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0 (월)

"밀고로 돈 버는 한국은 개인의 자유 최악의 나라" 佛변호사 기고 파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국은 개인의 자유에 있어서 최악의 국가다. 디지털 감시 사회를 만든 나라이고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감시와 고발이 많은 나라다. 타인을 밀고해 돈벌이를 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은 개인의 자유라는 걸 오래 전에 포기한 나라다.” 프랑스 유력 신문이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과 관련해 한국을 과도한 수위로 비판한 프랑스 변호사의 기고문을 보도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이 대응에 나섰다.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Les Echos)는 지난 6일 비르지니 프라델(Pradel)이라는 변호사가 쓴 ‘코로나 바이러스와 동선 추적: 개인의 자유를 희생시키지 말자’는 글을 내보냈다. 레제코는 한국 내 인지도는 낮지만 112년 역사를 가진 프랑스어권 최대 경제지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에 이어 유럽의 경제지로는 독일의 한델스블라트와 함께 영향력 2위를 다툰다. 대주주가 세계 최대 명품 기업 LVMH(루이뷔통모에헤네시그룹)다.

조선일보

비르지니 프라델 변호사/프라델 변호사 페이스북


요즘 프랑스 정부는 스마트폰으로 코로나 감염자를 추적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고, 프랑스 사회는 이와 관련해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프라델 변호사는 스마트폰 추적에 반대하는 취지로 기고문을 작성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명분으로 한국, 대만 등을 따라 감시 사회를 만들면 안되고 자유를 제약하면 안된다는 논지를 펼쳤다.

프라델 변호사는 “대만과 한국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맞서 어떤 국가들보다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사생활을 침해하는 감시 체계를 만든 덕분이기 때문에 이런 방식을 따라해서는 안된다는 요지의 주장을 폈다. 프라델 변호사는 “한국은 극도의 감시 문화를 갖고 있는 나라”라며 “대만과 한국이 위치 추적 수단을 마련한 것은 불행한 결과이고,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인들이 결코 이런 상황을 겪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과 대만은 개인의 자유 존중에 있어서 좋은 모델이 되는 나라가 아닐뿐 아니라 오히려 (개인의 자유 보장에 있어서) 최악의 국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프라델 변호사는 이어 한국만 집중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중국이 디지털 감시체계를 만들어 국민들을 억압하고 있고 한국도 똑같이 하고 있다”고 했다. 프라델 변호사는 “한국은 모든 종류의 감시와 밀고에 있어서 (중국 다음의) 세계 두번째 국가”라며 “수천명의 한국인들이 스토킹하고 밀고하는 기술을 전문적인 학교에서 배운 뒤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신고해 돈벌이를 한다”고 했다. 그는 예시로 “한국인들은 길거리에서 담배 꽁초를 버리는 것과 다른 사람들의 불륜을 신고해 돈을 번다”고 했다.

조선일보

프라델 변호사는 방송에 자주 출연하는 스타 변호사다./프라델 변호사 페이스북


프라델 변호사는 “(중국·대만·한국 등의) 밀고와 극도의 감시 문화는 우리 프랑스의 실정과는 전혀 다르다”며 “이런 나라들은 오래전에 개인의 자유라는 것을 포기한 나라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프라델은 “물론 개인의 자유라는 것이 존재했더라면 말이다”라고 했다. 애초부터 한국 등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국가라는 식으로 비아냥거린 것이다. 프라델 변호사는 “개인의 자유는 프랑스의 아름다운 유산이지만 통행의 자유, 표현의 자유, 기업의 자유 등 프랑스인의 자유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탈세를 방지하거나 코로나를 막는다는 식으로 정부는 프랑스인들이 싸워서 얻어낸 마지막 자랑인 자유를 희생시키고 있다”고 했다.

프라델 변호사는 조세 전문 변호사다. 2017년 보방(Vauban)조세경제연구소라는 민간 단체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방송에 자주 출연하는 스타 변호사다. 파리1대학 법학과를 나와 2013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파리9대학서 세법을 전공해 석사를 땄고, 런던 킹스칼리지에서도 국제조세로 법학석사(LLM)를 받았다.

조선일보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 로고/레제코


프라델 변호사가 프랑스식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기 위해 한국을 비방하는 수위가 지나쳤다는 지적이 나오자 주프랑스 한국대사관도 대응에 나섰다. 대사관은 전해웅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장 명의로 반박하는 기고문을 레제코에 보냈다. 일부 교민들은 프라델 변호사에게 항의성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파리에 사는 교민 A씨는 “사망자가 1만명 넘은 나라에서 사망자 200명 나온 나라를 얕잡아 보고 있어 화가 나기 보다는 실소가 나온다”고 했다. 프랑스한인회 관계자는 “이동 금지령으로 발이 묶인 프랑스와 이동 금지령 없는 한국 중 어디가 더 개인의 자유가 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일부 유학생들은 “프라델 변호사도 문제지만 허위 비방으로 가득한 글을 거르지 않고 게재한 레제코에 대해 대사관 차원에서 강력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조선일보

프라델 변호사의 페이스북 배경화면.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돼 있다./프라델 변호사 홈페이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프라델 변호사 외에도 프랑스 지식인 중에는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한 한국의 휴대전화 추적에 대해 인권에 반하는 조치라는 인식을 가진 이들이 제법 있다. 프랑스 정부의 과학자문위원회 위원인 전염병 학자 드니 말비는 “한국의 시스템은 극단적으로 사생활을 침해하는 방식이다. 유럽에서는 이런 방식을 허용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이런 시각에 대해 기본적으로 가치관의 차이지만, 유럽 특유의 우월주의가 표출된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도 워낙 인명 피해가 커지자 최근에는 휴대전화를 활용한 위치 추적을 서둘러 도입하자는 의견이 점점 더 많이 나오고 있다. 개인의 자유가 중요하며 감시 사회가 곤란하다는 내용의 프라델 변호사의 기고문이 나온 이튿날 레제코는 정반대 의견을 담은 기고문을 보도했다. 뱅상 테라드라는 프랑스 지방행정학교 학생이 ‘코로나를 제압하기 위해 우리의 자유를 일부 희생하자’는 제목으로 쓴 글이다. 테라드는 “사생활 침해 논란은 정보를 익명화시켜서 줄일 수 있다”며 “인권을 생각하다가 수많은 생명이 사라지는 현실을 망각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최신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고 했다.

조선일보

르피가로의 도쿄 특파원인 레지 아르노./르피가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간 르피가로의 레지 아르노 도쿄 특파원은 좀 더 직설적으로 프랑스가 겸손한 태도로 각성할 것을 촉구했다. 아르노 특파원은 “한국을 비롯한 동북 아시아 국가들의 방역 성공을 프랑스도 좀 더 겸손하게 바라봐야 한다”며 “한국의 대처 방식에 대한 프랑스 정책 결정권자들의 오만함은 참을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10일까지 프랑스에서는 12만4869명의 감염자가 확인됐고, 그중 사망자는 1만3197명이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