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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세상읽기]새로운 상황에는 새로운 전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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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오늘인 2012년 4월11일, 김정은 위원장은 노동당 제1비서, 중앙군사위원장으로 취임하면서 권력의 전면에 나섰다.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1년 말 사망하면서 권력승계가 본격화된 것이다. 당시 국제정세는 매우 유동적인 시기였다. 한국과 미국, 중국 등 주요국의 리더십에 변화가 있었고 2011년부터는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과 리비아 카다피 대통령이 피살되는 등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민주화 시위가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강타하였다. 제2차 북핵위기는 9·19 공동성명이 있었음에도 신고와 검증 문제로 표류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미국의 대선과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악화, 한국의 정부교체 등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문제해결은 지연되고 있었다. 북한은 오바마 새 행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2009년 4월 핵협상의 결렬을 공표하고 제2차 핵실험을 단행하였다. 남북관계에서도 육로통행과 직통전화를 중단하고 남북합의의 전면적 무효화를 선포하면서 긴장을 고조시켰다.

경향신문

그러나 한·미 정부의 단호한 대응에 벼랑 끝전술이 통하지 않자 북한은 미국과 비밀협상을 진행하여 2·29 합의를 도출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지도자 승계 이후 체제생존이 절박한 시점에서 이 합의는 지켜질 수 없었고 북한은 본격적인 핵보유국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북한의 핵보유는 정당화될 수 없지만 돌이켜 보면 북한의 핵에 대한 집착은 북한 정권이 맞닥뜨린 위기상황과 일치한다. 소련이 해체될 조짐을 보이는 1980년대 중반 소련으로부터 핵기술을 들여왔다. 탈냉전의 소용돌이 속에 1990년대 초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제1차 북핵위기가 발생하였다. 제2차 북핵위기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반테러 및 불량국가들과의 전쟁을 선포한 시기에 불거졌다. 이후 2011년 ‘아랍의 봄’과 세습 교체기의 불안정성은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주었을 것이다. 2013년 핵·경제 병진노선은 그러한 일환에서 나온 것이다.

세습체제 구축 5년 만에 북한은 핵무력의 완성을 선포하고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면 핵을 포기하겠다고 공언하였다. 남북정상회담뿐 아니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은 완전한 핵포기의 의지를 드러냈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성명의 서문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안전보장을 제공하기로 약속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포기와 체제보장 간의 교환은 쉽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8년 전 오늘 그때 상황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북한은 핵을 내려놓을 여지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미국이 양보할 때까지 자력갱생과 정면돌파를 하겠다면서 여전히 벼랑 끝 전술을 펼치고 있다.

문제는 시간만 계속 흘러간다는 것이다. 시간의 경과는 또 다른 변수의 등장을 예고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지금 전 세계는 유례없는 전염병의 확산으로 신음하고 있다. 특히 초강대국 미국이 코로나19의 최대 피해국이 되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도, 미국의 대선 향방도 정해질 것이다. 북·미 협상 구도도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지금은 당장 전염병 방역에 집중하고 있지만 앞으로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정치, 경제, 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 코로나19의 후폭풍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예로부터 역병이 유행하면 민심이 흉흉했듯이 코로나19 사태에 지친 나라들은 당분간 자국중심주의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살길을 모색하는 국가들 간의 이합집산으로 세계 질서의 변화도 가속화될 것이다.

새로운 상황에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이후의 정세변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할 수 없으나 위기와 도전을 기회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코로나19를 모범적으로 극복하고 있는 우리는 북·미 협상이 표류하지 않도록 응집력을 모을 필요가 있다. 추후 미국이 다시 북핵 협상에 집중하도록 한·미 간에도 긴밀히 공조해 나가야 한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미사일 발사와 방사포, 박격포 포사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변 국가들과 어떻게 공조하고 협력해 나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고립과 자립갱생의 방식으로는 변화를 헤쳐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코로나19 이후에는 통미봉남이 아닌 통남통미의 정책변화가 필요하다. 남북이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분야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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