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8 (금)

“취지 좋지만 처벌수위 높아”… 불안한 운전자 스쿨존 우회 [이슈 속으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민식이법’ 시행 2주일 / 30km 규정 지키지 않고 어린이 상해 땐 / 징역 1∼15년 또는 최대 3000만원 벌금형 / “위험 미리 차단”… 우회 앱 다운로드 6배 ↑ / 직접 우회하니 거리 3배·시간 2배 더 걸려 / “가벼운 사고도 운전자만 형량 과도 불합리” / 민식이법 개정 요구 국민청원 20만명 넘어 / 경찰청, 관련 사건·사고 직접 챙기기로 / 전문가 “과잉 입법 여부 좀 더 지켜봐야”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내 교통사고 가해자 처벌을 강화한 이른바 ‘민식이법’ 시행 후 일부 운전자 사이에서 스쿨존을 아예 우회해 다니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상대적으로 경미한 보행자 사고도 최소 500만원의 벌금을 물 수 있는 데다 갑자기 아이가 튀어나오는 경우,즉 보행자 과실이 큰 사안에서조차 처벌을 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운전자들 입장에선 ‘혹시 모를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자’는 심리가 발동한 셈이다. 이들은 출발 전 인터넷으로 스쿨존 위치를 확인하거나 스쿨존을 우회하는 내비게이션 앱을 이용하는 방법을 쓰는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 실제 스쿨존 우회 앱 ‘아틀란’은 민식이법 시행 이후 다운로드 수가 전주 대비 6배가량 증가했다. 다른 내비게이션 업체들도 관련 문의가 잇따르자 ‘스쿨존’ 우회 기능 도입 계획을 속속 발표하고 나섰다.

세계일보

◆스쿨존 우회 앱 써보니… “완벽한 우회는 힘들어”

지난 8일 취재진이 ‘아틀란’을 이용해 서울 종로구 ‘사직동 주민센터’에서 서대문구에 위치한 지하철 3호선 ‘홍제역’까지 스쿨존을 우회했을 때와 최적 경로를 이용했을 때의 차이를 분석한 결과 거리는 약 3배, 시간은 2배가량 늘었다. 최적 경로로 이동할 때 두 지역 사이 거리는 3.2㎞로 10분가량이 소요됐으나, 스쿨존을 우회한 경로로는 9.5㎞ 거리에 시간도 17분이나 걸렸다.

독립문에서 무악재역 방향으로 곧장 가는 길도 있지만 인근에 대형 아파트단지와 함께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등이 위치해 있다 보니 내비게이션은 이를 ‘스쿨존 밀집지역’으로 인식해 우회경로를 안내했다. 결국 차량이 많은 고가도로로 진입, 내부순환로를 통과함으로써 스쿨존을 피해갔다.

세계일보

서울 종로구 사직동 주민센터에서 서대문구 홍제역까지 최적경로(왼쪽)와 스쿨존 우회경로의 거리·소요시간 비교. 내비게이션 아틀란 캡처






스쿨존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정문에서 300m(필요한 경우 500m) 이내 구간에 지정된다. 우회 내비게이션을 켜고 시내를 운행하니 아파트단지 인근에 들어설 때마다 스쿨존 경고가 등장했다. 대부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가 들어서 있기 때문에 스쿨존을 완벽하게 피해 다니기란 사실상 어려웠다. 집에서 나서는 순간 곧장 스쿨존과 맞닥뜨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 때문에 내비게이션 업체들은 스쿨존을 우회하는 기능을 도입할 때 스쿨존 지역을 ‘완벽하게’ 피하기보다는 ‘최대한’ 피하는 쪽으로 경로를 구성하고 있었다.

‘아틀란’ 개발사 맵퍼스 관계자는 “스쿨존 구간에서 운행을 시작하거나 꼭 거쳐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최대한 피해서 너무 돌지 않게 경로를 잡는 알고리즘을 구성하고 있다”며 “스쿨존 구간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청에서 공공 데이터를 받거나 실차 평가를 통해 업데이트를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T맵’을 운영하는 SK텔레콤 관계자도 “스쿨존을 계속 우회하면 사용자들의 불편함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실차 평가나 궤적 분석을 통해 최대한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연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카카오내비’를 운영하는 카카오 모빌리티 관계자 역시 “이용자의 이동시간, 동선에 대한 고려와 함께 선호도 등 빅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가장 효과적인 방식을 결정하려고 한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카카오내비’와 ‘T맵’은 조만간 스쿨존 우회 기능을 추가할 예정이다.

운전자들의 불안감을 반영해 내비게이션에서 스쿨존을 알리는 모습도 바뀌고 있다. 전에는 “전방에 어린이 보호구역입니다”라는 음성메시지에 그쳤으나 요즘 ‘T맵’은 안내에 어린이 목소리를 넣었다. 운전자에게 좀 더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다. ‘아틀란’은 스쿨존에 들어서면 제한속도인 30㎞를 넘어설 때 과속 단속 때처럼 경고음과 함께 팝업창이 등장하도록 했다.

세계일보

지난달 24일 경기 수원시 곡정초등학교 앞 스쿨존에서 경찰이 교통법규 위반 차량 계도단속을 하고 있다. 수원=뉴시스


◆왜 운전자들은 민식이법에 불안해하나

이처럼 운전자들이 민식이법에 민감한 이유는 불가피한 가벼운 사고조차도 처벌 수위가 높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법에 따르면 스쿨존에서 운전자가 30㎞ 이내의 규정 속도를 지키지 않고 안전운전에 유의하지 않아 어린이를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 1∼15년의 징역형 또는 500만∼30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는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형에 처한다. 보행자 관련 자동차 사고는 대개 운전자 과실이 어느 정도는 인정되기 때문에 ‘안전운전에 유의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작은 사고에도 최소 500만원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는 구조다.

배달원 강모(37)씨는 “스쿨존에서 속도를 지키고 간다고 해도 어린이가 갑자기 튀어나오면 사고가 날 수 있는데, 이 경우 운전자에게만 높은 처벌이 가해지는 것이 불합리하다”며 “민식이법 때문에 교통사고 지원금을 확대한 보험상품도 나오고 있지만 정작 오토바이 운전자는 가입이 쉽지 않아 불안한 마음이 크다”고 토로했다. 서대문구에서 만난 운전자 이모(63)씨도 “가벼운 사고인데도 처벌수준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스쿨존에서 거의 속도를 지키고 가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고가 날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세계일보

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2018년에 일어난 스쿨존 내 교통사고 435건의 12세 이하 부상자 473명 중 ‘경상’에 그치거나 가벼운 ‘상처’를 입은 부상자는 324명(68.4%)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스쿨존 교통사고로 인한 12세 이하 사망자는 3명이었다.

이런 지적에 ‘민식이법 개정’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등장해 청와대가 의무적으로 답변해야 하는 ‘20만명 이상 동의’기준을 훌쩍 넘겼다. 경찰청도 행여 논란이 생길까봐 일선 경찰서에 신고된 민식이법 관련 사건·사고들을 직접 챙기기로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스쿨존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와 관련해 운전자 입장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시각에서 민식이법 관련 사고를 점검하라는 지침을 전국 경찰서에 하달했다”며 “논란의 소지가 있는 사고는 경찰청이 직접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

◆민식이법 시행 2주일… “좀 더 지켜볼 필요 있어”

전문가들은 민식이법이 시행된 지 얼마 안 됐으니 아직은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박사)은 “일단 스쿨존의 불법주정차 단속, 펜스 설치, 무인단속 등 어린이들의 생명과 신체 안전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며 “민식이법 시행으로 운전자에게 특히 조심해야 한다는 주의를 주되,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 살펴 이 법령이 과연 ‘과잉입법’이 된 것인지, 형량이 너무 높은 건지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웅혁 건국대 교수(경찰학)도 “일반적인 교통문화에 비춰 보면 도로교통법에 있는 것들을 꼼꼼히 지키기보다 바쁘게 지나가는 게 용인되는데 그러다 보니 민식이법에 대한 반발여론이 거센 것 같다”며 “아직 교통법규에 대한 의식이 정립되지 않았는데 입법이 다소 성급한 측면이 있지만, 이것을 계기로 전체적인 교통의식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미국 등 외국의 경우 교통 단속이 엄격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수사당국도 철저하게 교통법규를 적용하고, 이에 따라 전체적인 교통의식이 상향할 수 있도록 여론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