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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시선]알고보면 따뜻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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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를 끝내고 산책을 하던 길에 리드줄 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강아지 한 마리를 만났다. 커다란 눈망울이 인상적이기도 하고 좁은 골목이지만 차량이 꽤 오가는 길이라 걱정스럽기도 해서 우리는 모두 자연스럽게 강아지를 계속 쳐다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 발쯤 앞서 걷고 계신 분이 당연히 보호자인 줄 알았는데 우리의 우려 섞인 눈빛을 읽었는지 본인 강아지가 아니라고 손사래 치며 사라지셨다.

경향신문

그럼 저 강아지는 어쩌지? 일단 위험한 일은 막자 싶어 구조를 했는데 그다음부터가 막막했다. 전문지식이 없는 우리도 한눈에 알아볼 만큼 강아지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엉덩이에는 종양이 드러나 있었고 큰 피딱지 상처도 몸 곳곳에 있었다. 반면 최근에 미용을 받은 듯 털도 발톱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경계가 없는 것을 보니 사랑을 많이 받아본 노령견 같았다.

몇 가지 건강특징을 이야기하며 근처 반려동물 미용실에 물어봤지만 기록이 없다고 했다. 혹시 등록된 반려동물일까 싶어 동물병원에도 데려갔지만 칩이 없단다. 결국 우리는 가장 고전적인 방법을 택했다. 빨간 글씨로 ‘가족을 찾습니다’라고 쓰고 사진과 함께 몇 가지 특징을 적어 동네에 붙이기로 했다. 따끈따끈한 전단을 들고 골목의 가게 문을 두드리려는데 말 한마디 꺼내기가 몹시 조심스러웠다.

우리 사무실은 평소에 밥을 직접 해 먹는다. 가끔 분위기를 바꿔볼 때도 같은 건물 1층에 있는 커피숍에 들르는 정도가 전부이다. 그러니 가까운 동네 가게인데도 초면이 대부분이어서 대뜸 부탁부터 하려니 입을 떼기가 어려웠다. 특히나 코로나19 이후 손님의 발길이 뜸해진 한적한 가게 문을 열었다가 사장님의 기대 어린 눈빛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실망을 안겨드릴까봐 더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이런 내 걱정과 달리 모두들 강아지 가족 찾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주었다.

잘 보이도록 유리문 한가운데 붙이라고, 한 장만 붙이면 어떡하냐고, 여기가 바로 강아지들 영역표시하는 자리니 견주들 커뮤니티에 빨리 알려질 수 있을 거라고 애정 어린 의견들을 계속 보태주셨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이 전단 좀 보라고 해주시는 분도 있었다. 처음 만난 강아지의 가족 찾기에 하나둘씩 목소리와 힘을 보태고, 좋은 일 한다고 응원을 주고받으며 뭐랄까 잊고 있던 연결고리가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이렇게 가까운 이웃이란 걸 왜 깜박했을까.

날 때부터 쭉 길치였던 나는 종종 길을 잃었다. 쭈쭈바를 사먹겠다고 나섰다가 집을 못 찾고 있는 내게 다가와준 동네 어른들, 골목이 떠나가라 울기만 하는 나를 데리고 있어준 미장원 사장님의 고마웠던 마음이 다시 생각났다. 다행히 하루 만에 보호자와 연락이 닿아 전단을 뗄 겸 다시 찾아뵈었을 땐 정말 환한 얼굴로 함께 기뻐해주셨다. 가족을 다시 만나서 정말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나누며 이분들과 따뜻한 관계를 계속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가게 유리문 한가운데를 선뜻 내어주셨던 사장님네 카페에서 차를 마셔봐야지. 선뜻 공간을 내어주셔서 감사했다고, 마스크로 얼굴은 꽁꽁 싸맸을지언정 마음의 거리만큼은 부쩍 가까워져서 반갑다고 다시 한번 말씀드려야겠다.

김민지 |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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