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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장석주의인문정원] 정치에서 상상력을 허(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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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보이’ 활개… 상상력 빈곤 불러 / 새 정치 위해선 청년자리 마련을

코앞에 닥친 4·15총선은 가장 기이한 선거가 될 전망이다. 선거 이슈도 없고, 마음을 끌 만한 후보자도 마땅치 않다는 게 중론이다. 선거가 대중 관심사에서 멀어진 탓에 투표율도 낮아질 테다. 왜 이런 사태가 빚어졌는가? 이번 총선이 차악(次惡)을 가리는 선거로 전락한 탓이다. 민의를 전달할 좋은 후보를 뽑는 선거가 아니라 나쁜 후보자를 걸러내고 덜 나쁜 후보자를 고르는 선거가 된 탓이다.

야당의 선대위원장은 ‘못살겠다, 갈아보자’를 총선 슬로건으로 제안했다. 60년 전 정치구호를 오늘의 정치 슬로건으로 소환한 것은 상상력 빈곤이 낳은 참담한 결과물이다. 빈곤한 상상력은 정치의식의 퇴행과 함께 낡은 관습에 기대는 행동을 낳고, 혁신 없이 구태를 재연하는 정치의 당위성이 될 테다. 야당 처지가 부지깽이의 힘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니 올드보이의 귀환을 두고 시비를 따지지는 않겠지만 ‘싱크탱크’라는 그이의 상상력 빈곤은 곧 현실 인식의 나태함, 혹은 속화된 인지의 바닥을 드러낸다. 이것이 한국 정치의 수준이고 민낯이다.

세계일보

장석주 시인·인문학 저술가


상상력이란 복잡계를 꿰뚫고 나오는 빛, 인과적·인습적 사유를 깨고 즉물적 세계 저 너머를 보고, 먼 데 있는 것을 가까이로 가져오는 능력이다. 상상력은 추상과 관념에 대한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것, 직관과 통찰로 나아가는 힘이다. 오지 않은 ‘내일’이라는 추상을 실재로 인지하는 것도 상상력의 힘이다. 인류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위대한 신과 태초 창조의 이야기를 만들고, 부족 신화를 바탕으로 종교와 국가라는 공동체를 건설했다. 농업혁명과 과학의 혁명도 상상력이 일군 혁명이었다. 인류의 상상력은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의 기반일 뿐만 아니라 문명 건설의 토대가 되었다.

인간은 상상에 기대어 ‘상상의 질서’를 빚는다. 이 상상의 질서가 우리 욕망의 형태를 규정한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간의 상상력이 유례없이 거대한 협력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간 동력이라고 말한다. 수렵이나 채집활동 시대에는 근육의 힘만으로 생존이 가능했지만 인지혁명 이후 부족정신, 국가, 유한회사, 인권 같은 추상에 대한 사유와 전달 능력이 필요해졌다. 지금은 뇌의 시대다. 뇌에서 발현되는 상상과 창의성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상상과 창의성을 기반으로 농업혁명과 과학혁명이 나오고, 인간은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군’에서 비범한 호모사피엔스로 우뚝 도약했다.

상상력은 동물과 인간을 가르는 중요한 경계다. 상상력은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에도 두루 필요하다. 현실은 정치라는 집단적 상상력이 작동하는 공간이다. 정치권력은 유동성의 조정, 욕망과 힘의 분배, 그 조정과 분배의 구조를 만드는데, 정치집단의 상상력이 진부할수록 현실은 퇴행하고 욕망은 진부해진다. 욕망의 진부함 속에서 우리 삶은 불가피하게 병들고 찌들어간다. 한국 정치의 수사학과 규범들이 당리당략이나 진영논리를 넘어서서 창의적 상상력이 작동하는 걸 본 적이 드물다. 상상력이 진부할수록 정치 슬로건의 언어는 퇴행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지금은 한국 정치에 상상력이 필요할 때다. 정치집단이 그토록 ‘청년’을 요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청년’은 낡은 정치의 관행을 바꾸는 상상력과 창의성을 갖춘 인재다. 하건만 총선에서 청년은 사라지고 올드보이만 활개치는 것은 한국 정치의 감출 수 없는 퇴행 증거다. 우리 정치가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지탄을 받는 이유도 정치집단이 진부한 상상력과 낡은 관행에 갇힌 채 비생산적인 진영 싸움에만 몰입한 탓이다. 새 정치를 갈망하는가? 그렇다면 정치에서 청년의 자리를 마련하고 그들이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허(許)하라!

장석주 시인·인문학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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