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난 시각장애인… 도움 필요한 소수자 위해 변호사 됐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여성·아동 피해자 무료로 도와

조선일보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는 “소수자를 보호하는 법 제도가 개선돼야 사회 인식이 따라온다”는 생각으로 관련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김예원 변호사 제공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새로운 이슈가 아닙니다. 과거부터 있었던 일을 사회가 '새로운 일'이라고 인식하며 사태를 방관하니까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여성들을 협박해 촬영한 성 착취, 성폭행 영상을 유포한 이른바 'n번방' 사건에 대해 장애인권법센터의 김예원(38·사법연수원 41기)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김 변호사는 "여성의 약점을 이용해 성폭행·성매매를 강요하는 범죄는 가출 청소년 성매매 알선 등의 형태로 과거부터 반복돼 온 짓"이라고 했다.

그는 장애인·여성·아동 인권침해 사건의 피해자들을 무료로 변호하는 공익 변호사다. 2012년 사법연수원 수료 후 대형 법무법인의 공익재단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해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를 거쳐 2017년 스스로 장애인권법센터를 만들었다. "사건의 경중이나 승소 가능성, 지역을 따지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시각장애인이다. 태어날 때 겸자분만(집게로 태아를 잡아당기는 방법) 과정에서 집게가 오른쪽 눈을 찔러 실명했다. 의안(義眼)에 놀림을 받으면서도 장애의 이유조차 모르고 자라다 중학생이 돼서야 의료사고라는 것을 알았다.

"누구에게 따져야 할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저와 같은 억울함을 해소하는 데는 법이 가장 정확한 도구라는 생각에 법조인을 꿈꾸게 됐습니다."

그러나 그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소수자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변호사를 선임할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누구나 이 실태를 보면 나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그에게 제보·의뢰가 들어오는 사건뿐만 아니라 직접 언론 보도 등을 보고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가기도 한다. 장애인들을 감금해 폭력을 행사하며 후원금을 갈취한 '원주 사랑의 집' '홍천 연못의 집' 사건 등을 맡았다. 2017년엔 폭행당해 한쪽 눈을 실명한 아동을 변호하는 법정에서 자신의 의안을 빼 보이며 가해자에게 법정 최고형을 내려주길 호소한 일도 있었다.

김 변호사는 소수자 인권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이 여전히 뒤처져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그에게 한 지적장애인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거소투표 신청을 거절당했다는 호소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는 "이 사회가 아직도 장애인을 투표 능력도 없는 무능한 사람으로 본다는 증거"라고 했다. "성 착취 사건이나 강제적 성매매 사건에서도 여성을 성범죄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혹은 가담자로 보는 낡은 성 관념도 문제"라고 했다. "대단한 소명 의식을 가지고 하는 일이 아니지만, 제 활동이 사회적 울림으로 점점 커지길 바랍니다."





[광주광역시=김영준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