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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현미경] 격리된 김에… 전세계 '코로나 베이비붐'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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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붙어있으면 출산율 오를까]

40억 인구가 자택격리 상태… 콘돔·임신테스트기 수요 급증

'눈보라 아기' '허리케인 아기' 등 폭설·태풍 땐 아이 많이 가져

전염병 돌 땐 출산율 떨어지지만 사망자 늘어나면 임신 늘 수도

"이왕 자택 격리에 들어갔으니 국민 여러분은 이 기회를 활용해 국가적 저(低)출산 위기를 타파하는 데도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TV에 나와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자택 대피령을 내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집에서 부부나 커플이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면 출산율도 늘지 않겠냐는 기대를 내비친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인 40억명이 자택 대피에 돌입하면서, 올 연말부터 '코로나 베이비붐'이 일 것이란 기대와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소셜미디어에선 '9개월 뒤 아기가 많이 태어날 것'이란 의미로 #babyboom이나 '2033년 청소년이 될 아이들은 격리로 탄생한 10대'란 뜻의 신조어 #quaranteen(격리) 같은 해시태그(검색을 쉽게 하기 위해 붙이는 기호)가 퍼지고 있다.

조선일보

/일러스트=양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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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통신은 베이비붐의 전조(前兆) 현상으로 피임 기구인 콘돔 수요의 폭증을 꼽았다. 인도에선 자택 대피령 직후 콘돔 판매가 35% 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최근 콘돔과 임신테스트기가 휴지나 손소독제만큼 귀해졌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커플 간 성관계가 활발해진 방증이라는 것이다. 미 최대 콘돔 제조사인 트로잔은 9일 "의약품·식품에 밀려 콘돔 배송이 지연돼 소비자들이 항의하고 있다"며 온라인 유통업체들에 "콘돔을 배송 우선순위인 생필품으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정말 코로나 베이비붐은 현실화될까. 지금으로선 부정적 전망이 더 우세하다. 영국 시사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태풍·폭설·정전(停電)처럼 단기적으로 집에 갇히는 재해는 일시적 출산율 증가로 이어지곤 했다. 사람들이 육체적 친밀감에서 위안을 느끼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2010년 2월 동부 대폭설 뒤 11월 '눈보라 아기'들이, 2013년 허리케인 샌디 이후 '허리케인 아기'들이 대거 태어난 것이 대표적이다. 1995년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나 2001년 9·11 테러 이후에도 사람들이 충격과 불안 속에서 외부 활동을 자제한 시기에 출산붐이 일었다.

반면 쓰나미나 지진, 폭염과 기아, 대규모 전염병 등 장기간 생계에 타격이 큰 재해·재앙은 오히려 출산율을 떨어뜨렸다. 경제·사회적 여건 악화로 스트레스가 길어지면 남녀 모두 생식기능이 저하된다는 연구도 있다. 2002년 사스(SARS)에 강타당한 홍콩이나 2015년 지카 바이러스가 퍼진 브라질에선 발병 9개월 후 출산율이 급감했다가, 2년쯤 지나서 출산율이 회복됐다.

이 때문에 코로나도 당장은 출산율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 전망이다. 뉴햄프셔대의 인구학 교수 케네스 존슨은 8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코로나로 미국 실업자가 1000만명을 돌파한 상황에서 '시간 많으니 애나 갖자'고 생각할 사람이 있겠느냐"고 했다. 존스홉킨스대의 앨리슨 게밀 교수도 "신종 전염병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몰라 커플들이 임신을 꺼릴 것"이라고 했다. CNN도 4일 "자택 대피가 너무 길어지면서 세계적으로 가정 폭력과 이혼이 증가할 정도"라며 오히려 '코로나 저출산'을 우려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코로나가 엄청난 사망자를 낳으며 전쟁에 준하는 상황이 될 경우엔 전후(戰後) 베이비붐에 가까운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미 가족학연구회(IFS)는 최근 논문에서 전쟁·재해로 친지와 이웃의 죽음을 겪은 사람이 많을수록 종족 보존 본능을 자극해 출산을 많이 한다는 이론을 제시하며 "코로나 사태 이후 1~4년간 출산율이 최고 40%까지 늘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인은 2차 세계대전에서 40만여명이 사망했다. 9일 현재 미국의 코로나 감염자 수는 46만명, 사망자는 1만6000명을 넘어섰다.





[정시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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