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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설왕설래] 가게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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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일본 전국시대의 지방 영주 다케다 신겐은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패권을 다툰 맹장이었다. 그는 1573년 병사하기 직전 후계자인 아들 가쓰요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적이 함부로 쳐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가게무샤(그림자 무사)였던 동생 노부카도에게 3년간 자기 행세를 하게 했다. 자신의 죽음을 첩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미리 서명해둔 백지를 3년치나 준비해 놨다. 무슨 수를 써서든 가문의 권력을 지키려는 모습이 처량하기만 하다.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신겐의 와병설을 믿었던 도쿠가와가 결국 오판했다는 걸 깨닫는다. 가게무샤의 실체가 탄로나고 다케다 진영은 급속히 무너진다.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다케다 사후 동생이 좀도둑을 형의 가게무샤로 내세워 적을 혼란에 빠뜨리는 내용으로 각색한 영화 ‘가게무샤’를 만들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가게무샤 전술은 동서양 역사에서 심심찮게 발견된다. 2차 세계대전 중 영국 육군은 연합군의 프랑스 상륙작전 위치를 알아내려는 독일을 속이기 위해 몽고메리 원수 역의 가게무샤를 투입했다. 그는 기갑부대 기장이 붙은 흑색 베레모를 쓰고 몽고메리가 작전을 수행하는 듯이 행세했다. 독일 정보망은 속아넘어갔다.

중국 천하를 놓고 항우와 다툰 유방도 가게무샤를 내세워 위기를 모면했다. 성에 갇혀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맹장 기신이 유방인 것처럼 꾸며 항복하는 틈을 타 달아났다. 주군을 위해 몸을 던진 가게무샤 덕분에 훗날 유방은 한 고조가 될 수 있었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이 회담 준비 차원에서 진행한 모의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가게무샤를 했던 김달술 전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상임연구위원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퇴직할 때까지 북한 최고지도자 연구에 매진하면서 북한 사람처럼 살았다. 생전에 “아침에 노동신문 읽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끊임없이 북한 지도자 빙의훈련을 했다”고 회고했다. 북한 지도자와 닮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것은 그들과의 처절한 투쟁이기도 했다. 남북통일을 위한 애국적인 삶이었다.

김환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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