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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1초간의 짧은 울음 후 양동이에서 숨진 아기…법원 "낙태 아닌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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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안채원 기자] [편집자주] 법원에서는 하루 수십 건의 판결 선고가 이뤄집니다.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담은 판결들도 많습니다. 따끈따끈한 이번 주 판결 중 가장 의미 있었던 판결 내용을 법원 출입 안기자가 자세히 설명해드립니다. 현장에서만 들을 수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와 법정 안 분위기까지 생생하게 전달 드리겠습니다.

[이주의 판결] 법원, 산부인과 의사에 3년6개월 실형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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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철 디자인기자 /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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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이지혜 디자인 기자




미성년자였던 산모 A씨와 그의 모친은 뱃속 태아를 지우기로 마음먹고 수술받을 곳을 찾아 헤맸다. 그러던 중 인터넷에서 한 산부인과의 낙태 수술 광고를 발견했고, 해당 병원의 의사 윤모씨에게 연락했다. 당시 태아는 이미 34주가량 성장해 몸무게가 약 2.1kg에 달하는 상태였다. 윤씨는 2800만원을 받고 수술 부탁을 받아들였다.

윤씨는 A씨의 복부를 절개한 뒤 자궁을 절개하고 태아를 모체 밖으로 꺼내는 방법을 택했다. 이미 뱃속에서의 성장을 대부분 마친 상태였던 34주차 태아는 억지로 세상에 나온 직후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을 들은 윤씨는 아기 양손과 발을 잡고 미리 준비해 둔 4리터짜리 플라스틱 양동이에 담긴 물속에 아기의 온몸을 담갔다. 아기는 숨을 쉬지 못했다. 그대로 방치한 결과 아기는 끝내 숨을 거뒀다. 태어난 지 약 1시간도 안 된 때였다.

윤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체를 해결해야 했다. 윤씨는 사체를 양동이에서 꺼내 검정 비닐봉지에 담았다. 이후 수술실 내 냉장고에 넣어 냉동시킨 다음, 일주일 뒤쯤 마치 정상적인 의료폐기물인 것처럼 폐기물 수거 업체에 인계했다. 뿐만 아니라 경찰 수사가 시작됐단 이야기를 듣곤 문제가 될만한 진료기록부 등을 허위로 작성했다.

결국 윤씨는 재판에 넘겨졌다.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1부(부장판사 김선희)는 그에게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윤씨의 행위가 '고의적인 살인'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낙태시술 중 배출된 태아는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고, 윤씨가 양동이에 집어넣기 전 이미 아기는 사망한 상태였기 때문에 살인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던 윤씨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윤씨가 살아 있는 상태로 나온 출산 직후의 아기를 물이 담긴 양동이에 집어넣어 살해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며 "최소한의 의료행위조차 하지 않은 채 양동이에 넣고 상당 기간 방치한 점에 비춰 살인의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산부인과 의사들은 낙태 수술 전 산모 A씨와 태아의 상태가 모두 정상소견이었고, 통상 임신 32~34주차 태아의 생존율은 67%에 육박한다고 답을 했다.

윤씨와 함께 낙태 수술에 참여했던 마취의사는 "아기가 1~2초 정도 약한 소리로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간호조무사도 "보통 양동이에 물을 절반 정도 받아 놓는 목적은 살아서 배출된 아기를 익사시키기 위함이고, 사건 당일 윤씨가 살아서 배출된 아기를 양동이에 넣는 걸 봤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임신 주수가 34주가량 돼 제왕절개 수술을 할 경우 태아가 살아 나올 것을 예견했음에도 낙태를 감행한 결과 실제 수술 중 태아가 산 채로 배출됐는데, 아무런 진료행위를 하지 않은 채 곧바로 물이 담긴 양동이에 아기를 집어넣어 사망케 한 범행은 비난 정도가 크다"며 "비록 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미숙아라도 그 생명은 존엄하고 고귀한 것으로서 경시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다만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도 있다는 점을 판결문에 명시했다. 재판부는 "헌재는 지난해 4월 임신한 여성의 자기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들을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며 "하지만 이 사건 낙태는 헌재 결정에서 정한 결정 가능 기간인 22주를 훨씬 지나 행해져 형사처벌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산모가 미성년자인 데다가 그의 모친이 산모가 강간을 당해 한 임신이라고 주장하며 낙태를 요구했던 점은 윤씨에게 유리한 사정"이라면서도 "윤씨가 이 사건과 같이 22주를 넘은 태아를 낙태한 적이 여러 차례 있다고 시인한 점 등은 불리한 사정"이라며 실형을 선고했다.

안채원 기자 chae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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