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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배송료만 3만원…‘배보다 배꼽이 더 큰’ 해외교민 마스크 우편료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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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다달이 마스크 8장 택배 가능/ 마스크 구입비 보다 갑절 비싼 배송료/ 빡빡한 규제에 불만 잇따라…‘탁상행정’ 지적도

세계일보

지난 6일 서울 시내의 모 약국에서 한 시민이 공적마스크를 구매하고 있다. 연합뉴스


“1만2000원짜리 마스크 8장을 보내려고 배송료 3만원을 씁니다.”

대학생 아들을 2년 전 러시아로 보낸 김모(52)씨는 요즘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간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보건용 마스크가 모자라 아들이 면 마스크 두 개를 겹쳐 쓴다는 이야기를 들어서다. 김씨는 “내가 안 쓰고 모은 마스크를 자식에게 보내주겠다고 하는데 그게 불가능하다”며 “내 공적 마스크라도 아들에게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하소연했다.

코로나19에 따른 마스크 품귀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빚어지면서 해외에 가족을 둔 국민의 걱정이 크다. 어렵사리 정부가 매달 8장의 마스크 해외 반출을 허용했지만 구입비보다 배송료가 더 드는 상황이 빚어져서다. “수량을 늘릴 수 없다면 내 공적 마스크라도 보내게 해 달라”는 목소리가 나오게 된 이유도 같은 배경이다. 여기에 빡빡한 정부 규제도 한몫했다.

정부는 지난달 24일부터 보건용 마스크를 우체국 국제 특별수송(EMS)을 통해 해외교민에게 보낼 수 있도록 허용했다. 수량은 개인이 구매하는 공적마스크 수량이 한 주당 2장인 점을 감안해 다달이 8장으로 정했다. 마스크를 보내는 가족 관계도 제한을 뒀다. 부모와 조부모, 자녀, 배우자만 가능하고 9일부터는 사위, 며느리, 형제자매를 추가했다.

여기에 보내는 절차 또한 깐깐하다. 먼저 인터넷 홈페이지 또는 모바일을 통해 EMS 사전 접수 후 확인서를 출력해 우체국을 찾아야 한다. 신분증과 가족관계증명서 등도 갖춰야 한다. 배송은 오직 보건용 마스크 8장만 가능하다. 최대 중량은 250g이다. 다른 물건을 더 넣을 수 없다. 배송료 역시 만만찮다. 적게는 1만2500원에서 많게는 3만500원까지 든다. 그러나 이마저도 보낼 수 없는 나라가 있다. 지난 3일을 기준으로 일본과 미국 하와이, 터키, 네덜란드 등은 접수 자체가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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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대한항공 수출화물 터미널에서 수출화물이 비행기에 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 같은 정부지침에 일부는 대책과 현장이 괴리된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했다. 배은주(42)씨는 “EMS 배송료 3만원이면 공적 마스크 20개를 구입할 수 있는 돈이다”며 “반출제한을 2~3달에 한 번으로 둬 물량을 한꺼번에 모아 보내는 방법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는 보건용 마스크가 아닌 면 마스크나 교체형 마스크 필터 반출에는 수량 제한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이 또한 허점이 있다. 보건용 마스크는 따로 보내야 해 면 마스크를 함께 배송하려면 갑절의 비용이 드는 것이다. 미국에 남편을 둔 박모(34)씨는 “값비싼 마스크 배송료가 매달 이중으로 나간다”며 “8장의 마스크 이외에 다른 물건을 함께 채워 보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여러 명의 가족이 해외에 거주해도 머릿수에 따라 각각 배송료를 내는 점도 문제로 지목돼 왔다. 그러자 관세청은 지난 1일부터 해외에 마스크를 보낼 때 묶음 발송을 허용키로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완벽한 대안은 아니다. 같은 집에 거주하는 가족만 수혜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같은 나라여도 지역이 다를 경우 여전히 배송료를 따로 지불해야 한다.

정부는 부득이하게 현재의 규제를 풀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내 마스크 수량이 부족한 데다 우편물을 일일이 뜯어볼 인력이 모자란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부처 관계자는 “우편물 접수과정에서 불필요한 민원 마찰을 최소화하고 개장검사 없이 신속한 우편물 발송을 위해 수량과 중량을 제한한 것”이라며 “마스크 수량을 늘리거나 다른 우편물을 함께 보낼 계획은 없는 상태다”고 했다.

배소영 기자 sos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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