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0 (금)

[책과 삶]가난·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의 목소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가난 사파리

대런 맥가비 지음·김영선 옮김

돌베개 | 354쪽 | 1만6500원

경향신문

책은 2017년 영국 빈민가의 한 고층 아파트, 그렌펠타워에서 발생한 화재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곳 주민들의 목소리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언제나 무시됐고, 그것이 화재를 초래한 핵심적인 원인이 됐다. 비용 절감 명목으로 인화성 외장재와 단열 재료를 택한 것이 특히 그랬다. 화재가 부른 끔찍한 인명 손실은 무시받던 하층민들의 삶을 사람들의 관심 한복판으로 길어올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진열창 앞 안전한 거리에서 원주민을 잠시 둘러보는 사파리가 끝나고 나면 모두가 그에 대해 서서히 잊어버리고 만다.” 가난과 불평등을 피상적 배경으로 소비하는 ‘가난 사파리’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저자 대런 맥가비는 래퍼 로키로 알려진 스코틀랜드 작가이자 칼럼니스트, 활동가다. 어려서 정서 불안을 앓는 엄마로부터 학대와 방치를 당했다. 가난했다. 술과 마약에 빠져 살았다. 자선단체와 활동가들은 가난해서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전제에 기초해 ‘계몽’에 나섰다.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소거됐다. 그러나 맥가비는 언어적 재능이 있었고, 자신의 가난과 경험을 글과 말로 풀어낼 줄 알았다.

소거되지도 대상화되지도 않은 가난의 목소리가 여기 있다. 맥가비는 자신의 성장 경험뿐 아니라 아동 청소년 및 재소자 대상 랩 워크숍 등을 하며 만난 이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가난과 학대, 중독과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을 그린다. ‘죄와 벌’ ‘소리와 분노’ ‘이방인’ 등 오래된 명저들에서 따온 소제목들 밑으로 새롭고 낯선 말들이 튀어 오른다. 회고담이자 사회비평인, 형식조차 종잡을 수 없는 글들이 모였다. 2018년 조지 오웰의 뜻을 기려 ‘영국에서 가장 탁월한 정치적 글쓰기’에 수여하는 오웰상을 받았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 유튜브 구독▶ 경향 페이스북 구독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