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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박일호의 미술여행] 관람자에서 참여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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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도널드 저드 ‘무제’.


미니멀 아트는 예술가의 개인적 의도를 최소화한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 대표적 조각가 도널드 저드는 이 작품에서 똑같은 크기의 단순한 육면체들을 규칙적인 간격으로 벽면에 설치했다. 기하학적인 육면체가 규칙적으로 반복되고 있을 뿐 조각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식적 관계 구성을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일까? 예술의 특성을 조금이라고 갖고 있는 걸까? 일상적인 사물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많은 의문이 생길 수 있지만, 저드가 미술작품의 모든 의미를 부정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작품의 의미가 너무 예술가의 개인적 의도에 의해 지배받았던 점을 부정하려 했다. 작품의 의미는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 자체와 관람자 사이에 만들어진 공적 공간에서 나타나는 의미여야 한다는 뜻에서다. 작품 속에 작가의 개인적 의도에 의한 신비적이고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런 의미란 무엇일까. 저드를 포함한 미니멀 아티스트들은 조각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형태에 대한 체험을 들었다. 단순한 육면체를 규칙적인 간격으로 반복했지만 그것이 놓인 위치, 조명조건, 그리고 관람자가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이나 각도 등이 달라짐에 따라 형태의 다양한 변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미니멀 아트에 의해서 위치나 조명조건이 작품의 새로운 구성요소가 됐고, 관람자의 참여가 주목받게 됐다. 지금까지 작품 감상에서 관람자가 수동적인 입장에 머물렀다면, 능동적으로 참여해서 단순한 작품으로부터 다양한 형태 변화를 체험한다는 점이 부각됐다. 이 점이 작가 중심의 작품에서 작가와 관람자의 상호작용에 의한 작품으로 향하는 미술 경향들로 이어졌다.

다음 주 수요일은 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우리가 나랏일의 관람자가 아닌 참여자가 되는 날이다. 예술에서 참여가 삶의 풍요로움을 가져온다면 선거에서 참여는 우리 삶과 직접 관련되는 변화를 만드는 일이다. 앞으로 새로운 4년이 우리에게 달렸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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