가 되나요?

김 박사 = 강박장애나 ADHD나 거짓말을 못하는 원인이 병적인 경우라면, 당연히 치료로 호전될 수 있어요. 사실은 거짓말을 자주 하는 병이 더 문제이긴 하죠. 예를 들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는 밥 먹듯이 거짓말을 할 수 있어요.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희생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후회나 죄책감이 없는 것이 특징이니까요.

주상숙 = 초자아가 형편없이 작겠군요.

김 박사 = 그렇다고 할 수 있어요. 허언증 환자도 여기에 속하겠죠.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거짓말을 해대는 사람들이죠. 정신의학적인 질병으로 따지자면, 뮌하우젠 증후군을 예로 들 수 있어요.

주상숙 = 뮌하우젠이라… 나만큼 유명한 사람 이름인가요?

김 박사 = 맞습니다. 뮌하우젠은 18세기 독일 관료였어요. 워낙 허풍쟁이라 스스로를 돋보이게 하려고 있지도 않은 일들을 마치 진짜처럼 떠벌렸다는군요. 허언증이 심했죠. 그런데 드물기는 하지만, 실제 임상에서 아프지도 않은데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는 병이 있어요. 정신의학의 영역에서는 인위성장애(factitious disorder)라고 부릅니다.

주상숙 = 군대를 안 가려고 거짓 병을 만드는 경우도 같은 케이스인가요?

김 박사 = 유사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합니다. 인위성장애는 의도적 목적이 불분명해요. 이차적으로 무의식적인 목적이 숨어 있기도 하지만요. 스스로 병이 있다고 믿고, 심지어 환자의 주장에 속아서 수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군대를 안 가려고 거짓 병을 만드는 것은 말 그대로 ‘꾀병’이죠. 인위성장애와는 달리 군복무 회피라는 확실한 목적이 있지요. 만약 수술을 통해 원인을 찾아보자고 권유한다면, 대부분 거절할걸요. 아시다시피 병역의무를 회피하려고 만드는 꾀병은 법적 처벌을 받게 되어 있고요.

주상숙 = 박사님, 정치를 하다보니까 좋든 싫든 거짓말쟁이가 되더란 말이죠. 일단 선거라는 것이 이기고 봐야 되는 거잖아요. 일단 당선되어야 제가 유권자와의 약속을 지킬 거 아닙니까. 그러니 사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거나, 확실히 거짓이라고 판명되지 않는다면, 일단 표를 얻기 위한 발언을 하게 되는 거죠. 그 상황에서는 적어도 진심이거든요. 당선 이후에 이런저런 사정으로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어버릴 수 있지만, 살다보면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김 박사 =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만, ‘약속을 못 지키니 거짓말이다’ 또는 ‘어쩔 수 없이 못 지킨 약속이니 거짓말은 아니다’라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죠. 그렇지만 ‘약속을 못 지켰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선명한 정치인의 의무 아닌가요.

주상숙 = 제가 하루아침에 ‘팩트폭격기’가 되면서 정치 인생 이대로 끝낼 거냐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요. 솔직한 게 죄는 아니잖아요. 하지만 정치판에서는 죄가 될 수 있겠더라고요.

김 박사 = 흥분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봅시다. 처음 거짓말을 할 때는 초자아의 꾸지람에 후회를 하고 반성도 합니다만, 반복되는 거짓말은 인성을 바꾸어 놓습니다. 양심의 가책에 대한 역치가 상승하죠. 웬만큼 큰 약속 위반이 아닌 한 전혀 거리끼는 느낌이 없을 겁니다. 책임지지 않는 약속 위반이 반복된다면, 느끼고 사고하고 판단하는 인격의 기능이 손상됩니다. 더구나 인격이 바뀌어 버리면, 안타깝게도 치료가 쉽지 않습니다.

거짓말 안 하고 살 수 있을까요

“완벽히 진실하게 사는 것 불가능 크든 작든 약속 했으면 책임져야”

주상숙 = 그럼 뭐가 나쁜가요? 그 치료 안 된 분들이 떵떵거리면서 잘만 살고 있는걸요.

김 박사 = 정말 거짓말을 못하시는군요. 후보님 캐치프레이즈가 ‘약속을 지키는 서민의 일꾼’이잖아요. 이참에 후보님의 탁월한 능력을 작정하고 발휘해보는 건 어떨까요? ‘거짓말은 1도 못하는, 가장 솔직한 정치인’이라고 내거는 겁니다.

주상숙 = 이거 애초 의도와는 아주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지만, 어쩐지 솔깃하네요. 그런데 정말 거짓말 안 하고 살 수 있을까요?

김 박사 = 모순이라고 또 역정 내실 테지만, 완벽히 진실하게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살다보면 상황회피를 위해서 또는 작은 이익을 위해서 거짓말을 하죠. 저 또한 거짓말을 하고 삽니다. 그러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거짓말은 절대 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작든 크든 약속은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고요. 개인적인 소망이 하나 있는데요, 제발 국민을 위한다는 말은 진심이었으면 합니다. 그 약속에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고요.

주상숙 = 아유, 그거야 (입을 손으로 막고 눈치를 보며) 잘 아시면서!

▶필자 김진세

경향신문

정신과 전문의 김진세 박사는 슬럼프 극복을 위해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길 위의 카운슬러’로 나섰던 천생 상담가다. 고려제일정신과의원 원장으로 20년 이상 진료실에서 상담을 하고, 정신 건강과 관련된 수백편의 글을 써왔다. 저서로 <심리학 초콜릿> <행복을 인터뷰하다> <태도의 힘> <길은 모두에게 다른 말을 건다> 등이 있다.


김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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